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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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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달 할머니의 부침개 맛보러 오세요

지역 자원 이용해 주민 스스로 마을을 키워보자…

‘커뮤니티 비즈니스’ 도입한 전북 완주 비비정마을 이야기
등록 2010-10-14 11:23 수정 2020-05-03 04:26
전북 완주군 삼례읍 비비정마을은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시작하면서 낡은 대문이 색색의 그림으로 옷을 입으며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전북 완주군 삼례읍 비비정마을은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시작하면서 낡은 대문이 색색의 그림으로 옷을 입으며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칼국수랑 부침개랑 내놓겠다고 했더니 좋대요.” 10월5일 오후 3시, 전북 완주군 삼례읍 비비정마을 경로회관에 정도순(60) 부녀회장이 들어서며 ‘보고’를 한다. 10월28~30일 열리는 대둔산 축제에 이 마을도 참가하기로 했는데, 행사장 한켠에서 관광객들에게 판매할 음식을 축제 주최 쪽과 상의하고 오는 길이다. 회관에서 이야기꽃을 피우거나 잠깐 낮잠을 청하던 이 마을 할머니 일고여덟 명이 일제히 정 회장의 말에 귀를 쫑긋 세운다.

“칼국수엔 색깔도 넣으면 좋겄제?” 정 회장의 말에 우르르 의견이 쏟아졌다. “우리 집에 복분자 있어. 복분자로 하면 돼.” “복분자도 하고, 시금치물, 오징어먹물도 하고….” “개운하도록 당근 넣고, 호박 넣고. 호박은 파란 놈으로 갖고 와.” “육수물은 다시마에 무에… 맛있게 해야 하는디.” “큰 들통에 준비해갖고 가서 끓이고,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1인분씩) 바로바로 부슬(부을) 수 있게 해간디.” “임자는 (반죽을) 밀고, 나는 썰고. 밀고 써는 걸로 손님을 끌어야제.” “부침개는 옛날 식으로, 솥뚜껑에 부쳐야 호기심으로 와서 먹겠지?” ‘건달 할머니’라는 별명답게 다들 큰 소리로 말을 주고받는다. 하지만 축제에서 손맛 제대로 낸 음식을 많이 팔아보자는 목표는 같다. 그래서 결론도 쉽게 난다.

자치역량 강화·경제 활성화, 두 마리의 토끼

비비정. 이 마을을 감싸고 흐르는 삼례천이 가장 잘 내려다보이는 곳에 지어진 정자다. 옛날 ‘한내’로 불린 삼례천과 주변 백사장에 내려앉은 기러기떼를 비비정에서 바라보는 것은 ‘비비낙안’(飛飛落雁)이라 하여 완주8경의 하나로 꼽힌다. 만경강이 시작되는 지점인 삼례천과 주변 금모래는 풍류를 더하는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마을의 가난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다. 마을 자체가 언덕이어서 큰 농사를 지을 만한 땅이 없는 이곳에 한국전쟁 때 피난민이 모여들었다. 먹고살 방법은 강에서 잡은 물고기와 강 주변에서 파낸 모래를 내다파는 것밖에 없었다. 큰돈을 벌 수 없는 일이었다.

세월이 흘렀고, 주민들은 마을 가까이 생긴 공장으로, 가게로, 학교로 일을 나갔지만 형편이 쉬이 나아지진 않았다. 인심은 곳간에서 난다 했던가. 지금도 비비정엔 어느 마을에나 있는 마을회관이 없다. 주민들이 마을회관 지을 돈을 갹출할 만한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모내기나 가을걷이처럼 큰일이 있을 땐 품앗이를 했지만, 이웃집 숟가락 개수까지 꿰고 살기엔 먹고살기가 너무 바빴다. 50여 가구밖에 안 되지만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마을일을 함께 해본 경험이 거의 없었다. 그런 비비정 사람들이 군 축제 참가에 의기투합할 만큼 조금씩 변하고 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변화는 ‘커뮤니티 비즈니스’(Community Business)에서 움텄다. 커뮤니티 비즈니스는 지역사회의, 지역사회에 의한, 지역사회를 위한 사업이다. 즉 지역 주민이 주체가 돼 해당 지역의 경제·사회적 문제를, 지역의 자원을 동원해 해결하는 것을 말한다. 공동체의 자치역량 강화와 일자리 창출, 소득증대를 통한 지역순환 경제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음으로써 지속 가능한 지역사회를 만드는 것이 바로 커뮤니티 비즈니스의 목표다.

