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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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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곳에 잠든 왕실의 도장

조선 공예 정수 보여주는 왕권의 상징인 어보, 국립박물관 아닌 고려대 박물관이 입수 경위 밝히지 않고 2과 보관·전시
등록 2011-08-02 10:28 수정 2020-05-03 04:26

조상 대대로 가보로 물려오던 옥도장을 도난당했다. 십수 년 동안 찾아헤맸는데 알고 보니 옆집에 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긴말 필요 없이 찾아와야 한다. 그런데 내놓지 못하겠다고 한다. 옆집 논리가 이렇다. “어차피 팔 물건도 아닌데 우리가 잘 보관하고 있으니 걱정 마시오.” 찾아올 수 있을까. 의문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조선의 어보(御寶)는 ‘그들’의 손에 있다.

» 고려대 박물관의 특별전 ‘조선 왕실 이야기’에 전시된 현종비 인장(왼쪽)과 원경왕후 인장.

» 고려대 박물관의 특별전 ‘조선 왕실 이야기’에 전시된 현종비 인장(왼쪽)과 원경왕후 인장.

“절취품이 의심 없이 전시돼”

지난 7월 중순 고려대 박물관을 찾았다.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전시명은 ‘조선 왕실 이야기’. 안내 책자를 보면 “우리 박물관 소장품만으로 조선 왕실을 소재로 한 작은 전시를 마련하였다” “왕실 문화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이번 전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기록돼 있다. 박물관 지하로 내려가니 두 점의 어보가 눈에 띈다. 원경왕후인과 현종비인이다. 금동으로 제작된 원경왕후인은 조선 태종의 비이자 세종의 어머니인 원경왕후가 14세기에 사용하던 것이다. 정방형의 육면체 위에 거북이가 올려져 있다. 17세기에 옥으로 만들어진 현종비인 또한 거북 모양이 특징이며 거북 머리 위에 왕(王)자가 새겨져 있다.

어보의 주인은 조선 왕실이었다. 일제 당시 이왕직이라는 기관에서 왕실 재산을 관리했고, 해방 뒤 내무부로 이관했다. 그러다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어쨌든 주인은 우리 정부다. 바로 ‘우리’의 것이다. 그런데 왜 사립대학의 박물관에 있을까.

동행한 문화재제자리찾기 사무총장 혜문 스님은 “절취당한 어보가 한 사립대 박물관에 의심 없이 전시돼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라며 “원래대로라면 고궁박물관에 있어야 할 물건”이라고 말한다.

어떻게 된 일일까. 어보는 문화재 전문가들 사이에서 조선시대 직물·가구·금속·문양·염색 등 왕실공예의 정수를 볼 수 있는 조선 왕실 의례 최고의 상징물로 통한다. 어보는 존호(尊號)나 시호(諡號)를 올릴 때나 가례(嘉禮)와 길례(吉禮) 등 왕실의 각종 의례에 사용된 왕권의 상징물로, 국새나 옥새가 대내외의 각종 공문서에 사용된 공적 용도의 인장이라면, 어보는 왕실 의례의 소산으로 제작돼 종묘에 봉안된 의례적 인장이다. 실제로 세계적으로는 하나의 왕실공예품이 500여 년에 걸쳐 일괄돼 제작된 유례가 없어 문화재청에서는 어보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할 계획까지 세울 정도다. 문화재청이 발간한 도록인 를 보면 조선시대 왕실 어보는 366과(顆·도장을 세는 단위)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국립고궁박물관 등에 소장돼 있는 것은 323과만 실물이 확인된다. 이 가운데 2과가 국립박물관이 아닌 고려대 박물관에 있는 것이다.

미국은 반출된 어보 한국에 반환하기도

문화재제자리찾기는 미국 정부의 기록을 입수해 2과의 어보가 미군이 절도한 도난품이므로 국가에 반납돼야 할 물건이라며 반환운동에 나섰다. 이 입수한 기록을 보면, 한국 정부는 1956년 왕실 인장 47과가 미군에 의해 도난됐다는 사실을 미국 국무부에 통보했고, 이는 당시 등 미국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다. 미국 정부는 한국 정부의 요구를 받아들여 국무부에 기록을 남겼다. 이 기록 가운데 1956년 작성된 문서에는 미국 국무부 관리인 아델리아 홀과 당시 양유찬 주미대사의 전화 통화 내용이 기록돼 있다. 거기에는 어보와 관련한 언급이 있어 주목할 만하다. 한국전쟁 당시 절취한 문화재로 보이는 인장들은 △도장의 크기가 약 2~4인치 △왕실 문양 △동물 문양이 공통된 특징으로 언급돼 있다. 또 미국 정부가 이 인장들의 반환 작업을 실제로 진행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델리아 홀 레코드에는 ‘Korean official seals’가 ‘미군 병사들의 개인적 약탈’이라고 규정돼 있고, 수반하는 조처로서 ‘recovery’하는 것이 미국 국무부의 행정 원칙임이 기록돼 있다. 실제로 이 원칙을 기준으로 미국 정부는 1987년 고종, 순종, 명성황후 등의 어보를 한국 정부에 돌려준 바 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의해 반출되었던 문화재로, 스미스유니언 미술관의 학예사인 조창수씨의 교섭으로 한국에 반환되게 된 것이다.

혜문 스님은 “(미군이 약탈해간) 어보를 (고려대 박물관이) 어떤 경로로 입수했는지는 조사를 통해 밝혀야겠지만 그 경로가 불법성을 상쇄할 수는 없으므로 고려대 박물관은 어보를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한다”며 “일본도 의궤를 반환하는 마당에 지성의 전당인 대학이 먼저 나서서 국가의 물건을 반환하는 것은 당연한 순리”라고 주장했다.

고려대 박물관의 방침은 어떨까. 공식적인 견해를 들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내부 관계자들은 이 인장의 입수 경로가 적법한 것으로 보지는 않았다. 고려대 박물관의 한 관계자는 “지금의 장소에서 잘 보관돼 있는데 옮기는 게 꼭 옳은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박물관 처지에서도 반출된 것 자체가 문제라는 점에는 할 말이 없을지 몰라도 그 입수 경로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누구도 입증할 수 없는 사실에 대해 무조건 반환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1936년 설립된 고려대 박물관은 10만여 점의 유물을 보유한 국내 최고·최대의 대학 박물관이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 소장품에 대한 기록을 남겨 그 이전에 입수한 경위는 파악이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문서 기록이 없다는 게 입수 경위를 확인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고려대 박물관의 다른 관계자는 “한국전쟁 당시 들여온 것으로 안다”며 “고려대에 미군이 진주한 기록도 있다”고 말했다.

원래 있어야 할 곳은 종묘

문화재청에서는 어보 2과가 고려대 박물관에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반환 요청은 없었다. 반환이 간단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그럴 필요에 대한 각성이 부족해서다. 문화재청의 한 고위 관계자는 “어보가 원래 있어야 하는 장소는 종묘이니 불법으로 반출된 것이 맞다”며 “법원을 통한다면 결국에는 돌려받을 가능성이 높겠지만 모양새가 좋지 않을 것이다. 양심껏 돌려줘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어보 입수 경위에 대한 추정도 구체적이다. 이 고위 관계자는 “고려대 설립자인 김성수 선생이 일제 당시 또는 한국전쟁을 즈음해 창덕궁 앞에 있던 골동품상에서 우리나라 문화재급 유물이 나오기만 하면 사들였다는 것은 유명한 얘기”라며 “미군이 훔쳐 나온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이 훔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물론 어보를 훔친 것이 미군이냐 우리나라 사람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반환 방법을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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