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조용하게, 그러나 딱딱하게 말했다. “아무개 기자”라고 인사하자, 한동안 침묵하더니 “그런데요?”라고 되물었다. 통화 자체가 내키지 않는 듯했다. 몇 마디 대화가 오간 뒤에야 윤성효 부산대 교수(지구과학교육과)는 불편한 마음을 조금 털어놓았다. “기자들은 ‘관측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안 듣고, ‘언제 터진다’는 자극적인 것만 골라 쓴다”고 말했다. 그가 마뜩잖게 여기는 것은 ‘백두산 폭발 임박설’이다. “시기를 특정해 (백두산) 화산의 강한 폭발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사기꾼”이라고 윤 교수는 말했다.
언론에 인용된 학자 “폭발설 말한 적 없어”
그것은 뜻밖이었다. 지난 몇 달 동안 한국 대다수 언론은 윤 교수의 말을 빌려 “2014~2015년께 백두산이 엄청난 규모의 폭발을 일으킬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후 백두산 폭발 임박설은 인터넷 등에서 빠르게 퍼졌다. 그런데 막상 윤 교수는 그 보도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폭발한 것은 백두산이 아니라 ‘백두산 폭발설’ 그 자체였다.
지난 6월19일 는 ‘백두산 화산 4~5년 뒤 폭발’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백두산이 2014년이나 2015년경 엄청난 규모의 폭발을 일으킬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윤성효 부산대 지구과학교육과 교수는 최근 기상청이 주최한 ‘백두산 화산 위기와 대응’ 세미나에서 이같이 밝혔다.” 같은 날 도 ‘2014년쯤 화산 폭발? 백두산이 심상치 않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윤성효 부산대 교수는 ‘중국 학자들이 2014~2015년 백두산 화산 폭발 가능성을 제시하는 등 백두산이 가까운 장래에 분화할 조짐이 확실하다’고 주장했다”고 썼다.
그 뒤에도 관련 보도가 이어졌다. 지난 9월과 10월에는 소방방재청이 백두산의 대규모 폭발을 시뮬레이션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10월7일 는 “북한의 핵실험이 한반도에 대재앙을 가져올 수 있는 ‘백두산 화산 폭발’을 촉발시킬 수 있다”는 신영수 한나라당 의원의 주장을 크게 보도했다. 화산 폭발은 기정사실이 됐고, ‘재앙 시나리오’에 더해 북 핵실험 변수까지 끌어들이며 ‘백두산 폭발 임박설’은 점입가경의 지경에 이르렀다.
국내에는 백두산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화산·지질학자가 없다. 다만 윤 교수가 몇 년 전부터 중국 쪽 관측 자료를 토대로 백두산 연구를 시작했다. 백두산에 대해 윤 교수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국내 학자는 없는 셈이다. 그의 발언이 주목받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윤 교수는 과의 인터뷰에서 “2014~2015년 (백두산) 폭발설은 내가 말한 내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설명하는 정황은 이렇다. 학술회의에 참석한 청중 가운데 한 사람이 질문을 했다. “2014~2015년에 백두산이 폭발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윤 교수가 답했다. “그건 중국 학자의 견해이고, (나에겐) 정확한 자료가 없으므로 답할 수 없습니다. 다만 (화산 활동의) 전조 현상이 있으므로 가까운 미래에 분화될 가능성은 있습니다.”
윤 교수는 “이 문답을 언론이 제 입맛대로 써버렸다”고 지적했다. 그가 말한 ‘가까운 미래’란 지질학적 개념이다. 윤 교수는 “100년 이내에 분화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수십억 년에 걸친 지각변동을 연구하는 지질학자들에게 수백 년은 정말이지 찰나에 가까운 시간이다. 그렇다면 윤 교수에게 질문한 청중은 ‘2014~2015년 폭발설’을 어디에서 접한 것일까?
