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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의 싸움, 절반의 승리

삼성전자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딸의 산재 인정 얻어낸 황상기씨… “인정 안 된 분들 인정받을 때까지 싸울 것”
등록 2011-06-29 18:39 수정 2020-05-03 04:26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가 6월23일 서울행정법원에서 산업재해 인정을 받은 뒤 전화 통화를 하며 웃고 있다. 이날 법원은 황유미와 이숙영씨의 산업재해만 인정하고, 소송에 함께 참여한 다른 3명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한겨레 김정효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가 6월23일 서울행정법원에서 산업재해 인정을 받은 뒤 전화 통화를 하며 웃고 있다. 이날 법원은 황유미와 이숙영씨의 산업재해만 인정하고, 소송에 함께 참여한 다른 3명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한겨레 김정효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딸이 일한 삼성전자도, 국가기관인 근로복지공단조차도 부인한 딸의 산업재해를 법원이 인정했는데도 울지 않았다. 딸이 백혈병을 앓던 2005년부터 6년째 이어진 싸움 끝에 얻은 판결임에도 담담했다. 대신 계속된 싸움을 약속했다.

“법원이 오늘 황유미·이숙영에 대해서만 산재를 인정했습니다. 공정이 다르다고 (다른 이들이) 산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죽은 것 맞습니다. 부분 승소를 희망 삼아 다른 사람들이 이길 수 있도록 해내겠습니다.”

아버지 황상기(56)씨는 투사가 됐다. 2007년 3월 가슴에 묻힌 딸 황유미(당시 23살)씨 때문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작업환경이 딸이 죽은 이유라고 법원이 판단했지만, 아버지는 자신을 먼저 탓했다.

“삼성 안 갔으면 살아 있을 텐데”

“고3 때 유미가 당시 중2인 동생을 위해서 취업을 한다고 했어요. 돈 벌어서 동생 대학교 공부시킨다고 했죠. 나는 말렸어요. 전문대라도 가서 취업하는 것이 더 낫다고 했어요. 그때 내가 전문대에 가라고 좀더 강하게 설득했어야 하는데. 삼성전자에 안 갔으면 우리 딸은 아직도 살아 있는데….”

그는 택시운전을 하며 식당일을 하는 아내와 함께 가정을 꾸렸다. 넉넉지 않은 형편 탓에 딸은 대학 대신 삼성전자를 택했다. 2003년 수능 시험이 치러진 11월보다 한 달 빠른 10월에 취업했다. 그때부터 딸은 휴일에는 가족이 사는 강원도 속초에 왔다. 반도체 공장에서 번 돈으로 식구들 옷도 사줬다. 동생에게는 용돈도 쥐어줬다. 냉면을 좋아해 모두 식당을 찾기도 했다. 황씨가 “행복했다”고 기억한 날들이다.

즐거운 추억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일한 지 2년도 안 돼 2005년 6월 딸은 백혈병 판정을 받았다. 20~30대 10만 명 가운데 2~3명이 걸린다는 희귀병이다. 가족 가운데 백혈병은 물론 암에 걸린 사람도 없었다. 딸과 맞은편에서 함께 반도체 웨이퍼를 여러 화학약품에 담가 세척한 이숙영씨도 백혈병에 걸린 사실을 알았다.

“두 사람이 똑같은 곳에서 2인1조로 일했는데 백혈병에 걸렸어요. 그 희귀한 병을 둘 다 같이 일하다가 걸렸어요.”

아버지는 회사에 산업재해를 문의했다. 회사는 부인했다. 대신 과장이 집으로 찾아와 퇴사를 하면 치료비를 책임지겠다고 했다. 이미 4천만원가량을 병원비에 썼다. 그때 치료비 보상만도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2006년 10월 딸의 사표를 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골수이식으로 차도가 있던 딸이 사표를 낸 뒤 다시 아팠어요. 아주대병원에 입원했는데 직원이 찾아왔어요. 그때까지 들어간 병원비가 4천만원인데 500만원을 들고 왔어요. 그것밖에 줄 수 없대요.”

재발한 병은 더 이상 진척이 없었다. 끝내 눈을 감고 말았다. 장례식이 끝난 뒤 삼성 직원들이 찾아왔다.

