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저축은행은 10조원을 삼킨 괴물이었다. 먹어치우는 데 기준이 없듯 살려는 데도 원칙이 있을 리 없다. 청와대, 국회, 금융 당국. 가능한 모든 선을 찾았다. 구명을 빌고 빌었다. 정권 실세로부터 동아줄이 내려오는 듯했다. 그 썩은 동아줄을 믿고 일부 임원들은 영업정지 전 해외 외유를 떠날 정도의 여유를 부렸다.
은 은행의 핵심 관계자 A씨를 만났다. A씨는 부산저축은행이 침몰하기 전 매일 열린 대책회의와 관계돼 있었다. 퇴출을 막으려는 핵심 관계자들의 회의에서는 수억원대 로비자금의 용처가 보고되고, 대상자가 물색됐다. 물론 모든 것은 비밀에 부쳐졌다. A씨는 “구속된 핵심 관계자들은 지금도 풀려날 것을 기대하며 로비 대상자 모두를 폭로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한다.
대책회의에서 논의된 윤여성·박종록·박태규로 이어지는 정·관계 로비는 주로 김양 부산저축은행 부회장이 계획하고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은 시작일 뿐이다. 금융감독원(금감원) 로비는 김종창 전 금감원장까지 미쳤다. 금감원은 이미 전·현직 10여 명이 구속된 상태다. 금감원 등 금융 당국이 제대로 된 감독·조사권을 행사하지 않은 사이 로비를 위한 돈다발은 특수목적법인(SPC)을 통해 모였다. A씨는 모든 과정을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와의 단독 인터뷰를 쟁점별로 재구성해봤다.
올해 초 대검 중앙수사부는 부산저축은행그룹 박연호 회장을 소환했다. 박 회장은 “정·관계 로비와 해외 자금 도피에 대해 수사할 예정이니 잘 협조하라”는 검찰의 통보를 받았다. 어김없이 대책회의가 열렸다. 참석자 일부가 “로비를 한 게 있으면 사실대로 말하자”는 말을 꺼냈다. 그 자리에서 로비한 당사자로 지목된 것은 김양 부회장이었다. 김 부회장은 이전까지는 “(불법적인) 로비를 한 적은 없다”고 말해왔다. 김 부회장은 당시 회의 자리에서 “불 수 없다. 내가 지금 불면 안에 들어가 있을 때 누군가 빼줄 사람이 없다”며 “힘있는 사람이 봐줘야 나중에 집행유예라도 나온다”고 말하기도 했다. A씨는 “로비가 이뤄졌다는 것을 이때 처음 안 참석자도 있었다”고 말했다.
은행의 핵심 관계자들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로비의 중심에 선 것은 바로 윤여성씨다. 그는 원래 한 건설회사 임원을 지냈다. 자연스럽게 SPC나 프로젝트파이낸싱(PF) 쪽에 관심이 많던 김양 부회장과 친분을 쌓게 됐다. 결정적으로 김 부회장의 신임을 얻게 된 것은 김 부회장이 영남 알프스골프장 사건으로 구속되면서부터다. 2008년 울산지검은 박연호 회장과 김양 부회장, 강성우 감사 등이 영남 알프스골프장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임직원의 친척이나 지인의 명의로 SPC를 만든 다음 사업성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177억원을 대출해준 사실을 밝혀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김 부회장은 엄창섭 당시 울주군수에게 2억5천만원의 뇌물을 건넨 혐의를 받고 구속됐다. 영남 알프스골프장 사건은 편법으로 SPC를 만들어 사업을 벌이고 불법적으로 PF 대출을 하며 정·관계 로비를 벌인 정황으로 미뤄 부산저축은행 사건의 예고편이나 다름없다. 바로 그때 윤씨가 실형이 예정돼 있던 김 부회장이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데 구실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때 김 부회장이 구속돼 실형을 살았더라면 지금처럼 극단적인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거예요.”
A씨가 안타까워한 데는 이유가 있다. 김 부회장이 풀려난 뒤 부산저축은행은 PF 비율을 더 높여갔다. 각 사업들은 시행 단계에서부터 삐걱거릴 정도로 사업성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잦았다. 벤처업체에서나 나설 만한 풍력발전이나 태양광사업까지 진행됐다. 경기침체로 PF 사업이 어려움을 겪자 부산저축은행 그룹 계열사가 휘청였다.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위해 증자가 이뤄졌음에도 은행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금감원 검사와 감사원 감사가 이어졌다. 지난해 김 부회장은 윤씨를 통해 은진수 감사원 전 감사위원을 접촉했다. 금감원 등 금융 당국의 저축은행의 인위적인 퇴출을 막기 위한 전방위 로비가 시작된 것이다. 윤씨는 은진수 전 감사위원 말고도 청와대 고위 관계자와 금감원 관계자 등을 로비 대상으로 삼았다.