학술회의 열흘 전인 6월8일, 한국방송은 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천년의 잠, 깨어나는 백두산’을 방영했다. 백두산 화산 위기를 다뤘다. 여기에 등장한 중국 지질관측 연구원이 말했다. “2002년부터 (백두산) 화산이 불안정해지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불안정 화산 활동은) 12~13년 주기인 것으로 보고 있다. 2014~2015년에 이런 현상이 다시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관측지' 중국의 과학 수준 미심쩍어
그가 말한 ‘화산의 불안정한 현상’이란 각종 화산활동을 지칭한다. 윤 교수는 “중국 학자들이 말하는 12~13년 주기의 화산활동은 포괄적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지질학자들은 폭발적 분출부터 미세한 진동까지 모두 화산활동으로 분류한다. 결국 중국 연구원이 말한 것은 “2014년에 폭발한다”가 아니라 “2014년에 (2002년 무렵과 비슷한) 불안정한 화산활동이 일어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중국 학자들이 주목한 ‘불안정한 화산 현상’의 대표적 사례는 잦은 지진이다. 중국 쪽 지진관측소 자료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06년 사이에 백두산 천지 아래에서 평균 진도 3 정도의 미세한 지진의 발생빈도가 늘었다. 많게는 한 달에 250차례나 일어났다. 대부분은 사람들이 느끼지 못했다. 땅 아래 마그마가 이동하면서 생긴다 하여 이를 ‘화산성 지진’이라 하는데, 마그마의 이동은 화산 분출 전에 일어나는 현상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전문가 가운데는 이런 지진이 화산 분출을 알리는 징후인지 불확실하다고 보는 이도 있다. 조문섭 서울대 교수(지구환경과학부)는 “분명한 ‘팩트’(사실)는 백두산 지역의 빈번한 지진활동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오랫동안 그래왔다는 점”이라며 “지진 횟수만으로 당장 화산이 터질 것처럼 말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어린 조카 녀석이 인터넷에서 뭔가를 보고 와서는 ‘삼촌, 백두산이 곧 터진대요’ 하고 말하기에, 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답해줬다”고 덧붙였다.
중국의 관측 자료를 완전히 신뢰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관계자는 “현재로선 중국이 백두산 연구의 선두주자이긴 한데, 불과 수십 년의 관측 기간과 관측 방법을 볼 때 수년 뒤를 예측한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말했다. 지질학계의 관측 주기는 며칠 뒤를 보는 ‘단주기 예측’, 몇 달 뒤를 보는 ‘중주기 예측’, 몇 년 뒤를 보는 ‘장주기 예측’ 등으로 구분된다. 이 관계자는 “현재 중국의 수준은 단주기와 중주기 사이를 관측하는 정도”라며 “그런 능력으로 몇 년 뒤에 어찌 된다고 말하는 것은 과학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홍태경 연세대 교수(지구시스템과학과)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2014~2015년 (폭발 임박)설은 중국 학자의 관측 결과인데, 사실이라면 국제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연구 결과인데도 관련 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1999년 백두산 주변에 지진 관측계를 설치했다. 지진 관측계를 많이 설치하면 그만큼 많은 지진을 감지할 수 있다. 중국이 관측을 본격적으로 개시한 시점과 백두산 일대에 잦은 지진이 발생한 시점이 겹치는 것에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중국의 자료조차 오랫동안 축적된 결과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관측 개시 10년이 지나지 않아 “화산활동의 주기가 12~13년으로 보인다”고 내다보는 것 역시 미심쩍은 대목이다. 2014년 화산활동이 재개될 것이라는 중국 학자의 관측이 완벽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언젠가는 폭발한다, 그러나…”결국 ‘2014년 백두산 폭발설’은 적어도 서너 단계 이상의 논리적 비약과 과장, 오독과 오해를 거쳐 만들어졌다. 그 주창자로 지목된 국내외 학자 가운데 누구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남는 질문이 있다. 그렇다면 백두산은 폭발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학자들은 이 질문에 고개를 가로젓는다. 윤성효 교수는 “국제 화산학자들이 백두산이 화산 위기를 맞았다고 진단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관계자도 “폭발이 (몇 년 내로) 임박했다는 이야기는 과학적 근거가 없지만, 백두산이 활화산이라는 점은 모두가 인정한다”고 말했다. 지질학자들이 말하는 ‘화산활동’ 또는 ‘활화산’ 등의 개념에는 미세 진동 등 모든 종류의 화산 현상이 포함되고, 그들이 관측하는 미래는 수십~수백 년에 걸쳐 있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백두산은 언젠가 폭발할 것”이라는 진단은 진실에 가깝다.
