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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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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냉면 드세요

“돈 번 뒤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생각 버리고
아예 사회적 기업으로 변신하는 ‘화평동 왕냉면’
등록 2010-04-14 13:30 수정 2020-05-03 04:26

냉면만 팔려고 사업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냉면이 잘 팔리면 그렇게 마련한 재원으로 분명 사회에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하려고 시작했다. 그런데 현실은 냉혹했다. 냉면을 만들어 파는 일조차 녹록하지 않았다. 이제야 숨을 돌린다. 그리고 결심한다. “아예 이 기업 전체를 사회적 기업으로 바꾸자.” ‘화평동 왕냉면’ 프랜차이즈로 유명한 식품기업 푸드코아 이야기다. 그새, 10년이 훌쩍 흘렀다.

푸드코아 임직원이 함께 모여 행복한 일터 만들기에 대한 발표를 듣고 있다. 푸드코아 제공

푸드코아 임직원이 함께 모여 행복한 일터 만들기에 대한 발표를 듣고 있다. 푸드코아 제공

위기의 순간 만난 사회적기업가학교

한국에서는 아직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하면 대기업 직원들이 명절 때 양로원을 찾아가 선물을 돌리는 장면을 떠올리기 쉽다. 큰집이 다 먹고 나서 남는 것을 베푸는 식의 시혜적 자선이 사회책임경영의 핵심인 것처럼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사회책임경영은 기업의 근본을 바꾸어, 생산과정과 경영과정 전체를 ‘착하게’ 바꾸는 것이다. 기업의 크고 작음이 문제될 리 없다.

연평균 고용인원 140명의 푸드코아도 ‘착한 기업’을 꿈꾸고 있다. 푸드코아 창업자들은 ‘386 세대’다. 1990년대 후반 이들은 사회에 이익이 되는 기업을 꿈꾸며 서울과 대전에서 각각 창업을 했다. 그러나 이상만 갖고 뛰어든 사업에서 몇 차례 실패를 겪은 끝에 2000년 무렵부터 손잡고 힘을 합쳤다. 대전에서는 냉면·고기류 등 제품을 생산하고, 서울에서는 유통망을 만들어 판매했다.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했다. 사회운동 현장만 알던 이들이 경영을 공부하고 영업 현장을 뛰어다녔다. 영업이 잘되면서 체계적인 조직운영도 시작했다. 그 결과 2004~2007년까지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이라는 화려한 경영 성과를 거둬 연매출 160억원까지 성장했다.

그러나 좋은 날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듬해 성장 속도에 빨간불이 켜져 매출이 140억원으로 떨어졌다. 게다가 푸드코아 성장의 든든한 버팀목인 종업원의 신뢰와 헌신성이 흔들리는 조짐이 보였다. 위기감이 감돌았다. 그때 창업자들이 다시 머리를 맞댔다. 송인창(43) 푸드코아 이사는 당시를 이렇게 설명한다.

“막연하게 양적 성장만 추구하는 게 절대 좋은 경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성장은 기복이 있을 수밖에 없죠. 기업은 살기 위해 불가피하게 구조조정을 하게 되고요.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흔들릴 수밖에 없지요.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기업은 성장 패러다임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외부로 도움의 손길을 청했다. ‘사회적 기업’ 개념을 그때 접했다. 이 개념을 적용해 기업을 변화시키려고 논의하던 중, 경영진 4명이 한겨레경제연구소와 성공회대 등이 함께 연 사회적기업가학교를 찾았다. 다양한 프로그램 가운데 경영 전문과정인 ‘사회적기업가 MBA’에 참여한 이들은 매주 수업 시작 3시간 전에 미리 만나 회의와 토론 시간을 가졌다. 다양한 동료 수강생을 만나 조언을 듣고, 강사를 멘토 삼아 토론도 진행했다.

경영진이 받은 교육을 회사 간부와 사원 전체와 공유했다. 이 과정에서 독특한 결론에 이른다. 일반 시장에서 경쟁하는 푸드코아가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려면 나름의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적 기업을 자회사로 두는 대기업 모델과는 거꾸로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기업’을 상위 개념의 회사, 즉 모기업 형태로 정점에 둔 새로운 지배구조를 만들기로 했다. 이 상위 개념의 회사는 사명을 사회적 가치 실현에 두고 계열사를 감시·통제하게 된다. 이를 위해 창업자들은 지분을 모두 내놓았다.

창업자들 지분 포기해 사회공헌 모회사 설립

“기업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구글이 2005년 기업공개를 할 때 창업자들이 쓴 편지에 담긴 말이다. 사회적 책임은 더 이상 세계적 기업이나 큰 기업만의 몫이 아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한 ‘착한 기업’을 지향하는 작은 기업이 점차 늘고 있다. 근본적 변화는 늘 밑바닥에서 시작돼 옆으로 퍼진다. 그러고 나서야 꼭대기가 무너진다. 사회적기업가 학교 문의 02-710-0070.

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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