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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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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만 없나, 예방도 없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보건·안전 관리, 사고 책임 떠안는 중소기업… 안전 없는 현장이 사고 부른다는 인식 가져야
등록 2011-07-21 18:58 수정 2020-05-03 04:26

지난 4월16일 4대강 공사 현장에서 사고가 났다. 경북 의성군 낙동강 4대강 사업 현장에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 중 상판 슬래브가 무너져 2명이 숨졌다. 두산건설 계약직 하아무개(32)씨와 하도급업체 직원인 김아무개(41)씨가 숨졌다. 공사 기간을 줄이려고 슬래브 지붕을 떠받치는 작업지지대의 안정성을 제대로 점검하지 않고 공사를 진행하다 발생한 것이었다. 이 사고는 유가족 보상 뒤 세상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안전성 점검하지 않은 회사 처벌 면해

» 2010년 한국에서는 산업재해로 하루 평균 6명이 숨지고, 260명이 다쳤다. 노동자 1만 명당 사고사망률이 0.9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1위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4월28일 서울 대치동 포스코사거리에서 집회를 열어 산재에 대해 원청업체와 발주처가 책임질 수 있는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한겨레21 이종찬

» 2010년 한국에서는 산업재해로 하루 평균 6명이 숨지고, 260명이 다쳤다. 노동자 1만 명당 사고사망률이 0.9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1위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4월28일 서울 대치동 포스코사거리에서 집회를 열어 산재에 대해 원청업체와 발주처가 책임질 수 있는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한겨레21 이종찬

그래도 아직 남은 절차가 있다.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해당 업체는 처벌을 받는다. 특히 건설사에 대한 처벌 규정은 엄격하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의 입찰에 산재 정도에 따라 최장 2년까지 참여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규정에 따라 고용노동부는 지난 6월 두산건설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한국수자원공사에는 ‘부정당업체’로 선정해줄 것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수자원공사가 부정당업체로 선정하면 두산건설은 정부와 공공기관 입찰에 참여할 수 없다. 하지만 수자원공사는 부정당업체 선정을 미루겠다고 지난 7월6일 통보했다. 수자원공사 관계자는 “아직 최종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아 판단을 미룬 것”이라며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오면 그때 다시 부정당업체 선정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 수사 결과가 나와도 두산건설이 입찰에 제한을 받을 가능성은 낮다. 관행이 그렇다. 산재 사고가 일어나도 최종 판결이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재를 받지 않고, 3심까지 끌며 판결을 최대한 늦추는 것이다. 그사이 건설 경기 부양이라는 이유로 제재 대상 업체들은 사면으로 풀려난다. 2006년 참여정부가 건설업체 4441곳을 사면한 게 대표적이다. 당시 건설교통부는 광복 61돌을 맞아 국민 화합과 경제 활력을 제고한다며 부실벌점·영업정지·입찰참가제한 등 행정제재를 받은 건설업체 4441곳을 대거 사면했다.

산재 사고 책임을 하청업체에 떠넘기는 경우도 많다. 2009년 12월 경기도 수원의 한 공사 현장에서 박아무개씨가 추락해 숨졌다. 현대건설이 원청업체로 하청업체인 A사에 맡긴 공사였다. A사는 다시 B사에 모델하우스 안 유리공사를 하청했고, 박씨는 B회사 소속이다. 그런데 A사는 고용노동부 조사에서 현대건설과의 관계를 빼고 A사와 B사 간의 도급관계만 나온 서류를 냈다. 결국 A·B사만 처벌을 받았다. 이후 A사가 현대건설과 다른 문제로 법정 다툼을 벌이다 현대건설이 A사에 지급한 대금명세를 고용노동부에 제출해 박아무개씨 사고 현장과 현대건설이 엮여 있음이 드러났다.