그러나 언젠가 지구는 초신성에 흡수돼 우주에서 사라질 것이다. 언젠가는 우주도 팽창을 중단하고 빅뱅 직전의 원점으로 쪼그라들어 절멸해버릴 것이다. 미래 예측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얼마나’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가치가 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관계자는 그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현재로 보아 정답은 ‘모른다’이다.” 홍태경 교수는 이렇게 표현했다. “백두산이 활화산성 운동을 하고 있고 이게 지속되면 언젠가 폭발한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게 10년 뒤일 수도 100년 뒤일 수도 있다.”
예측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화산 분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지속적·장기적으로 관측하는 것이다. 지질학자들은 △화산성 지진의 증가 △마그마에서 올라온 가스 분출량의 증가 △화산의 지속적 융기 등을 통해 화산 폭발을 예측한다. 1991년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 폭발의 경우, 학자들이 이런 방식의 모니터링을 통해 폭발 하루 전 주민들을 대피시켰다. 다만 이런 관측으로는 며칠 또는 몇 달 뒤의 화산 분출만 예고할 수 있다. ‘단주기’ 또는 ‘중주기’ 예측이다. 미국·일본 등은 화산 아래 마그마가 다니는 길, 즉 ‘화도’까지 시추해 마그마를 직접 관찰하는 방식을 2003년부터 시도하고 있다. 국제 학자들이 대거 참여한 공동 프로젝트다. 몇 년 뒤를 내다보는 ‘장주기’ 예측을 의도하고 있다.
윤 교수가 지난 6월 학술회의에서 강조한 것도 바로 ‘국제 공조 모니터링’이었다. 하다못해 지진 관측 자료라도 있어야 화산 폭발 가능성에 대해 가타부타 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망은 어둡다. 백두산은 중국과 북한의 국경지대에 있다. 북한에는 관측시설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일본 등에 지진 관측계를 제공해달라고 북한이 요구한 적이 있다. 참여정부 말기인 2007년 12월이었다. 지진 관측계는 핵실험 등에 쓰일 수 있는 ‘전략시설’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북한이 백두산을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한국 또는 일본이 공조할 길이 가로막혔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관계자는 “중국은 (공조 관측이) 더 어렵다”고 말한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에서 ‘간도 회복론’이 제기되고, 중국 역시 ‘동북공정’을 앞세우면서 백두산 일대는 일종의 영토분쟁 지역이 됐다. “예컨대 일본 지질학자들이 ‘다케시마를 공동 연구하자’고 제안해오면, 그걸 한국 학계가 쉽게 받아들이겠느냐”고 그는 말했다. 최근 한-중 관계가 껄끄러워지면서 이런 상황은 더 굳어지고 있다. 국내에 알려진 백두산 주변 지진 관측 자료는 중국 학자들이 제공한 것이다. 그런데 2008년 이후 갑자기 중국 학자들의 자료 제공이 중단됐다. 이명박 정부 출범 및 한-중 관계 경색과 시기가 겹친다.
남북·중·일·러 공동연구 시급결국 검증할 자료도 없이 중국 학자들의 입만 쳐다보게 생겼는데, 그 절실함이 한반도에 사는 사람과 같을 수 없다. “중국에서 백두산 일대는 변방에 불과하다. 백두산 화산활동을 (우리처럼)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자연현상으로 여긴다. 그래서 기본적인 관측만 실시한다.” 윤 교수는 백두산 화산 관측을 중국에만 맡겨두는 일을 걱정하고 있다. 한국·중국·일본·러시아, 그리고 가능하다면 북한이 동참하는 국제 공동연구가 시급하다고 본다.
여기에 이르러 백두산 화산 폭발 임박설은 지질학이 아니라 정치·외교의 문제로 넘어간다. 홍태경 교수는 “관측과 연구를 하고 싶어도 자료를 얻을 방법이 없다. 민간 차원에서 될 일이 아니다. 정부가 나서서 공동연구 협약이라도 맺어야 한다”고 말했다. 백두산 천지 아래 마그마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얼마나 폭발할 것인가? 그 질문은 정부에 돌려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이에 답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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