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부지검의 한화그룹 비자금 의혹 수사가 길어지고 있다. 2010년 8월부터 시작한 수사가 12월30일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을 세 번째 소환하면서 결국 해를 넘겼다. 김 회장은 앞서 12월1일과 15일에도 소환됐다. 검찰이 재벌 총수를 한 달에 세 번 소환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한화그룹은 이같은 상황에 불만이 많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2차 소환 당시 조사가 오래 걸리더라도 더 이상 소환 조사가 없기를 바랐다”며 “현재 인사는 물론 내년 그룹의 경영계획 수립도 전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승연 회장도 12월15일 2차 소환에서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며 불만을 나타냈다.
비리 의혹이 있는 곳에 대한 검찰의 철저한 수사는 당연하다. 특히 한화그룹은 정보기술(IT) 계열사인 한화S&C 지분을 김 회장의 장남인 동관씨에게 헐값에 넘겨 회사의 이익을 의도적으로 포기했다는 ‘회사 기회 유용’ 의혹을 시민단체로부터 계속 받아왔다. 동관씨의 지분 인수에 한화그룹의 비자금이 쓰였다는 의혹도 사고 있다.
하지만 검찰 내부에서는 서부지검의 수사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검찰 소식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애초 한화그룹에 대한 수사는 대검찰청 중수부에서 맡을 예정이었는데, 남기춘 서부지검장의 요구에 따라 서부지검이 맡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런 사정을 나중에 알게 된 중수부는 김준규 검찰총장(사진)의 처분에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화그룹 전 최고재무책임자(CFO)인 홍동옥(62) 여천NCC 대표이사의 구속영장이 기각되는 등 수사가 지지부진한 상황은 김 총장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다. 더욱이 취임 초 ‘신사다운 수사’를 내세운 김 총장으로선, 서부지검이 20개가 넘는 한화 계열사를 압수수색하고 110여 명의 관계자들을 소환 조사한 상황에서 ‘과실’을 맺지 못할 경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신한은행 사태’에 대한 수사도 김 총장의 입지를 더욱 좁히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애초 신상훈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과 이백순 신한은행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김 총장의 ‘설화’를 만났다. 김 총장은 2010년 12월6일 일부 언론과 만나 신 전 사장과 이 행장 등의 구속영장 청구 방침을 시사했고, 해당 언론은 이를 받아 보도됐다. 이에 따라 수사팀은 ‘미리 짜인 각본에 따라 수사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샀다.
결과적으로 검찰은 불구속 기소로 결론 내렸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부장 이중희)는 2010년 12월29일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신상훈 전 사장과 이백순 은행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신 전 사장은 2005년 3월 이희건 명예회장 명의의 계좌를 개설해 ‘자문료’ 명목으로 15억6600만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횡령)를 받고 있다. 또 이날 사퇴한 이백순 행장도 신 전 사장이 조성한 비자금에서 3억원을 가져가고, 재일동포 주주에게 5억원을 받은 혐의(횡령의 공범)를 받고 있다. 하지만 라응찬 전 회장은 무혐의 처분했다.
내부에서도 “처신에 문제”윤갑근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신한의 규모나 비중을 봤을 때 시스템으로 움직이고 감시돼야 하는데, 수사 결과만 놓고 보면 시스템이 아니라 라 회장 개인의 의사에 따라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는 라 전 회장의 혐의가 있지만 수사 결과는 이에 못 미쳤다는 것을 드러낸 셈이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김 총장의 발언이 수사에 영향을 미쳤고, 그 결과는 미흡했다”며 “김 총장의 처신에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2009년 8월 취임한 김 총장의 임기는 2011년 8월까지다. 아직 ‘임기 말’을 얘기하기 이른 그에게 자꾸 악재가 겹치고 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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