커뮤니티 비즈니스에 관심이 있던 완주군은 지난해 1월 비비정에 농림수산식품부의 ‘신문화공간조성사업’ 공모 신청을 제안했다. 삼례신협 간부로 일하며 주민들의 신망을 받던 김영두씨가 “우리 마을도 소득이 늘어나고 잘살 수 있게 된다. 잘살 수단이 생기면 자식들도 다시 마을로 돌아와 어르신들을 모시고 살 수 있지 않겠느냐”며 적극적으로 주민들을 설득했다. 피난온 부모님을 따라 이 마을에 온 대여섯 살 때부터 지금까지 60년 가까이 비비정에 살면서 누구 못지않게 마을 사정에 밝은 이였다. 간절한 마음이 전해졌는지, 자연환경·역사유산 등을 인정받아 비비정은 3년 동안 28억원을 지원받게 됐다. 그해 6월 마을 주민협의회와 완주군, 희망제작소를 주축으로 ‘비비힐 추진사업단’(사업단)도 꾸려졌다. 사업단 위원장은 김영두씨가 맡았다. 희망제작소에서 실무진도 투입했다(상자 기사 참조).

커뮤니티 비즈니스의 개념

커뮤니티 비즈니스의 개념

예술농활 등 마을 자원 활용한 사업 벌여

사업단이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주민들에게 커뮤니티 비즈니스가 무엇인지를 알리고, 이웃과 소통·협의할 수 있도록 연대감·소속감을 깊이 느끼게 하는 작업이었다. 소득을 높일 수 있는 마을의 자원이 무엇인지 주민 스스로 찾아내는 것도 중요했다. 주민 70여 명 가운데 80%가 70대 이상 할머니라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 마을 곳곳, 이웃의 얼굴과 손발을 사진으로 찍고 이야기를 나누게 했다. 자신이 가꾸는 텃밭에 뭘 기르고 있는지, 텃밭을 가꾸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한 뒤 수작업으로 작은 책도 만들었다. 집집마다 가장 잘 만드는 요리의 비법을 자랑하는 시간도 가졌다. 대부분 50년 이상 부대끼며 살아온 이웃이자 동네였지만, ‘이런 사람이었구나’ 새삼스럽고, 처음 가본 동네처럼 신선했다. 막연히 ‘농가 레스토랑’을 만들어 운영하려던 사업단의 계획에 주민들의 호응을 얻은 음식 12가지라는 살도 붙었다.

부녀회 공동텃밭도 마련했다. 마을 들머리 약 991m²(300평)의 땅을 빌렸다. 공동텃밭에서 일하는 이에겐 시간당 2천원을 줬다. 감자를 심었고, 콩을 길러 청국장을 만들어 팔았다. 600만원이 모였다. 주민들이 마을 공동의 일에 애정과 열정을 기울이는 일은 정도순 부녀회장이 느끼기에도 놀라웠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귀도 어둡고 깜깜한 마을이었어요. 우리 집에 모 심는 기계, 약 허는 기계 다 있응게 경로당 연료비 아낀 돈으로 남의 논 임대해서 쌀 수확해 마을 자금으로 쓰자는데도 힘들다고 안 해. 근데 이 사업 하면서 주민들이 화합이 돼. 인자는 뭐 하자고 하면 하지 마라는 사람은 없어요.”

