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동 지지시위 주도한 보수단체들… 그들의 새로운 시민운동 가능성은 열린 것일까
지난 7월3일부터 5일까지 3일 동안 조선일보사, 중앙일보사, 동아일보사 앞에서는 이색적인 1인 시위가 벌어졌다. 언론사 세무조사에 이은 검찰수사가 시작된 직후였고, ‘언론개혁’의 목소리가 전 사회적인 공감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이른바 ‘조중동’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들의 시위는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특히 시위대가 할아버지들이라는 점과 들어본 적도 없는 독특한 이름의 시민단체라는 점도 관심거리였다.
한사코 방문취재 거절한 자유시민연대
“00일보, 힘내세요.” “00일보, 파이팅!” “00일보는 우리의 희망입니다.” 이 시위를 주도한 단체인 ‘자유시민연대’(www.freectzn.org·공동대표 임광규)라는 곳이 궁금했다. 어떤 단체들이 가입했는지, 기존의 보수단체들과는 어떻게 다른지, 돈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등을 알고 싶었다. 이 단체를 취재해보기로 하고 전화를 걸었다.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다는 김구부씨가 전화를 받았다. “당시 조중동 지지 시위를 벌였던 분들이 회원들이었다면 연락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아, 자유시민연대에 소속돼 있는 산하단체의 회원들인데 단체가 하도 많아서 어떤 단체에서 나왔는지 모르겠네요. 지금 연락처를 알기 어렵습니다. 산하단체 회원분들께 수고 좀 해달라고 했는데, 그분들도 일제 때부터 있던 신문들이 이렇게 하루아침에 사라져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나와주신 걸로 압니다.”
“사무실로 직접 찾아뵙고 말씀을 나눌 수 있을까요?” 그러나 김씨는 웬일인지 서울 중구 남창동에 있는 이 단체의 사무실을 몇번이나 방문하겠다는 기자의 제안에 대해 “이사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데다 누추하다”는 이유로 한사코 완곡하게 거절했다. 어쩔 수 없이 전화취재가 계속됐다. “산하단체가 몇개나 되는데요?” “40개 이상 됩니다.”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참여단체의 이름이 없는데 어떻게 된 겁니까?” “아, 지금 제가 불러드리겠습니다.”
김씨는 전화기에 대고 산하단체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이하 ‘헌변’), 대한민국 건국회, 대한참전단체연합회, 실향민중앙협의회 등 대표적인 단체 이름 몇개가 지나가자, ‘6·25’와 ‘참전’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자주 등장했다. 6·25참전 전우회 중앙본부, 6·25참전 전몰군경 유자녀회, 6·25참전 학도의용군협회, 대한민국 참전경찰전우회, 철도참전용사회, 한국유격군전우회 총연합회, 월남참전전우회, 전쟁방지국민협의회, 육·해·공군·해병대 예비역 영관장교협의회….
산하단체들은 미처 다 받아적지 못할 정도로 많았다. 참전단체가 유난히 많아 이런 의문도 들었다. 참전단체들은 대한참전단체연합회 같은 곳으로 묶일 수는 없을까. 김씨에게 다시 물었다. “단체에 상근자는 몇명이나 되나요?” 김씨는 “참여연대는 상근간사만 수십명이라는데…”라며 말끝을 흐리더니, 상근자 숫자가 4명이라고 했다. 조직위원장과 대변인, 그리고 상근간사 2명. 뜻밖에 단출한 규모에 놀라움을 나타내봤다.
“몸집이 커지면 다른 부담이 생기잖아요. 일전에 경실련이 정부투자기관에 거액의 후원금을 요구하는 바람에 물의를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가능하면 몸무게를 안 늘리려고 합니다.” 조남현 대변인이 작은 몸집을 고집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 정도 ‘몸무게’라면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을까.
