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와 언론이 날씨 변화와 관련해 최근 가장 많이 활용하는 이론을 꼽으라면 단연 ‘지구온난화’다. 이번 겨울 한반도를 덮친 혹독한 한파 탓에 잊기 쉽지만, 지난해 여름의 불볕더위도 만만치 않았다. 밤 최저기온이 25℃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열대야가 12.4일로, 평년(5.4일)의 2배를 넘었다. 기상청과 녹색성장위원회는 지난해 12월26일 펴낸 ‘2010 이상기후 특별보고서’에서 지난여름 폭염의 원인으로 지구온난화를 가장 먼저 꼽았다.
더워도 온난화 탓, 추워도 온난화 탓
여름철 폭염 속에서 지구온난화를 떠올리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울 수 있다.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해 10월26일 서울에서 7년 만에 ‘10월 첫 얼음’이 나타났다. 온난화 이론이 다시 춤을 췄다. 기상청과 몇몇 기상학자가 “온난화란 단지 기온 상승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기온이 상승하면 날씨 변동폭이 커질 수 있고, 기습한파도 찾아올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지난해 전까지 첫 얼음 관측 일자가 점점 늦어지자 이를 온난화의 영향으로 설명하다가, 반대의 사례가 나타나자 또다시 온난화에서 원인을 찾은 것이다.
이번 겨울에는 어땠을까? 지난해 12월 말부터 시작된 한파가 올해 1월 중순까지 계속 이어지자 ‘지구온난화가 한파의 원인’이라는 언론 보도가 줄을 이었다. 반면 2006~2009년에는 유례없이 따뜻한 겨울철 날씨가 계속됐고, ‘지구온난화가 이상난동의 원인’이라는 보도가 매년 쏟아졌다. 날씨가 따뜻해도 온난화, 추워도 온난화 탓이라는 식이었다.
흡연과 음주가 만병의 근원으로 통하는 것처럼, 지구온난화 이론도 모든 이상기후의 비밀을 밝히는 열쇳말이 될 수 있을까? 물론 지구온난화를 적극적으로 이해하는 일부 기상학자는 지난여름의 폭염과 마찬가지로 이번 겨울철 한파 역시 지구온난화에서 이유를 찾고 있다. 대표적인 그룹이 독일의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다.
사실 이번 겨울철 한파는 한반도에만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유럽과 미국 동부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최근 영국에서는 한파와 폭설이 겹쳐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축구 경기가 취소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프랑스 파리에도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다. 샤를 드골 공항 청사 지붕이 눈으로 내려앉을 뻔해 수천 명의 승객이 긴급 대피했다. 북아일랜드에서는 한파로 수도 배관이 터져 4만여 명의 시민이 수돗물 공급을 받지 못했다. 미국 동부에는 블리자드(눈폭풍)가 찾아왔다.
유럽과 미국에 100년 만의 한파와 기록적인 폭설이 이어지자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는 지난해 12월 과학잡지 를 통해 지구 북반구 한파의 원인이 지구온난화에 있다고 주장했다. 온난화로 북극의 빙하가 빠르게 녹아내린 데 따라 ‘북극진동’이 낮아졌으며, 이는 다시 유럽과 미 동부 등 중위도(북위 45도) 지역에 북극의 찬 공기가 몰아치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연구소는 이와 함께 앞으로도 유럽과 북아시아 등 북반부에 겨울철 혹한기가 찾아올 확률이 현재보다 2~3배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온난화가 북극 진동을 낮췄다?북극진동(Arctic Oscillation)이란 북극에 있는 찬 공기의 소용돌이가 수십 일에서 수십 년 주기로 강약을 되풀이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북극 날씨가 따뜻해지면 극지방의 기압이 내려가면서 북극진동 지수가 낮아진다. 따라서 북극 찬 공기의 소용돌이가 약해지면서 중위도까지 내려오게 된다. 최근 중위도 지역에 혹한이 나타나는 이유다. 반대로 북극 기온이 떨어져 기압이 올라가면 북극진동 지수는 올라간다. 이때 중위도에는 ‘이상난동’이라 불리는 따뜻한 겨울이 찾아온다.
유럽과 미 동부의 한파를 지구온난화와 북극진동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해서 이를 곧바로 한반도에 적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우선 한반도가 북극진동의 영향권에 속하는가 하는 부분이다.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은 “최근 국내 언론이 겨울철 한파의 원인으로 북극진동을 많이 거론하는데, 북극이 따뜻해지면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곳은 한반도 북쪽 시베리아”라며 “유럽에서도 남쪽인 포르투갈 등과 위도가 비슷한 우리나라는 북극진동의 직접적인 영향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북극진동만으로는 이번 겨울 한파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 안 소장은 북극진동과 함께 라니냐를 한파의 또 다른 원인으로 지목했다. 스페인어로 ‘여자아이’라는 뜻의 라니냐는 태평양 동쪽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0.5℃ 이상 낮아지는 경우를 말한다. 라니냐가 발생하면 원래 차가운 동태평양의 바닷물이 더욱 차가워져 서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북극진동에 의해 북극의 찬 공기가 시베리아까지 내려왔다면 그곳에 머물고 있는 찬 공기를 한반도로 끌어들인 데에는 라니냐의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본다. 라니냐로 만들어진 동아시아 상공의 저기압이 차가운 시베리아 고기압을 끌어들였다는 설명이 가장 합리적일 듯하다.”
한반도가 북극진동의 간접영향권이라는 사실을 인정해도 물음표는 여전히 남는다. 북극이 따뜻해지는 현상과 지구온난화를 곧바로 연결지을 수 있느냐 하는 의문이다. 김지영 기상청 기후예측과 연구관은 “최근의 한파는 지구온난화와 ‘분명히’ 별개”라고 말했다.
“불규칙한 북극의 이상고온이 원인”“기상청에서는 이번 한파의 원인을 (북극진동에 따른) 북극의 이상고온 현상으로 본다. 언론에 말할 때도 북극의 이상고온을 지구온난화와 별도로 다룰 필요가 있다고 설명하는데, 혼란이 여전한 것 같다. 큰 틀에서 봤을 때 북극의 빙하 면적이 줄어들고 있고, 고위도 지방이 중위도 지방보다 온난화 속도가 2배 빠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 100년 동안 세계 기온이 평균 0.74℃ 오른 것이 지구온난화의 결과라면, 지난해와 올해 북극의 고온 현상은 그 범위를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이상고온’ 현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지구온난화의 결과가 아니라면 북극의 이상고온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기상청에서는 이를 기후의 ‘자연변동성’이라는 용어로 설명했다. 자연변동성은 쉽게 말해 기후가 불규칙적으로 변화하는 현상을 뜻한다. 단기간에 걸쳐 제한된 지역에 이론적으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날씨 변화가 찾아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북극에는 지구온난화 이전에도 자연변동성에 따른 고온 현상이 존재했다는 것이 김 연구관의 설명이다.
“지구온난화는 전 지구적으로 100년 이상 장기간에 걸쳐 기온이 상승한다는 뜻이다. 짧은 기간에 동아시아나 한반도처럼 특정 지역의 날씨가 급격히 변했다고 해서 무조건 지구온난화의 결과라고 할 수는 없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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