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 피해자 상당수는 재해를 인정받지 못하는데, ‘산업재해보상보험 및 예방기금’(산재보험기금)은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 산재보험기금 적립금은 2010년 말 기준으로 5조5570억원에 이른다. 산재보험기금 사용 계획은 고용노동부가 만들고, 근로복지공단은 이를 집행한다.
한 푼도 쓰지 않은 사업도 있다고용노동부가 최근 밝힌 ‘2012 회계연도 산재기금 운용계획’을 보면, 산재보험기금은 2008년 1조1141억원, 2009년 1조290억원, 2010년 6968억원 등 매년 흑자를 기록했다. 올해도 근로복지공단은 9756억원의 흑자를 낼 전망이다. 그러면 적립금이 6조5326억원으로 불어난다. 고용노동부는 산재보험기금이 2011년에도 1조165억원의 흑자를 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면 적립금은 7조5491억원으로 는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최명선 노동안전보건국장은 “근로복지공단이 산업재해 인정폭을 줄이고, 장기 치료가 필요한 산업재해 피해자의 치료를 종료시키면서 돈을 쌓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연히 산재보험기금 운용 과정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 많다. 특히 공공기관이 산재보험기금을 쌈짓돈처럼 쓰는 반면에 정작 기금 수혜 대상인 노동자들한테는 인색하게 쓰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 높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최근 발행한 ‘2010 회계연도 결산 부처별 분석’을 보면, 산재보험기금에서 돈을 받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쓰고 남은 돈 12억7300만원을 기금에 반납하지 않았다. 대신 자체 수입으로 다음 연도에 이월했다. 근로복지공단도 쓰고 남은 3억1600만원을 자체 수입으로 이월했다. 산재보험기금과 달리 고용보험기금은 해당 기관에 출연한 뒤 남은 돈은 다시 기금으로 환원하도록 법에 규정돼 있다.
게다가 고용노동부는 산재보험기금을 빼내 근로복지공단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지방 이전 비용으로 쓰고 있다. 2011년 예산에도 근로복지공단 본부 청사 건립비와 부산동부지사 공사비 등 458억원,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이전비 404억원을 책정할 계획이다. 이들 기관의 이전 비용으로 2010년부터 4년간 총 1579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데, 모두 산재보험기금에서 나올 전망이다.
반면 수혜 대상인 재해 노동자한테는 산재보험기금 집행이 인색하기 그지없다. 2010년 고용노동부는 산재보험급여로 3조8005억원을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3조5237억원만 썼다. 집행률 92.7%다. 특히 직업재활급여의 집행률은 51.4%로 저조했다. 고용노동부는 그 이유로 원직장 복귀자 대부분이 복귀 뒤 퇴사해 지출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민주노총 최명선 국장은 “산업재해 피해자가 회사로 복귀하면 퇴사 압력을 받아 어쩔 수 없이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며 “노동부가 현실을 잘 모르거나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심지어 한 푼도 쓰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고용노동부는 요양비 대부사업 예산으로 2010년 5억원을 책정했지만 한 푼도 쓰이지 않았다. 요양비 대부사업은 산업재해 신청 뒤 30일이 지나도 승인 여부가 결정되지 않는 노동자가 치료비 일부를 빌릴 수 있는 제도다. 일단 건강보험으로 치료하지만, 노동자가 내야 하는 본인부담금을 50만~1천만원 한도에서 꿔주는 것이다.
돈 없다며 재해 인정 거부하면서도정부의 이런 이중적 행태에 대해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 반발하고 있다. 정부의 기금 집행이 ‘산업재해 및 직업병을 예방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해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을 증진한다’는 산재보험기금 목적과 어긋난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최명선 국장은 “현재 자가운전 출퇴근 운전자의 산업재해는 인정받지 못한다”며 “외국에서 인정하는 재해를 공단은 ‘돈이 없다’는 이유로 거부하고 있는데, 기금을 공기업 이전 비용으로 쓰는 것은 이율배반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정부 비용으로 하면 좋지만 쓸 돈이 없다”며 “어차피 건물을 짓게 되면 산재보험기금의 자산으로 책정돼 법적으로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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