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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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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청년, 꼰대들을 타이르다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성사 도운 청소년인권운동가 공현씨… 고3부터 시작한 운동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젊음의 단단함
등록 2011-05-27 11:54 수정 2020-05-03 04:26

서울에서도 학생 인권의 꽃망울이 무르익고 있다. 지난 5월12일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서울지부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서울지부 등 40여 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이하 서울본부)는 “주민발의의 성사 조건인 서울시 전체 유권자의 1%(8만1855명)를 넘겨 8만5천여 명이 서명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체벌 금지와 두발 자유화 등을 담고 있는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가 성사된 것이다. 이로써 서울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진일보한 학생인권조례안

» 지난 5월16일 오후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 위치한 학생인권조례제정 서울본부 사무실에서 청소년 인권운동가 공현씨가 시민들로부터 받은 서명지를 앞에 두고 밝게 웃고 있다. 한겨레21 이종찬

» 지난 5월16일 오후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 위치한 학생인권조례제정 서울본부 사무실에서 청소년 인권운동가 공현씨가 시민들로부터 받은 서명지를 앞에 두고 밝게 웃고 있다. 한겨레21 이종찬

주민발의 서명운동은 지난해 10월27일 시작돼 지난 5월10일 마감됐다. 원래 종료 예정일은 지난 4월26일이었으나 재·보궐 선거로 2주 연장돼 시간을 벌었다. 4월 말까지만 해도 발의에 필요한 서명인이 2천~3천 명이나 부족해 무산될 위기에 놓였으나 연장 2주 동안 하루 최대 1천 통에 이르는 시민들의 서명용지가 답지해 주민발의에 성공했다.

서명운동의 성공에는 청소년 인권운동가 공현(24)씨의 구실도 컸다. 청소년인권운동단체 ‘아수나로’(‘아름답고 수줍은 나의 로망스’의 줄임말이 아니라 무라카미 류의 소설에 나오는 나무 이름이란다)를 이끌며 청소년 인권운동을 해온 그는 이번 주민발의 운동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지난 5월16일 오후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 있는 서울본부에서 만난 그는 큰일을 마친 사람이 가질 법한 홀가분함 대신, 주소지별로 서명지를 분류하는 작업으로 여전히 분주해 보였다. 먼저 조례 제정까지 앞으로 남은 일에 대해 물었다. 그는 “5월19일까지 청구인 명부 분류·정리를 마친 뒤 20일 서울시교육청에 서명인 명부를 제출할 예정”이라며 “명부를 제출받은 시교육청은 89일 안에 공표, 열람 및 이의 신청, 심사 및 결정 등의 과정을 거쳐 서울시의회에 조례안을 제출하게 된다”고 말했다. 갈 길은 멀지만, 그의 표정은 밝았다.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안에는 △체벌 금지 △야간자율학습·보충수업 강제 금지 △두발·복장 자유 △양심·종교의 자유 △학교 안팎 집회 개최와 참여 허용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럼 서울 주민발의안은 기존의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안과 무엇이 같고 다를까. 그는 “큰 틀에선 비슷하지만 구체적인 부분에선 차이를 보인다”며 “두발규제 금지와 집회·정치활동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는 서울안에 비해, 경기도안은 모호하게 처리된 조항이 있다”고 지적했다. “머리 길이를 규제할 수 없다고 해서 다른 식의 단속은 가능한 것 아니냐는 논란을 낳았고, 집회와 정치활동의 자유에 대해선 양심의 자유로 두루뭉술하게 처리했다.”

정치활동의 자유를 못박은 이유에 대해선 “학칙에 정치활동 금지를 담고 있는 학교가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에 불과하다”며 “성소수자·장애인 관련 조항이 보완된 점도 큰 진전”이라고 덧붙여 서울 주민발의안에 대한 자부심을 엿보게 했다. 내용보다 더 중요한 차이가 있다. 경기도와 달리 서울에선 시민들이 직접 나선 발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진일보한 학생인권조례안이라도 서울 시민들의 동의가 없었다면 빛을 볼 수 없었을 터. 주민들의 동의를 받는 서명운동 과정에서 에피소드가 많았을 것 같았다. “지난해 11월부터 거리 서명운동을 다녔는데 너무 추워서 한 달에 두 번 정도 나갔어요. 설 연휴가 지나고 나서 본격적으로 다녔죠. 서울시 전역을 돌았죠. 오전 10부터 저녁 6시까지 서명을 받았는데 한번은 술 취한 아저씨들이 와서 서명용지를 찢고 행패를 부려 청소년 활동가들이 우는 일도 있었어요. 연신내역 앞에서 서명을 받을 때였는데 휴가 나온 해병대 군인이 ‘이거 전교조가 하는 거 아니냐’며 ‘빨갱이 전교조가 나라를 말아먹는다’고 소리를 지르자,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아무나 보고 빨갱이, 빨갱이하는 당신이 문제’라며 혼냈죠. 임자 만난 거죠. (웃음) 서슬 퍼런 아주머니를 보더니 해병대도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더라고요. ‘아줌마의 힘’을 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 (웃음) 명동에서 서명을 받을 때는 경기도에서 고등학교를 다닌다는 여학생이 인권조례가 생겨서 학교가 정말 좋아졌다며 수고한다고 아이스크림을 사다 주고 간 일도 있었어요. 뿌듯했죠.”