지난여름엔 좀더 큰 사업을 벌였다. 청소년을 불러 주민과 함께하는 ‘예술농활’을 진행한 것이다. 사업단의 아이디어에 주민들은 “회관도 없는데 잠은 어디서 재우냐. 밥은 어디서 먹이냐”고 걱정했지만, 사정이 되는 집에 예닐곱 명씩 데려다 재우고 마을 들머리 양수장 공터에 천막을 설치해 밥을 해먹이기로 결론을 냈다. 7월26~31일 엿새 동안 중고생 50명과 진행 스태프 30명이 비비정에 모여들었다. 걱정과 달리 아이들이 맛있게 음식을 먹는 걸 보면서 주민들은 ‘식당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조용하던 집이 손자 또래 아이들로 북적대고, 이들이 생태지도를 만든다, 비비정 홍보 동영상을 찍는다며 휘젓고 다니니 마을에 생기도 돌았다. 수익금 150만원도 뿌듯했지만, 아이들이 전해주는 에너지에서 느끼는 즐거움이 더 소중했다.

물론 이런 변화가 모두에게, 한꺼번에, 순식간에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예술농활만 해도 사업에 드는 1천만원으로 길이나 담을 고치라며 불만을 제기하는 주민도 있었다. 추진단 사업비 가운데 가장 큰 덩치를 차지하는 레스토랑 건설을 맡으려고 다툼이 벌어지기도 한다. “왜 레스토랑 등기를 군 앞으로 하느냐”고 따지는 이도 있다. 레스토랑 건설비는 추진단 사업비에서 나가지만 건물 소유주는 완주군으로, 사업단이 싼 가격에 임대해 운영하게 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사업이 망하면 누가 책임지느냐”며 커뮤니티 비즈니스 자체의 정체성에 의구심을 드러내기도 한다.

비비정에 상주하며 추진단 실무를 총괄하는 소영식 희망제작소 뿌리센터 연구원은 “크고 작은 갈등은 언제나 존재한다. 이 갈등을 주민들의 힘으로 해결하는 과정 자체가 커뮤니티 비즈니스의 한 축”이라며 “함께 일하고 수익을 내면서 재미를 느끼고,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주민들이 앞장서서 설득도 하면서 스스로 일을 기획하고 책임지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전북 완주군 삼례읍 비비정마을 주민들이 10월5일 경로당에 모여 이달 말 참여할 대둔산 축제에서 어떻게 음식을 판매할지 의논하고 있다.

전북 완주군 삼례읍 비비정마을 주민들이 10월5일 경로당에 모여 이달 말 참여할 대둔산 축제에서 어떻게 음식을 판매할지 의논하고 있다.

원조는 ‘파워빌리지’ 안덕마을

완주군 구이면 안덕마을은 커뮤니티 비즈니스 1호로 꼽힌다. 주민이 출자해 마을회사를 운영한다는 점에서 안덕마을은 비비정의 ‘참고서’다. 처음부터 그렇진 않았다. 2007년 9월 주민들이 마을 자원을 활용해 소득을 창출하려는 마을을 지원하는 완주군의 ‘파워빌리지’ 사업에 선정됐다. 안덕마을은 모악산 자락에 있어 등산로로 바로 진입할 수 있고 공기도 맑은데다 연간 3만~4만 명이 찾는 유명한 민속한의원이 있다. 전주에서 사업을 하다 1995년 고향으로 돌아온 유영배(46) 촌장은 “주민들이 한의원 고객 한 사람에게 1천원씩만 벌어들일 수 있다면, 형편이 훨씬 나아지지 않겠느냐”며 주민들에게 건강을 주제로 한 사업을 제안했다. 주말농장, 김치 담그기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한편 유기농 배추·고추 등으로 만든 김치, 죽염으로 만든 된장·간장, 감효소 등도 만들어 팔았다. 그렇게 2008년 한 해 동안 올린 매출은 1천만원. 식재료는 대부분 마을에서 재배한 것이어서 마을에 도움이 되고, 일에 참가하는 주민들에게 단기적이나마 일자리를 만들어준 성과는 있었지만 거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주민들이 출자해 영농조합법인을 만들어 마을 사업을 좀더 키워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주민들에게 말을 꺼냈지만, 당장 수익을 보장할 수 없는 일에 100만원 이상씩 투자하자는 제안에 선뜻 나서는 이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기자·교수 출신의 귀농인, 뜻 맞는 주민 5명이 유 촌장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이웃을 설득했다. 민속한의원 이상호 원장도 이 마을 출신이라 도울 수 있는 일은 돕겠다며 팔을 걷어붙였다. 한의원이 운영하던 황토찜질방과 유기농 채소 중심의 식당을 주민들에게 임대해주기로 한 것이다. 2009년 1월 23명으로 시작한 ‘안덕 파워영농조합법인’은 여덟 달 만에 조합원이 두 배 넘는 53명으로 늘었고, 출자금도 1억3천만원이 됐다.

