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진 법무장관 후보자는 2002년과 2007년 대선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했다. 대한민국에서 선출직, 혹은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하는 고위 공무원이 되려면 병역 문제에서 한 점 의혹이 없어야 한다는 교훈 말이다.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현 자유선진당 의원)가 두 차례나 패배한 데는 두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이 있었다. ‘대쪽’ 이미지로 기대를 모았던 그에게 이른바 ‘사회 지도층’의 특권과 반칙의 상징인 병역비리 의혹은 치명적이었다. 어쩌면 권 후보자는, 대선 이후 의혹을 제기했던 쪽이 이를 입증하지 못해 처벌을 받고 한나라당에서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주장이 나올 때 한숨 돌렸을지도 모른다. 보통 사람들에게 있기 힘든 행운이 유독 권 후보자와 그의 두 아들에게는 집중됐다. 우연이 자꾸 겹치면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손’을 의심하게 된다.
증인도 없고 증언도 피해결론부터 말하면 권 후보자의 장남(30)과 차남(29)은 모두 병역을 마쳤다. 문제는 둘 다 현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편한, 집에서 출퇴근하는 산업기능요원과 상근예비역(예전 동사무소 방위병)으로 근무했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권 후보자의 의지가 얼마나 개입됐는지가 8월8일 권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 쟁점이 될 전망이다.
권 후보자의 장남은 2000년 9월15일 징병검사에서 고도근시로 4급 공익근무요원 판정을 받는다. 2년 뒤인 2002년 2월8일 모교인 서울대 행정보조원으로 선발되기 위해 권 후보자의 부인 최아무개씨와 함께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친척집으로 거주지를 옮긴다. 실제 거주하지는 않고 주소지만 옮기면 위장 전입에 해당된다. 권 후보자는 “나중에 이런 사실을 알았고 뒷말이 나올 것을 우려해 서울대학교 근무를 취소하도록 했다”고 해명했다.
그런데 뒷말이 나올 것을 우려했다는 권 후보자의 해명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주소지를 옮기는 무리를 해가면서 선발된 서울대 행정보조원을 취소한 뒤 선택한 산업기능요원의 근무지가 하필이면 권 후보자의 고교 동창의 업체였다. 인사 관리를 업체 쪽이 맡고 군 쪽의 감독은 형식적이어서 소속만 그리 해두고 실제 근무는 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문제의 업체는 서울 대치동 집에서 출퇴근에만 서너 시간이 걸리는 경기도 포천에 있었다.
이에 대한 권 후보자의 해명을 요약하면 이렇다. 젊을 때 노무직 근로자로서 일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장남을 설득했고, 마침 동창회에서 만난 친구가 산업기능요원을 구하고 있어 지원하게 됐다는 것이다. 전기과에서 납땜, 박스 조립 등을 했으며 전기과 사우회 총무를 맡을 정도로 성실하게 근무했다고 한다.
권 후보자의 해명이 참이면, 부친의 권유를 받아들여 2002년 9월부터 27개월 동안 구슬땀을 흘린 장남은 요새 보기 드문 젊은이다. 그와 근무 기간이 겹치는 다른 8명이 당시 그의 성실성을 증언해준다면 완벽할 뻔했다. 그런데 민주당 청문위원들이 권 후보자 장남과 같이 근무한 산업기능요원들의 정보를 요구하자 병무청은 ‘개인정보 보호’를 내세워 이들에 대한 접근을 차단했다. 청문회에 증인으로 요청하려면 세부 정보가 필요한데, ‘김○○/ 경기기계공고 졸업/ 경기도 남양주시/ 현역’ 이런 정도의 자료를 제출했다. 이 확보한 병무청 자료를 보면 유일하게 비교 가능한 항목이 학력 부문인데, 권 후보자의 장남은 워낙 특출해 같이 근무했다면 다른 동료들이 잊을 수 없는 존재였을 것이다. 8명 중 6명이 공고 등 실업고를 졸업했거나 중퇴했고 나머지 2명은 경기도 의정부의 한 전문대 휴학생이었다. 게다가 전기과 사우회 총무까지 지냈다고 하니 말이다.