고3 때 시작한 청소년 인권운동

지지와 격려도 있었지만, 예상치 못한 어려움도 많았다. “노점상 아저씨가 와서 내 자리라고 비키라고 할 때도 있었고, 백화점이나 주상복합 관리인 아저씨가 건물 앞에서 하지 말고 치우라고 호통치는 경우도 있었어요.” 힘들었던 때를 복기하면서도 그는 자주 웃었다. 그 웃음에 고단함이 언뜻언뜻 비쳤다. 모든 운동가가 그러하지만,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돼도 그가 그 제도의 혜택을 받을 일은 없어 보였다. 그는 왜 한 푼의 활동비도 받지 않은 채 자신의 이해와 무관한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을 하고 있을까. “그냥 관성적으로 해오다 보니 계속하게 됐어요. (웃음) 제 일이 청소년 인권운동가니까요. (웃음) 그리고 누굴 위해 운동을 한다는 생각은 안 해요. 그냥 저를 위해 하는 거죠. 제가 즐거워서 하는 거죠. 의미 있는 일인데다 다른 운동에는 없는 새로운 운동이 주는 매력도 있죠.”

사실 그의 학생인권운동 경력은 전북 전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18살 때 시작됐다. “운동이라고 말하긴 그렇지만 두발 단속과 체벌, 야자에 대한 반대 등을 담은 유인물을 혼자 만들어 학교에서 뿌리다 징계도 당하고 했어요.” 대입 준비에도 바쁠 고3 시절을 그는 그렇게 보냈다. 공부는 뒷전일 수밖에 없었다. 대학에 가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는 조숙한(?) 수험생이던 그는 부모님의 설득 끝에 대학(사회학과)에 진학했으나 지금은 휴학 중이다. 학과 공부는 재미있지만, 대학을 꼭 졸업해야겠다는 생각은 없다. 그는 “등록금도 비싸고, 그래서 그만둘까 생각 중”이라며 “남들처럼 취업해서 먹고살 거 아니니까 졸업을 해야 할 이유도 없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미래에 대한 고민이나 불안은 없을까. “그런 걱정은 별로 해본 적 없어요. 지금도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는데, 앞으로도 지금처럼 살지 않을까 싶어요. (웃음)”

여자친구, 여자친구의 어머니와 셋이 한집에서 비범한 동거(?)를 하고 있는 그에겐 골칫거리가 있다. 소송 때문이다. 2009년 11월 서울 광화문에서 입시폐지 대학평준화집회가 열렸다. 집회 전 공현씨를 비롯한 청소년 인권운동가 10여 명이 플래시몹(불특정 다수인이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모여 주어진 행동을 하고 곧바로 흩어지는 것)을 하려 준비하고 있는데 경찰이 몇 명을 불법집회 참가자라며 연행했다. 불법집회가 열리기도 전이었다. 그는 여고생을 연행하는 경찰에게 항의했고, 경찰은 그마저도 공무집행방해죄로 연행했다. 연행된 날 저녁 여고생은 훈방됐고, 공현씨는 공무집행방해죄 혐의를 두고 여전히 법정싸움을 벌이고 있다. 다행히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가 변론을 맡아 도움을 주고 있지만, 이래저래 번거롭고 오라 가라 귀찮은 건 어쩔 수 없다.

또래와는 분명 다른 청년기를 보내고 있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시기상조로 여기는 시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체벌 금지와 두발 자유는 다른 나라에서 다 하고 있는 것이에요. 우리나라만 그게 없으면 학생들 통제가 안 된다고 한다면 말이 안 되죠. 인종주의적 태도라고 생각해요. 한국 학생들은 때리고 규제해야 통제가 되는 저열한 존재라는 말이잖아요. 체벌과 두발단속이 있을 때도 학교가 붕괴됐다는 소리는 나왔어요. 마치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면 학교가 붕괴될 것처럼 말하는 건 본말 전도죠.”

경험의 기회가 성숙을 낳아

군대에 가야 하는 그는 병역거부를 생각하고 있다. 거창한 뜻이 아니라, 이미 전과도 있겠다 군대보다 교도소에 있는 시간이 짧겠다 싶어 고민 중이란다. 자신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포장하기 좋아하는 시대에 그는 이처럼 자신을 꾸미지 않는 건강함으로 단단했다. “성숙과 미성숙은 나이가 아니라 경험과 기회의 유무에 따라 갈리는 것이다.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 청소년들은 스스로 자란다”는 그의 말은 자신의 경험담이자 청소년을 신민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우리 시대의 ‘꼰대들’에게 보내는 성숙한 인간의 타이름만 같았다.

글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사진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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