대기업, 하청업체에 사고 책임 떠넘겨

이런 현실 탓에 공식 산재 사고는 중소기업에 집중된다. 50명 미만 사업장의 산재 사고는 2001년 전체 산재 8만143명 가운데 69.1%인 5만6250명이었는데, 2009년엔 전체 9만7821명의 79.6%인 7만7859명이었다. 전체 산재 사고가 늘고 있는 가운데 50명 미만 사업장의 산재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최명선 노동안전보건국장은 “중소기업에 산업재해가 몰리는 이유를 정확하게 들여다봐야 한다”며 “실제 대기업에서 사고가 나도 하청업체에 책임을 떠넘기는 경우가 많고, 그렇지 않으면 소송을 제기해 책임에서 벗어나는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 최 국장은 “대기업들이 산업안전을 지키지 않으면 큰 피해가 간다는 인식을 해야 산업안전에 신경 쓰고, 하청업체에도 요구를 하게 될 것”이라며 “이런 쪽으로 정책을 펼쳐야 산재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각 사업장의 안전점검을 하는 기관들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상시근로자 50명 이상 사업장에서는 일정 자격을 갖춘 안전관리자 또는 간호사 등 보건관리자를 의무적으로 두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기업활동규제완화에 관한 특별조치법은 위탁을 허용한다. 이 때문에 국내 사업장 가운데 48%가 안전지도자를 대행업체를 통해 관리하고, 보건관리자는 80%를 대행업체에 맡긴다. 한 다리 건너다 보니 문제가 많다. 지난 3월 고용노동부가 국내 최대의 보건관리자 대행업체인 대한산업보건협회를 점검한 결과, 무자격 의사가 대행 업무를 수행(경기북부·광주·전북센터)하거나 허위 보고서를 작성(창원센터)하는 등 많은 문제점이 발견됐다. 안전관리자 대행업체도 2008년 감사원 감사에서 안전점검을 하지도 않고 점검일자 서명만 해 안전보건관리 상태 보고서를 사업주에게 넘기는 등 문제를 드러냈다. 민주노총의 최 국장은 “대행업체가 사업주와 계약을 맺어 독립적인 조사를 하기 힘든 상황에서 그마저도 허술하게 점검하고 있다”며 “법적으로 보건·안전관리자가 독립적인 위치를 갖도록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평균 재해율 이상 사업장 실명 공개

고용노동부는 해마다 동종업종 규모별 평균 재해율 이상인 사업장 가운데 상위 10% 업체, 재해 사망자가 2명 이상 발생한 업체 가운데 동종업종 평균 사망률 이상인 업체의 실명을 공개하고 있다. 지난해 8월 발표한 것을 보면 풀무원, 한국필립모리스, 금호타이어, 한국타이어, 한진중공업, 기아차, 만도, 대한통운 등 유명 기업들도 산재 다발 사업장에 포함됐다. 또 사망재해가 2명 이상 발생한 사업장에 대우조선해양, 한국전력, 쌍용건설, 현대산업개발, GS건설, SK건설 등이 이름을 올렸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target="_top">ljh9242@hani.co.kr




기업의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살펴봤더니
산업안전 분야 허술한 보고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펴내는 대기업이 늘고 있다. 갈수록 강조되는 사회책임경영에 부응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아직 부실하다. 언론의 관심이 높은 환경이나 사회공헌 분야 등은 자세하게 설명한 경우가 많지만 산업안전보건 분야에서는 아직도 내용이 허술하다.
이 국내 대표 제조사인 삼성전자, 현대차, 포스코, SK에너지, LG화학 등이 최근 펴낸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살펴본 결과가 그랬다.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작성하는 지침인 글로벌리포팅이니셔티브(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의 ‘지속가능경영 보고 가이드라인’에는 산업안전 분야 관련 항목이 있다. GRI 가이드라인은 △경제적 성과 △환경 △사회적 성과(노동·인권·사회·고객) 세 가지 분야에서 총 79개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산업안전 분야의 항목은 ‘노사 공동 보건안전위원회가 대표하는 직원 비율’(LA6), ‘부상·직업병·손실일수·결근·업무 관련 재해건수’(LA7), ‘심각한 질병 관련 직원 및 가족, 지역주민 지원을 위한 교육·훈련·상담·예방 및 위험 관리프로그램’(LA8), ‘노조와 정식 협약 대상인 보건 안전 사항’(LA9) 등이다. 이 중 LA7·LA8은 반드시 보고해야 하고, LA6·LA9는 되도록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5개 기업 가운데 가장 잘 보고된 곳은 SK이노베이션(옛 SK에너지)으로 4개 항목을 다 보고했다. 하지만 필수 항목인 재해건수와 손실일수 등을 보고하는 LA7은 재해율만 알려 미흡했다. 다른 항목도 안전교육 실적만 공개(LA8)하거나 단순히 노조 현황(LA9),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운영(LA6)만을 알렸다.
삼성전자는 LA7 항목은 재해율과 재해건수, 손실일수 등을 공개해 5개 기업 중 가장 충실했지만 사망·부상자 수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다른 항목에서도 단순히 노사 공동 보건안전위원회만을 보고하는 등 미흡했다. 포스코는 재해건수와 사망·부상자 수는 공개했지만, 손실일수를 비율만 공개하는 등 부족했다. 노사가 협의하는 보건안전 사항이 포함되지 않는 등 다른 항목에서도 부실했다. 이 밖에 현대차와 LG화학은 재해율만 공개해 실제 발생한 재해건수나 그에 따른 손실일수 등은 공개하지 않았다. 다른 항목에서도 적절한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한국노총 안전보건연구소 조기홍 국장은 “대기업의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보면 환경 분야의 실적은 자랑스럽게 홍보하지만, 노동 분야의 사실은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다”며 “매년 보고서를 펴내며 반복적으로 노동 분야의 사실 공개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대신 적극적으로 노동 안전에 힘써 사실을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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