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7월호
저항의 바람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 광장에선 ‘분노한 사람들’이 한 달째 직접민주주의를 외치며 토론과 축제라는 새로운 혁명의 불을 지폈고, 국가 채무불이행 위기에 직면한 그리스에선 야당과 노조가 긴축재정안에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위기는 만성적인 것인가. 안정적 성장을 구가하는 것처럼 보였던 (주변부) ‘제1세계’마저 심각한 체제 위기에 직면했다. 그러나 금융부채 위기로 촉발된 사회적 위기는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의 땔감이 되고 있다.
(이하 ) 한국판 7월호는 그 땔감 한 가운데의 잉걸처럼 보인다. 먼저 세르주 알리미 프랑스판 발행인은 아일랜드·포르투갈·스페인·그리스에서 추진한 대규모 정리해고와 사회복지 축소, 사유화, 긴축재정 등의 조처가 “시장경제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를 이루는 꿈을 실현시켰다”며 “위기가 자유주의의 섭리를 이루는 셈”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평범한 시기였다면 어느 것 하나라도 실행이 불확실하고, 치열한 투쟁의 대상이 되었을 조처들이 갑자기, 단번에 시행됐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연일까. 알리미는 “사업가들은 이 기회를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된다고 단호하게 판단하고 있다”며 “그들은 유럽연합 등 국제기구를 통해 자국의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용자들은 현 상황에 대해 ‘위기 만세’를 외치고 있다”며 “공권력은 선거를 통해 정통성을 부여받지 못한 국제기구의 감독 아래로 들어갔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제 그리스·포르투갈·아일랜드 대중의 운명은 의회가 아닌 유럽중앙은행·유럽연합 집행위원회·국제통화기금(IMF)의 결정에 좌우될 것”이라며 “유럽연합·IMF 등은 격렬하게 저항하는 (유럽의) 사회운동을 수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어두운 전망을 내놓는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다미앵 미예 제3세계 부채탕감위원회 벨기에 본부 총재와 에리크 투생 제3세계 부채탕감위원회 프랑스 지부 대변인은 디폴트 선언이 그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지급유예 및 부채의 일부 탕감은 결코 대재앙으로 이르는 길이 아니라며 아르헨티나와 에콰도르를 그 예로 든다. 2000년대 디폴트를 선언한 두 나라 모두 부채의 절반을 줄이고 혼돈 상황도 초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 세계은행 수석 경제학자를 지낸 바 있는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이론을 통해 보나 실제로 확인된 것으로 보나 대출 통로의 폐쇄 위협은 과장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미예와 투생은 1980년 공포된 유엔 국제법과 1969년 빈협약을 근거로 디폴트의 법적 정당성을 옹호한 뒤 되묻는다.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새로운 바람이 한반도를 배회하고 있다. 손아람 작가는 그 바람을 포퓰리즘이 아닌, ‘피플리즘’이라 명명한다. 그는 “한진중공업 ‘희망의 버스’와 반값 등록금, 무상 급식 요구가 소셜 네트워크라는 매개를 통해 확산·전파되는 구성력”을 보면서 “이제 지배체제의 의제 ‘처리’ 속도가 의제 ‘확산’을 따라잡을 수 없고, 이에 따라 여론이 조작·선동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고 진단한다. 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의제의 만개에서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일은 반갑다.
한편, 안영춘 한국판 편집장은 ‘희망 버스’를 타고 그 바람의 남쪽 진앙지를 찾았다. 그는 “85호 크레인은 희망의 성역이고, 그 파랑새는 세상의 명물”이라며 “그 서식지는 일시적으로 파괴될지언정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 말한다. “85호 크레인과 파랑새는 도처에 편재할 것이기 때문”이란다. 그러니 알겠다. 한국판 7월호는 억압의 힘 안에서 새롭게 구성할 ‘저항’의 힘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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