이 종잣돈으로 찜질방 임대료를 내고 아토피힐링캠프, 건강·힐링교실 등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강연은 이상호 원장과 한의원 직원들이 맡았다. 황토로 원룸형 펜션 4동을 지어 숙박도 가능해졌다. 교육장 겸 단체 숙박시설은 도로공사 때문에 허물게 된 이웃마을의 서원을 옮겨왔다. “법인 돈 다 까먹으면 어떡하냐”는 주민들의 우려는, 적자가 날 경우 찜질방·펜션 상근자로 고용된 운영위원 8명이 월급을 받지 않기로 약속하면서 누그러뜨렸다. 처음 70여만원에 그치던 운영위원 월급은 마을이 입소문을 타며 두 배로 올랐고, 손님이 몰리는 주말이나 단체손님을 받을 때 운영하는 식당에서 몇 시간 일을 해주는 할머니들은 4만~5만원씩 돈도 벌었다. 이전부터 팔던 김치·간장·된장 등의 매출도 덩달아 뛰어 법인 전체 소득은 2009년 1억4천만원, 2010년 1~9월 2억7천만원을 기록했다. 법인 자산도 8억원에 이른다.

돈이 전부가 아니다. 사람 구경에, 먹이는 재미도 쏠쏠하다. 전날 밤 단체손님 25명의 야식을 마련해주는 일을 돕고 왔다는 주민 이순례(73)씨의 얘기다. “용돈 생각하고 가가니? 낮에 밭에서 일허고 밤에 가니 피곤허긴 헌데 여럿이 있으니까 재밌고. 호박·고추·깻잎 넣어서 이만씩 하게 부친 부침개를 한자리에서 금방 먹어싸니 보기 좋제. 동동주도 여기서(집에서) 히서 가그든. 배불러서 다 못 먹겠다면서 남은 놈 다 싸갖고 가니 기분이 좋제.” 노인이 대부분인 마을에서, 드나드는 사람은 활력소다.

소통과 실험 통해 자생력 기르는 게 관건

물론 안덕마을이 커뮤니티 비즈니스의 완성태는 아니다. 유영배 촌장은 “주민들도 아직은 적극적으로 나서기보단 관망하는 사람이 더 많다. 귀농인 몇몇은 ‘산 속에 조용히 살려고 왔는데 왜 자꾸 귀찮게 하느냐’며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며 “매달 네댓차례 여는 법인 회의에서 주민들과 소통할 방법을 찾아 마을의 문제를 우리가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을 공유해야 한다. 또한 위생검사 강화, 품질 향상, 판로 개척을 위한 시장분석 등에도 더욱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어느 마을이든 주민들이 공동으로 상품을 개발하거나 만들어 팔아본 경험은 많지 않다. 비비정도, 안덕마을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두 마을이 특별할 수 있는 건 마을이 처한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주체가 마을 안에 있고, 이들을 중심으로 마을 자원이 무엇인지 적극적으로 파악·활용하는 한편 주민들과 소통과 실험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점이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실행하는 데 중요한 요건이라고 본다. 완주군 지역경제순환센터의 김창환 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 국장은 “주민들이 ‘행정기관 지원이 끊긴 뒤에 인건비는 누가 주느냐’고 묻는 대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자생력을 기르는 데 정해진 길은 없다. 주민들 스스로 각각의 마을이 처한 상황에 맞게 각자의 커뮤니티 비즈니스 모델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공통적으로 기억해야 하는 점은 성급한 성과물을 기대해선 안 된다는 점이다. 자생력을 기르는 덴 시간이 필요하다. 속도전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완주군식 커뮤니티 비지니스
지역에 맞춤한 사업을 도출하라