“지난해 중반까지 은 위원도 사태가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던 거 같아요. 서류상으로는 문제가 되는 회사가 아니었으니까요. (로비를) 편하게 생각하고 좀 봐준다고 해도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안심한 것은 은 전 위원만이 아니었다. 지난해 6월 KTB자산운용을 통해 증자를 하고 나서 부산저축은행 핵심 관계자 대부분은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는 퇴출 움직임을 감지하지 못했다. 실제로 증자 뒤 임직원이나 일반 예금자들은 의심 없이 후순위채권을 매입하고, 예금 만기를 늘렸다. 연말이 되자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퇴출설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로비 대상이 된 곳마다 탄원서를 냈다.
“겨우 탄원서 넣는 것으로 해결이 되냐고 시끄러웠죠. 당시 회의석상에서 김양 부회장이 직접 ‘이미 봐준다는 사전 조율이 돼 탄원서를 넣은 것’이라는 설명을 한 적도 있어요.”
청와대에도 탄원서가 제출됐다. 김 부회장의 지시로 강성우 부산저축은행 감사가 직접 작성한 탄원서는 민정수석실로는 영업정지 전에 한 차례 넣었고, 영업정지가 끝난 뒤에도 넣었다. ‘조율이 됐다’는 탄원서는 청와대뿐만 아니라 복수의 국회의원들에게도 뿌려졌다.
부산저축은행 고문 변호사인 박종록 변호사를 통해 청와대 등에 접근하기도 했다. 박 변호사는 지난해 7월 고문변호사 계약을 맺은 뒤 지난해 하반기와 올해 금감원, 감사원 등을 접촉했다. 박 변호사를 고문으로 영입한 것은 현 정권의 실세들과의 접점을 찾기 위해서였다. 지난해 말 사법연수원 동기인 권재진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전화를 하고, 청와대에 직접 찾아가 행정관 등을 만나는 등 구명 활동에 나섰다.
하지만 윤씨와 박 변호사의 로비만으로는 감사원, 금감원 등의 압박을 막기는 어려웠다. 현실적인 도움이 필요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은행 핵심 관계자는 “부산저축은행 쪽에서 청와대에 잘못 보여서 그렇다. 청와대에 아는 사람을 뚫어야 한다”는 말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결국 새로운 선을 찾았어요.”
현재까지도 로비스트로만 알려져 있는 박태규씨가 등장한다. “딱 한 건이었는데 6억원이 건네졌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여권 최고위 실세와 선이 닿고 있다는 얘기를 했죠.”
박씨는 박 변호사나 은 감사위원과는 달리 김 부회장 한 사람하고만 통했다. 그래서 다른 핵심 관계자들은 어떤 로비가 이뤄졌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다만 6억원의 돈은 박씨에게 건네진 수십억원대의 돈 가운데 일부였다는 것만 알려졌다. 6억원의 행방은 부산저축은행그룹 핵심 관계자들이 모인 대책회의에서도 얘기가 오갔다.
“당시 거론된 사람은 현 정권의 최고 실세로 분류되는 인사였고 그 쪽으로 돈이 간 것이라고 논의가 됐죠. 김 부회장이 직접 부산지역 A의원을 만나고 왔다는 말도 그 때 나왔죠.”
은 현 정권의 최고 실세로 분류되는 인사 쪽의 해명을 들었다. “(만나거나 탄원서를 받은 일은) 절대 없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하지만 A씨는 “우리가 바보가 아닌 이상 그냥 남들처럼 탄원서를 내지 않을 것 아니냐”며 “검찰에서 이후에 분명히 이 부분은 다시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 지역 A의원과 접촉을 시도했다. A의원 쪽에서는 “당시 탄원서를 들고 찾아온 사람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문제될 만한 일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어 “강 감사가 대전저축은행 인수 당시 금융 당국에서 부당하게 떠안으라고 유도했고 이제는 죽이려 한다는 내용의 자료를 들고 와 설명한 것”이라며 “그 자료를 우리가 청문회 때 공개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렇듯 박씨가 활동을 시작한 뒤 김 부회장은 박씨를 절대적으로 신뢰했으며, 퇴출이 기정사실화된 지난 2월 중순에도 박씨가 부산저축은행의 퇴출을 막아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결국 ‘실패한’ 로비스트 박씨는 김 부회장이 구속된 직후인 4월 캐나다로 도피했다.
3. 뜻대로 된 로비, 뜻대로 되지 않은 로비A씨는 지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있다. 금감원 관계자들이 지난 1년 내내 부산저축은행에 상주하다시피 했으면서도 은행의 부실이 극단에 치달을 때까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금감원과 함께 공동조사를 벌인 예금보험공사도 마찬가지다. 2년 전부터 감사원, 금감원, 예금보험공사가 샅샅이 뒤졌음에도 부실 운용을 막지 못한 것은 아무래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지난 2년은 은행을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금융 당국의 침묵은 결과적으로 로비가 성공한 탓이겠지만, 돌이켜보면 회생의 기회를 날려버린 것 같아 안타깝다. 그 2년 동안 은행도 결국 죽는 길로 들어섰지만 박 회장, 김 부회장 등 은행의 핵심 관계자 개개인도 마찬가지였다.