“움직이면 다 돈 아닙니까. 예산만 있으면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텐데…. 대중성을 획득하려면 지방조직도 키우고, 청년조직도 만들어야 합니다. 청년조직은 전위그룹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김씨는 흔히 보수운동을 하는 이들은 돈이 풍부하다는 일반의 추측은 잘못됐다고 덧붙였다.
인민위원회의 사학접수 전야?
회비를 내는 회원 수를 묻자, 핵심관계자 두명의 답변이 엇갈렸다. 김씨는 “기천명”이라고 하는 데 비해 조씨는 “800여명”이라고 했다. 김씨는 “의약분업과 사립학교법 개정과 관련한 정부 정책을 강도높게 비판해서 그런지 몰라도 의사들이나 사학재단에서 익명으로 협조해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귀띔했다.
이 단체는 지난해 11월 설립됐다. 창립취지문을 보면 이들이 얼마나 비장한 마음으로 이 단체를 만들었는지가 엿보인다. “우리는 지금 우리 사회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와 질서를 지키는 건전하고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가느냐, 패망의 길로 빠져드느냐의 기로에 서 있음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취지문은 곳곳에서 현재 대한민국이 정통성과 정체성이 흔들리는 위기의 순간을 맞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위기의 근본원인이 ‘사회주의적 발상’에 입각해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고 있는 현 정부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꼽는 ‘사회주의적 발상에서 비롯한 주요정책’은 사립학교법 개정과 의약분업 및 의보통합 등이다. “버젓이 존재하던 주인을 억지로 없애는가 하면, 시장원리를 무시한 기계적인 평준화를 추구하기 때문”이라는 게 이들이 내세우는 근거다. 법 개정이 부패사학을 척결하는 데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 이들은 “교통사고가 많다고 차를 전부 없앨 수 없지 않느냐”는 다소 엉뚱한 논리를 펴기도 한다.
이들은 신문광고를 통해 사립학교법 개정 국면을 ‘인민위원회의 사학접수 전야’로 표현한 바 있다. 전교조가 사실상의 인민위원회를 통해 사학을 장악한다는 이 주장을 폈다가 이들은 전교조로부터 피소된 상태다. “사회주의나 인민위원회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쓰기에는 논리가 너무 단순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조씨는 “우리도 시민운동을 해보니까 운동의 생리상 단순하고 과격한 표현을 선호하게 되더라”고 해명했다.
이들의 주된 활동내용 가운데는 기존의 진보쪽 시민단체에 대한 대응도 포함돼 있다. 이들은 기존 시민단체들을 ‘홍위병’이라고 부르면서 현 정부와 “짜고 치는 고스톱판”을 벌이고 있다고 표현한다. 지난 5월 초 이들은 참여연대 앞에서 시위를 벌이면서 “주장만 있고 책임은 없는 게 시민단체냐”며 목청을 높였다.
자유시민연대는 기존의 보수운동과의 차별성도 강조하는 편이다. 이철승씨가 이끄는 자유민주민족회의나 <한국논단> <월간조선>류의 안보 일변도의 극우보수론과는 일정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또 현 정부와의 관계를 회복한 자유총연맹은 진정한 보수단체가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 길은 춥고도 외로운 길”
조씨한테서 그들의 운동철학을 들어봤다. “우리가 벌이는 운동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다. 문명사적 의미를 지닌 운동이다. 우리는 국가의 기능과 역할이 최소한으로 제한되는 ‘야경국가’를 이상적인 모델로 삼는다. 자유시장경제 원리가 경제의 모든 영역에서 관철돼야 한다. 시장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 그런데도 구조조정은 관료들에 의해 이뤄진 실패작이었다. 시장은 일견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결국 자생력이 있다. 한마디로 우리 스스로를 규정한다면 진정한 ‘리버럴리스트’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대변해주는 사상가로 꼽는 하이에크가 신자유주의 원조격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엄청난 혼란이 밀려왔다. 