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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스스로 악당이 되었다

‘외부세력’ 추천사
등록 2011-12-28 15:05 수정 2020-05-03 04:26

끝도 없는 재개발로 집을 잃은 사람, 노동조차 정상적으로 할 수 없는 사람, 아직도 ‘손무덤’을 현재의 시제로 사는 이주노동자, ‘방역사업’을 위해 중세 페스트의 치사율과 맞먹는 비율로 인간에 의해 ‘살처분’돼야 했던 가축, 대대적인 토목공사로 살 곳을 잃은 강 속의 생명체, 그 토목공사 탓에 그나마 주던 보조금을 줄여 “똥을 누는데도 돈이 들게 된” 장애인…. 이명박 정권 이래, 이 가진 것 없고 힘없는 자들의 목록은 수도 없이 늘어났다. 그들은 일하고 있지만 일하는 자의 자격을 박탈당한 자들이고, 살고 있지만 살 권리를 빼앗긴 자들이며, 죽어도 죽는 것으로, ‘생명’으로 세어지지 않는 자들이고, 정상인 눈에 보이지 않도록 ‘시설’에 치워놓은 자들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의 내부에 있지만 결코 ‘내부’에 있다고 할 수 없는 자, 이 사회의 ‘외부’로 추방된 자들이다. ‘우리’ 저편에 있는 ‘타자’고, ‘우리’로부터 배제된 자들이다. 말할 자격이 없기에 침묵 속에 갇혀 있고, 시야에서 치워져 있기에 있어도 보이지 않는 자들이다.

날라리들, 레몬트리공작단, 백수들, 희망버스…
비명을 질러도 들리지 않기에 더 고통스러운 추방 속에서 연이어 죽어가는 쌍용자동차의 해고자들이 있었다. 테러범을 진압하듯 밀어붙인 경찰의 폭력에 죽었지만, 법의 이름으로 다시 한번 죽어야 했던 서울 용산의 철거민들이 있었다. 김진숙이 목숨을 걸고 타워크레인에 올라갔던 것은 그처럼 보이지 않기에 더욱 고통스런 자신들을 보이게 하려는 필사적 시도였을 것이다. 눈앞에 있어도 보이지 않는 추방을 눈에 보이게 하려는 결사적 고함이었을 것이다. ‘청소부’라는 무시의 언사 앞에 ‘노동자’란 이름을 들이밀며 손쉬운 해고에 저항의 깃발을 올렸던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해, 우리는 바로 옆에서 매일 일하고 있음에도 보이지 않던 이들의 존재에 비로소 눈을 돌리게 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것이 다라고는 할 수 없다. 추방의 지대, 배제된 자들의 그 ‘외부’로 달려간 자들, ‘당사자’는 아니었기에, ‘외부세력’을 자처하며 그 추방의 공간에 ‘거주하며’ 그들과 함께하려고 했던 자들이 있었다.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에게 달려갔던 ‘김여진과 날라리 외부세력’이 있었고, 연이은 자살의 무거움을 견디며 싸우던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가족들에겐 ‘박혜경과 레몬트리공작단’이 있었다. 죽음의 무게를 더는, 눈물을 떨구며 부르는 맑은 희망의 노래가 있었다. 500여 일을 농성하며 철거와 싸우던 두리반에는 함께 농성하며 이런 핑계 저런 이벤트로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던 ‘백수들’과 아무 대가 없이 신이 나서 노래했던 수많은 인디밴드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35m의 크레인에 올라가 있었음에도 잘 보이지 않던 김진숙과 한진중공업 노동자들로 전국 사람들의 눈과 몸, 마음을 끌어들였던 송경동과 ‘희망버스’ 기획단이 있었다. 그리고 정말 ‘외부’와도 같은 멀리 제주도 강정마을로 전국의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평화의 비행기’를 타게 만든 또 다른 외부세력이 있었다.
제3자 혹은 외부세력이 정부나 자본가, 보수언론 등에 의해 ‘불온한 자’나 ‘악당’ 취급을 받아왔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마치 세상일이 ‘당사자’ 둘 만의 일이며, 당사자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듯이. 그러나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가 어찌 쌍용자동차만의 일이겠으며, 용산이나 두리반의 철거민 추방이 그들만의 문제일 것인가! 그것은 다른 노동자나 다른 철거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리해고의 칼질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회사를 다녀야 하는 사람들 모두의 문제이며, 그런 사회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 모두의 문제이고, 그런 부모나 자식을 가진 사람들 모두의 문제일 것이다. 가까이 있는 어떤 사람이 추방되고 배제되는 것은 그 ‘외부자’인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외부세력이 스스로 불온한 자, 악당을 자처하는 것은, ‘외부’로 추방하려는 모든 시도가 바로 자기 자신의 문제임을 자각했기 때문일 게다. 그래서 ‘내부자’ 자리, 안정되고 편안해 보이는 그 주어진 자리에서 벗어나 그 ‘외부’로, 추방의 지대로 들어가는 것이다. 아니, 사실은 그 추방된 자들에 매혹돼 그들의 삶에 말려 들어가는 것이다. 추방된 자들의 그 고독한 공간을 채우며 들어가 앉는 것이고, 그 속에서, 그 고독 속으로 다른 수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수많은 이들을 외부자로, 외부세력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며, 그리하여 그 외부를 추방의 시도 자체에 대항하는 새로운 반격의 거점으로 변환시키는 것이다.

외부세력일 수 있어서 기쁘다
1월6일 김진숙이 타워크레인에 올라가며 시작된 2011년은 유난히도 외부세력의 출현이 많았고, 외부세력의 활동이 두드러졌던 해다. 또한 유난히도 외부세력의 힘이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인 해였고, 그럼으로써 우리 모두가 외부세력일 수 있음을 보여준 해였으며, 다행히 그로 인해 절망적인 절벽에 몰려 있던 곳을 희망의 공간으로 바꿔놓을 수 있음을 반복해서 보여준 해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착취나 불의에 대한 항의를 가진 이라면 누구나 외부세력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내가 이런 ‘외부세력’일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기쁘고 자랑스럽다.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사회학

2011년 한국의 사회운동은 ‘외부세력’이란 뜨거운 상징 안에 고스란히 응축돼 있다. 지난 8월9일 서울 명동에서 용역깡패 폭력증언 기자회견을 마친 뒤 거리를 행진하는 시민들. <한겨레> 김태형 기자

2011년 한국의 사회운동은 ‘외부세력’이란 뜨거운 상징 안에 고스란히 응축돼 있다. 지난 8월9일 서울 명동에서 용역깡패 폭력증언 기자회견을 마친 뒤 거리를 행진하는 시민들. <한겨레> 김태형 기자

7월30일 부산 한진중공업 앞에서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풍등을 날리는 희망버스 참가자들.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7월30일 부산 한진중공업 앞에서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풍등을 날리는 희망버스 참가자들.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5월18일 서울 서강대 교정에서 청소노동자들과 함께 유부초밥을 만들고 있는 대학생들. <한겨레> 김태형 기자

5월18일 서울 서강대 교정에서 청소노동자들과 함께 유부초밥을 만들고 있는 대학생들. <한겨레>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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