“은행 고위 임원들이 뒷돈을 엄청나게 감춘 듯 보도가 나오고 있지만 박 회장, 김 부회장 등이 모두 연대보증인으로 묶여 있어요. 개인적으로 축재를 해놓을 만한 인물들은 아닌 것 같은데….”
이뿐만 아니다. 박 회장의 자녀, 동생, 조카 등 일가들도 보증인이 됐다. 여기에 김민영 은행장, 강성우 감사의 친인척들도 연대보증을 섰다.
“가족들은 내용도 모른 채 부산저축은행 관계자의 친인척이라고 손가락질받으면서 그 빚을 다 떠안게 생겼어요.”
가족들을 끌어들인 것은 경영자금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비자금 조성 과정에서도 가족들은 동원됐다. 지난해 1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하며 김 부회장은 햄튼이라는 자산운용회사에서 100억원을 빌리기로 하면서 담보와 함께 대주주 가족 20여 명을 연대보증인으로 세웠다. A씨는 “이 100억원은 회사 경영 정상화를 위한 자금이 아니라 전부 로비에 쓰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부산(저축은행) 퇴출설이 돌기 시작했을 때 진행되고 있던 로비와는 별개로 은행의 핵심 관계자들은 위기의식을 갖고 있지는 않았어요. 특히 박연호 회장은 전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죠.”
경영 전반을 총괄하던 김 부회장도 다르지 않았다. 김 부회장은 외유성 해외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내부적으로는 삼화저축은행 선에서 저축은행 퇴출이 마무리될 것이니 걱정할 것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던 차에 지난 1월14일 삼화저축은행이 영업정지를 당한 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삼화가 영업정지를 당하고 나자 부산저축은행도 예외가 아니라는 얘기가 흘러나온 것이다. 부산저축은행그룹의 핵심 인사인 박연호 회장, 김양 부회장, 김민영 부산저축은행장, 강성우 부산저축은행 감사 등은 대책을 세우기 위해 서울 중앙부산저축은행에 매일 모여 회의를 열었다. 2대 주주인 박형선 해동건설 회장이 부산저축은행 정상화와 관련된 회의에 합류한 것도 이때다.
김 부회장은 2월 초까지 “중앙부산저축은행의 영업정지는 되돌릴 수 없지만 나머지 4개 계열사는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부산저축은행의 계열사는 모두 5개로 부산저축은행, 부산2저축은행, 중앙부산저축은행, 대전저축은행, 전주저축은행이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금융 당국이 대전저축은행도 영업정지를 하려 한다는 정보가 입수됐다.
“부산, 부산2, 전주 등 3개만 살리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어요. 부산에서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재정비하는 분위기였죠.”
핵심 관계자 A씨는 “특히 윤여성씨를 통해 들어오는 정보가 불확실할 때가 많아 실태를 파악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들은 2월 중순에 접어들어 5개 계열사 가운데 영업정지를 피할 수 있는 곳은 단 1곳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한 군데 정도는 어떻게든 살릴 수 있을 것 같아 애썼어요. 사모펀드 운영회사인 칸서스파트너스를 만난 것도 그 때문이었죠.”
칸서스 쪽과의 만남도 부산저축은행 계열사를 살리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부산저축은행은 영업정지 하루 전날 칸서스에 SPC를 통해 관리해온 서울신용평가정보를 매각해 헐값 매각 의혹을 사기도 했다. 김영재 칸서스자산운용 회장도 부산저축은행 영업정지 하루 전날 예금을 인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부산저축은행과 대전저축은행의 영업정지가 있던 지난 2월17일 이후 김양 부회장이 태도를 바꿨다. 김 부회장과 윤씨는 그날 이후 회의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에서 확인해보니 일부 임원은 영업정지 직후인 3월 초 부동산을 처분하는 등 급하게 재산을 정리하기도 했다. 임원 대부분이 자금조달 과정에서 연대보증 등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포기했던 것이죠. 그래도 김양 부회장은 지금까지는 함구하고 있는 것 같고. 윤여성씨가 로비 대상자 얘기를 꺼내고 있는 것 같은데, 어느 선까지 검찰 수사가 진행될지는 지켜봐야죠.”
로비 대상이 된 감사원 감사위원만 3명이다. 대검 중수부는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을 구속한 데 이어 김종창 전 금융감독원장을 소환해 조사했다. 금감원을 넘어 이제 금융위원회로 수사는 확대됐다. 검찰은 지난 6월1일 김광수 금융정보분석원장의 사무실을 전격적으로 압수수색했다. 김광수 금융정보분석원장은 부산저축은행 관계자로부터 수차례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VIP 특혜 인출과 불법 대출로 촉발된 부산저축은행 비리 사건은 이제 ‘공정사회’의 심장을 겨누고 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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