진보주의운동 진영에서는 김대중 정부를 신자유주의 정권이라고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보수 시민운동을 벌이면서 느끼는 마음속의 갈등을 비교적 솔직히 털어놨다. 김씨는 보수 시민운동에 대해 “이 길은 춥고도 외로운 길”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과거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운동을 하던 이들에 대한 탄압 같은 것은 없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노벨평화상을 탄 대통령이 있는 나라에서 그러면 되겠느냐”며 즉각 되받았다. 조씨는 “운동 일선에서는 느끼는 것은 헤게모니는 이미 당신들(진보쪽)이 쥐고 있다는 사실”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화살을 기존의 보수진영으로도 돌렸다. “우리 사회의 보수층들은 보수적인 이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회정의’나 ‘경제 민주화’와 같은 화두에 꼼짝 못하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조씨는 “보수층들의 이런 태도가 보수운동의 대중화를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자유시민연대와 함께 최근 보수쪽의 흐름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새 이름이 ‘민주참여네티즌연대’다. 오프라인에서는 그렇게 불리지만 온라인상에서는 ‘안티디제이’(www.antidj.waa.to)로 알려져 있다. 김 대통령에 대한 비판과 비난의 목소리를 사이트 안에서 모아내던 이들은 최근부터는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 ‘국가보안법 개정 반대’, ‘언론 세무조사 반대’를 내걸고 직접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사이트에 등록한 300여 회원들의 대표인 신혜식(33)씨를 만나봤다.
“저는 너무나 평범한 생활을 하다 통신에 정부 비판적인 글을 띄워 비난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서 이 일을 하고 있어요. 사회주의 환상을 가진 이들이 정부 안에 있어서 지금의 실정이 빚어지는 것 같아요. 시민운동에서도 시민단체들의 목소리만 있고 시민은 빠져 있어요.”
“단결도 못하면서 이름 하나로 개긴다”
그의 말대로 그는 평범하지 않다.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이 일에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시위라도 할라치면 집회 신고에서부터 집회 정리까지 혼자 도맡아 한다. “친구들은 몸조심하라고 말하고 부모님도 포기했어요. 그렇지만 내가 아니면 누가 하겠어요. 다음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인터넷시대이고 개인의 발언이 중요시되는 시대이니까 이회창씨 비판사이트도 될 수 있는 것이고….”
그는 대표적인 보수논객이라고 불리는 조갑제·김용갑·지만원·이철승씨 등을 직접 찾아가 인사하고 이들의 얘기를 자주 듣는다. 그러나 기존의 보수운동가들의 한계를 절실히 느꼈다고 한다. “흔히 보수들은 돈이 많다고들 하잖아요. 그런데 솔직히 열심히 해보라고 도와줄 줄 알았는데 그런 사람이 없어요. 개인적으로 돈이 많은 보수들도 선뜻 내놓은 사람은 없더라고요. 저쪽(진보쪽)은 단결도 잘되고 연합도 잘하는데 여기는 단결도 못하면서 이름 하나로 개기는 측면이 있어요. 반성해야 합니다.”
그는 이 사이트뿐만 아니라 ‘안티 김정일’, ‘안티 참여연대’, ‘안티 MBC’ 사이트까지 혼자 만드는 등 ‘정력적으로 활약’하는, 노력하는 보수운동권이라고 자평한다. 이 사이트 회원들 역시 신씨와 비슷한 견해를 보였다. “북한 퍼주기와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답방을 구걸하는 모습에서 나라의 정체성과 존엄성이 무시되는 것을 느꼈다”(김아무개씨·외국어대 4년)거나 “현재 진행되는 개혁은 상대방을 흠집내고 죽이는 개혁이다”(장아무개씨·한양대 3년)라는 주장이 거침없이 튀어나왔다. 자유시민연대와 민주참여네티즌연대의 등장으로 보수진영의 새로운 시민운동 가능성은 열린 것일까. 이런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려면 그들의 주장에서 ‘원조’ 보수진영의 그것과 차별성이 좀더 두드러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런 단서는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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