차남까지 편한 군대생활 의혹권 후보자의 장남이 청문회에 출석해 자신의 경험을 생생하게 얘기해도 부족하나마 다른 산업기능요원들의 증언을 대신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여느 청문회의 핵심 증인들이 늘 그렇듯이 현재 국내에 없다. 2010년 11월 변리사 시험에 합격하고 올 1월1일 종합법률회사 김앤장에 입사한다. 그런데 3월1일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난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는, 현 정부 들어 개각 때마다 법무장관 후보로 하마평에 오르던 권 후보자(당시 청와대 민정수석)가 차기 법무장관으로 가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던 시기와 겹친다.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기획 출국’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살 만하다. 입사 2개월 된 수습 직원이 영어 연수를 요청하고 회사는 이를 받아들여 휴직 처리해주는 경우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현역 입영 대상자였던 권 후보자의 차남이 집 부근 대치2동에서 상근예비역(행정병)으로 근무하게 된 과정도 우연치고는 기가 막힌 우연이다. 권 후보자의 차남은 2001년 8월 재수생 시절 징병검사에서 근시 및 편평족(평발)으로 3급 현역 판정을 받는다. 마침 대치2동에 병력이 필요해졌고 그해 12월 상근예비역에 선발된다. 중앙대에 합격했고 2001년 12월 입대해 45일간 군 복무를 한 뒤 집에서 출퇴근이 가능한 상근예비역으로 2003년 1월까지 근무한다.
권 후보자나 그의 차남이 원할 경우 현역병으로 복무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상근예비역 소집대상자 선발 및 관리지침’을 보면, 상근예비역으로 선발됐더라도 대학생이 되어 입영을 연기하면 취소가 된다. 즉, 차남이 대학에 입학해 학업을 이어갔더라면 상근예비역 선발이 취소되고 현역병으로 군 복무를 할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권 후보자의 차남은, 제 발로 찾아온 기회인지 적극적으로 만든 기회인지 분명치 않은 행운을 걷어차지 않았다. ‘입영하는 해에 대학 또는 대학원에 진학한 자 중 이미 결정된 입영일자에 입영하기를 원해 입영하는 해 3월31일까지 재학생 입영원서를 출원한 사람은 취소하지 않는다’는 예외 조항을 적극 활용한다. 결과적으로 장남에 이어 차남까지 보통 사람들의 일반적 경로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편하게 군 복무를 마친 것이다.
‘척추조형 사진’ 하나면 되는데
한편, 지난 8월4일 인사청문회를 치른 한상대 검찰총장 후보자는 본인의 병역 면제 의혹이 도마 위에 올랐다. 한 후보자 쪽은 대학 1학년 때인 1977년 미식축구를 하다 디스크가 발병했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직후인 1981년 8월에 수술을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1980년 5월 신체검사 때는 정상 판정을 받았다. 게다가 디스크가 발병한 1977년 이후 수술 전까지 한 후보자가 진료를 받은 기록도 없다. 의혹에 불을 댕긴 건 한 후보자 자신이었다. 수술을 집도한 의사에게 자신의 진료 기록을 외부에 유출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인사청문위원인 박영선 민주당 의원은 “전문의들은 수술 직전에 찍은 ‘척추조형 사진’만 제출하면 모든 의혹이 해소된다고 하는데, 후보자는 사진 제출 여부에 대해 아무런 답이 없다”고 주장했다. 병역비리 브로커 출신으로 당시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수핵탈출증(허리디스크) 수술은 당시에 유행하던 병역 면제 수법 가운데 하나”라며 “그 이전에 진료 기록이 없는데다 22살의 젊은 나이에 치료를 하지 않고 병원에 가자마자 입원하고 수술 날짜를 잡은 것을 보면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고 말했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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