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방송 <pd>이 보도한 건설업체 전 사장 정아무개(51)씨의 ‘검사 향응 리스트’가 공개되면서, ‘떡검’에 이어 ‘성검’ ‘섹검’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고 있다. 정씨는 검사들을 관리하기 위해 금품에서 술자리, 성접대까지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검찰 ‘스폰서’ 문화의 단면이 적나라하게 공개된 셈이다. 문제는 드러난 스폰서 문화는 빙산의 일각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font color="#00847C">‘인지상정’인데 책임 지라면 지겠다?</font>
검찰의 스폰서 문화가 ‘문화’로 자리잡는 데는 ‘온정주의’가 크게 작용했다. 검사들 스스로도 스폰서 문화를 ‘인간관계의 일종’으로 생각하는 관행이 가장 문제라는 데 동의한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어떤 내용일지 안 봐도 알겠어서 방송을 보지 않았다”며 “문제는 이같은 관행화된 접대 문화를 인간관계의 하나로 생각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정씨한테 접대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부장검사가 방송에서 “어느 정도는 인지상정 아니겠습니까? 그런 부분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면 그 부분은 책임을 지겠습니다”라고 항변한 것이 그 방증이다.
또 검사들은 폭넓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자기 입지를 다지는 데 도움이 된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부장검사 정도 되면 부하 검사와 수사관 등 40~60명에 이르는 ‘식솔’을 거느리게 되는데, 밑에서 고생하는 부하들에게 회식 한 번쯤은 제대로 시켜줘야 리더십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지휘하는 사람 입장이 되면 고생하는 부하들 업무 스트레스도 한 번쯤은 풀어주고 싶은데, 검사도 월급쟁이 신세는 마찬가지라 스폰서의 유혹에 빠지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직에 있는 동기들에게 농담처럼 하는 말’이라며 “여기저기에서 향응 제공하겠다는 사람이 줄을 설 텐데, 이를 물리쳐야 훌륭한 검사가 될 수 있다. 결국 집에 돈이 많거나 적어도 장인 어르신이 돈이 많아야 훌륭한 검사가 될 수 있다는 농담을 하곤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지점에서 거래관계가 생긴다는 점이다. ‘선배로서의 권위’ 또는 ‘격에 맞는 놀이문화’를 원하는 검사는 검찰의 힘에 군침 흘리는 ‘스폰서’와 일종의 교환 계약을 맺는 것이다. 정씨는 방송에서 “(접대를 해두면) 무슨 어려운 일이 있다 그러면 100% 봐준다. 검찰, 경찰 한마디에 따라서 회사가 죽고 살고 그런 시대였다”고 말했다. 한 법무부 관계자도 “검사들이 이른바 스폰서와 만나 공짜로 술을 마셔도 사건 청탁은 안 들어주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러나 그 스폰서가 ‘나 아무개 검사와 친하다’라고 말할 빌미를 주는 순간, 스폰서는 지불한 돈만큼의 효용을 얻게 된다”고 말했다. 검사의 한마디가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권능을 발휘하기 때문에, 그들과 인간관계를 가지는 것 자체가 스폰서의 사회적 지위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이같은 거래관계는 ‘이래도 되는구나’ 하는 학습효과를 통해 문화처럼 번진다. 정씨는 “한번은 부장검사를 통해 자리를 가졌던 평검사들이 ‘부장님 없이 우리끼리 따로 보자’고 해서 함께 술을 마시고 계산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부산의 한 부장검사는 검사장과 함께 정씨를 만나고 나서 불과 10여 일 뒤 자기 부서 회식에 정씨를 스폰서로 부르기도 했다. 한 평검사는 “습관이라는 게 참 무서운 거 아닌가”라며 “요즘 그런 부장님은 거의 없지만, 그런 모습을 보면 허물없이 만날 수 있는 사업가 친구 있는 게 그렇게 나쁜 일인가 싶은 생각도 들게 된다”고 고백했다.
특히 이런 스폰서 관계의 거래 규모는 검사가 가진 권한에 정확히 비례한다는 것이 검찰 안팎의 평가다. 지난해 7월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는 한 사업가에게 담보 없이 15억5천만원을 빌리고 그와 부부동반으로 함께 외국여행을 다녀온 사실 등이 드러나 스폰서 의혹이 제기되자 후보직을 사퇴했다. 두 달 뒤에는 민유태 당시 전주지검장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한테서 1만달러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 사직했다.
이 지점에서 검찰이 구조적으로 너무 많은 권력을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스폰서 문화의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형사법)는 “스폰서 문화는 결국 검찰이 비대한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에 불거지는 문제”라며 “기소권을 독점한 검찰이 법원의 최종 결정에 이르기 전에 너무나 많은 재량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탐내는 스폰서가 줄을 서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검사 향응 리스트’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려는 의지를 밝히며, 이례적으로 ‘비검찰’ 출신인 성낙인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위원장으로 한 진상조사위원회를 발족시켰다. 그러나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것은 별개 문제로 하더라도, 이런 병폐적 문화 현상을 뿌리 뽑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이번 파문의 당사자인 ㅂ검사장은 4월23일 사의를 표명했다. 만약 법무부가 사표를 수리한다면, 그는 징계 이전에 옷을 벗은 것이기 때문에 변호사 개업을 할 수도 있고 진상규명위원회 조사에 응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태훈 교수는 “일벌백계를 주장하는 검사들이 스스로의 비위 사실에 눈감는 이상 검찰의 스폰서 문화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이번 진상규명위원회 역시 검찰이 실제 조사를 담당하기 때문에 결과를 낙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역대 ‘법조비리’ 사건은 언제나 ‘태산명동 서일필’(태산이 떠나갈 듯 시끄러웠지만, 쥐 한 마리 튀어나온 꼴)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1999년 현직 검사 등이 변호사의 사건 수임을 도와주고 소개료를 받았다는 ‘대전 법조비리 사건’이 터졌다. 검찰총장의 지시를 받은 합동수사본부에서 수사한 결과 검사 25명이 변호사에게서 돈을 받은 혐의가 드러났지만, 검찰은 당시 검사장급 2명을 포함해 검사 6명의 사표를 수리하고 7명을 징계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검찰은 이른바 ‘X파일’ 사건에서 ‘떡값 검사’로 지목된 고위 검찰 간부들에 대한 조사 없이 이를 폭로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만 기소한 바 있다.
<font color="#C21A8D">“기소·공소·수사권 쥔 절대권력 탓”</font>
이에 특별검사나 공직비리수사처 도입 주장도 나오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민간과 함께 감찰을 하는 것은 처음 해보는 시도이기 때문에, 진상조사위원회와 하부기관인 조사단이 삐걱거리기 시작하면 진상 규명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비교법적으로 외국 사례를 살펴봐도 한국의 검찰 조직만큼 기소권과 공소권, 수사권을 한 손에 쥐고 있는 조직은 없다”며 “공직자윤리법이 규정하고 있는 고위 공직자의 비리 사건을 전담하는 고위공직자수사처 등 외부 기구를 만들어 권력을 견제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고위 검찰 간부는 이런 의견에 대해 “결국 옥상옥이 될 것”이라고 항변했지만 ‘견제 없는 권력은 부패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더 이상 답을 하지 못했다.
노현웅 기자 한겨레 법조팀 goloke@hani.co.kr</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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