전북 완주군엔 다른 지역에서 찾을 수 없는 몇 가지가 있다. 농촌활력과와 커뮤니티 비즈니스계, 그리고 ‘지역공동체 활성화 사업 육성에 관한 조례’ 즉 커뮤니티 비즈니스 육성 조례다. 지난 7월 신설된 농촌활력과는 농촌 발전 정책과 민·관 협력이 담당 업무인데, 커뮤니티 비즈니스계는 이 과에 속해 있다. 커뮤니티 비즈니스 육성 조례는 지난해 12월 제정됐다. 군 조직과 제도에서 드러나듯 완주군은 다른 지방자치단체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뮤니티 비즈니스에 공을 들이고 있다.
시작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민간 싱크탱크인 ‘희망제작소’는 지방자치단체자들을 상대로 커뮤니티 비즈니스 관련 일본 연수를 기획했는데, 임정엽 완주군수가 여기 참여했다. 전북에서 완주 산업단지는 2005년 말 기준으로 대기업 유치 1위였고, 분양률도 94.4%나 됐다. 대기업 유치로 투자액이 4천억원에 가까웠고, 일자리도 1700여 개가 만들어지면서 경제전문지에서 ‘기업하기 좋은 도시 대상’을 받기도 한 완주였다. 하지만 내실이 없었다. 대기업이 내는 지방세 120억원은 전체 재정의 3.8%에 불과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13개 업체가 부도를 냈다. 일자리 역시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로 채워져 전주에 살면서 일만 완주에서 하는 이들이 적잖았다. 전국적으로 알려진 농산물 브랜드도 없었다. 인구 고령화와 농촌 공동화가 완주만 피해갈 리도 없었다. 근본적인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에 임 군수가 만난 게 커뮤니티 비즈니스였다.
2008년 3월 완주군과 희망제작소는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2008년 7월~2009년 6월 ‘신택리지 사업’ 즉 커뮤니티 비즈니스의 바탕인 지역 자산 기초조사를 진행했다. 마을에서 활용 가능한 자연생태·역사문화·공동체·경제·인적 자원이 무엇인지 샅샅이 파악하고, 사업화할 수 있는지를 평가해 커뮤니티 비즈니스 자원 445개와 모델사업계획 66개를 도출해냈다. 미리 세운 사업계획에 마을을 끼워 맞춘 게 아니라, 마을에 적합한 사업계획을 찾아낸 것이다. 그 사이 각 마을 리더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커뮤니티 비즈니스 학교를 운영했다. 군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교육도 수시로 진행했고, 1년에 한 명씩 1년간 희망제작소에서 연수를 받는 프로그램도 생겼다. ‘비비정’(飛飛亭)이 신문화공간조성사업에 선정된 건 이런 조사와 준비 덕분이었다.
지난해 7월 처음으로 완주군의 커뮤니티 비즈니스 시범사업을 공모해 4개 사업이 선정됐고, 지난 2월 공모 사업까지 포함해 현재 장애인 등이 쿠키를 만들어 판매하는 ‘마더쿠키 사업’, 의류·생활용품을 리폼해 판매하는 ‘업그레이드 사랑나눔 토요장터’ 등 22개 시범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시범사업을 지원하고, 주민 역량 강화 교육을 맡는 지역경제순환센터도 지난 5월 문을 열었다.
완주의 미래는 계획대로 찾아올까? 계획이 ‘주민이 중심이 되는 상향식 의사소통 구조’에 기반한다면, 조금은 기대를 품어도 좋지 않을까?

완주=글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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