“바닷가에서 소주 한잔하자고 해서 횟집에 갔어요. 회도 시켜주고 술도 시켜주는데 하나도 안 먹었어요. 술 먹으면 제대로 말을 못할 것 같아서. 직원들이 ‘아버님, 유미는 개인적인 질병이지 산업재해 아닙니다’라고 했어요. 그 얘기 듣고 ‘왜 산업재해 아니냐’며 욕까지 퍼붓고 바로 일어나 나왔어요.”

아버지의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백혈병의 진실을 알리려고 시민단체와 언론을 찾았다. 삼성을 규탄하는 집회에도 참석했다. 30년 넘게 한 택시운전을 빠지는 날이 많았다. 집회, 기자회견을 비롯해 대책위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활동에 적극 나섰다. 그만큼 돈벌이가 줄었다. 딸을 잃은 아내도 우울증에 시달려 식당일도 아주 가끔 했다. 삼성은 아버지에게 돈을 제안했다.

“아빠가 네가 숨진 원인 밝혔다”

“유미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올 초까지 삼성은 계속 찾아왔어요. 적어도 10번은 넘을 거예요. 오면 떼밀어내기도 하고, 그 사람들 피해서 아내랑 처가로 피신하기도 했어요. 올 초에는 10억원을 줄 테니 삼성을 비판하지 말아달라는 제안도 받았어요.”

그래도 흔들리지 않았다. 딸과의 약속 때문이었다. 병석에 누운 딸에게 한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유미가 병에 걸렸을 때 말했어요. ‘삼성은 아니라고 하는데, 내가 네 병이 왜 걸렸는지 꼭 밝히겠다’고. 내가 유미를 너무 사랑해서 약속한 내용을 절대로 저버릴 수 없어 여태까지 버텨왔어요.”

약속을 지키려고 6년을 싸워왔다. 딸의 산업재해를 인정받은 날도 오전에는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을 찾아 1인시위를 했다. 판결이 내려지기 1시간 전까지 삼성과 맞서 있었다.

시위 뒤 찾아간 법원은 판결을 내렸다. 딸과 동료 이숙영씨의 산업재해를 인정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부장판사 진창수)는 6월23일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황유미씨와 이숙영씨 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황씨와 이씨 등은 백혈병과 업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두 사람이 발암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됐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들이 참여한 실리콘 원판(웨이퍼)을 반도체로 만드는 공정 가운데 ‘확산’(Diffusion)과 ‘습식식각’(Wet Etching) 업무에서 수십 가지 화학물질에 노출됐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는 발암성 물질도 들어 있다. 더욱이 이들이 일한 기흥사업장 3라인의 설비가 가장 낡아서 발암물질에 노출될 가능성도 가장 높은 것으로 판단했다.

아버지는 이 소식을 딸에게 서둘러 전달할 계획이다. 유미가 묻힌 곳을 찾아 몇 마디 건넬 생각이다.

“아빠가 해냈다. 삼성 이겼다. (네가 숨진) 원인 밝혔다.”

하지만 아버지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법원은 소송에 함께 참여한 고 황민웅씨와 투병 중인 김은경·송창호씨 등 3명의 산업재해는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은 “유해 화학물질에 (일시적으로) 노출됐거나 노출됐을 가능성은 인정되지만 지속적으로 노출되었다고 볼 자료는 부족하다”고 판결했다. 또 다른 소송도 진행 중이다. 지난 4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뇌종양에 걸린 한혜경(33)씨 등 4명도 산업재해를 인정해달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과 함께 싸울 생각이다.

“삼성에서 일하다 병들고 죽어간 가족들이 모두 산재 인정을 받을 때까지 싸울 계획이에요. 산업재해보상법이 피해자에게 그 사실을 입증하라고 하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하죠? 이미 일하던 곳은 사라지고 없는데요. 직접 들어가서 볼 수도 없잖아요. 보상법이 바뀔 때까지, 그리고 삼성에 노조가 없어서 견제 세력이 없어서 이런 문제가 생겼으니 이 문제도 해결될 때까지 갈 생각이에요.”

삼성, “기존 역학조사 결과와 다르다”

한편 이날 판결에 대해 삼성은 반발했다. 삼성 쪽은 보도자료를 내어 “반도체 사업장의 근무 환경과 관련하여 공인된 국가기관의 두 차례 역학조사 결과와 다른 판결”이라며 “아직 판결이 확정된 것은 아닌 만큼 앞으로 계속될 재판을 통해 반도체 근무 환경에 대한 객관적 진술이 규명되어 의구심이 해소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권위 있는 해외 제3의 연구기관에 의해 실시된 반도체 근무 환경 재조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공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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