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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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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서비스가 쇼윈도 전시품 인가요

맹추 같은 나리님들 때문에 개고생하는 장애인 가족들…
‘찔끔’ 지원마저도 온갖 절차와 규정 내세워 제외하기 일쑤
등록 2010-03-25 17:07 수정 2020-05-03 04:26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는 평범한 일상도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 인생이건만 모든 것을 남에게 맡기고 그저 그의 처분만 기다리고 살아야 하는 세월들.
중증장애인들의 인생이 그렇다. 장애인 중에는 재활을 하여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중증장애인은 밥 먹고 화장실 가고 잠자리에 눕는 자신의 일상생활이나 신변처리조차 다른 이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참 불편하게 살아야 한다. 뇌병변 1급 장애인인 나는 손과 발 모두 움직이지 못한다. 내 몸에서 자유로운 건 왼쪽 다섯 손가락뿐이다.

중증장애인은 일상생활의 많은 부분을 활동보조인에게 의지해야 한다. 그나마 올해부터는 활동보조인을 이용하기가 더 어렵게 됐다. 한 중증장애인이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아 머리를 감고 있다.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중증장애인은 일상생활의 많은 부분을 활동보조인에게 의지해야 한다. 그나마 올해부터는 활동보조인을 이용하기가 더 어렵게 됐다. 한 중증장애인이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아 머리를 감고 있다.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20평짜리 아파트 있다고 비장애인 취급

3월10일 지역 장애인단체에서 활동보조인에 대한 강의가 있어 부산에 내려갔다. 평소 붐비는 시간에는 식당에서 밥을 먹기 힘들어 가지 않는다. 오후 4시께 부산역 바로 옆 식당에 나 혼자 들어갔다. 식당 주인은 기분 나쁜 듯이 쳐다보며 “기계(전동휠체어) 탄 사람이 왜 들어오냐”고 물었다. 그러고는 텅텅 빈 식당에서 내게 밥 먹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나도 기분이 나빠 그냥 나왔다. 점심을 굶은 채 KTX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그래도 세상은 좋아진 편이다. 쫓겨날 때는 쫓겨나더라도 들어갈 수 있는 세상이니까. 2001년 시작된 장애인의 이동권 요구는 2005년 교통약자 이동편의증진법이 마련돼 어느 정도 제도의 틀이 만들어졌다. 봇물처럼 터진 장애인의 요구는 건강보험의 전동휠체어 지원, 장애인차별금지법 등의 결실로 이어졌다.

이러한 제도 중에서도 중증장애인에게 가장 큰 희망은 활동보조인 서비스다. 2007년 전국적으로 시행된 활동보조인 서비스는 지금까지 가족 혹은 봉사자의 눈치나 살살 살피면서, 동정과 시혜라는 도움의 손길에 의지해 살아야 했던 중증장애인 입장에서는 신세가 확 변하는 놀라운 천지개벽이었다. 서비스 대상이 1급 장애인 가운데 중증으로만 한정됐지만, 장애 상태와 보조의 필요성에 따라 한 달에 50∼180시간까지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 활동보조 서비스도 무지 치사하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예산이 자꾸 올라간다며 올해부터는 자부담을 2배로 올려 월 8만원까지 내라고 한다. 또 장애등급 판정을 다시 받으라고 한다. 잘못하다가는 장애등급이 내려갈 수도 있다.

이 제도는 아마 내가 정부에서 받는 유일한 복지 혜택일 것이다. 그동안 참 이 나라 정부는 나에게 모질었다. 휠체어를 타고 살면서 편의시설도 없는 곳으로 이사 다니는 것이 하도 힘들어 외숙부와 매형 등 친척들에게 떼까지 쓰며 손을 벌려 10년 전 스무 평 아파트를 하나 샀다. 그랬더니 나보고 더 이상 지원 대상이 아니란다. 장애 수당과 의료보험 대상에서 빠졌다. 하다못해 아이들 유치원 교육비 지원 대상자에서도 제외됐다. 학원을 운영하는 비장애인 부부가 부모 집에서 산다고 무주택자가 되고 소득이 잡히지 않는다고 저소득층이 돼 유치원 교육비를 비롯해 각종 지원비를 차곡차곡 받아먹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이를 생각하면 나는 속이 뒤집힌다.

또 동네 병원에 장애인용 편의시설이 안 돼 있어 종합병원에 갔더니 1∼2차 진료기관을 거치지 않고 3차 진료기관에 바로 왔다고 지원은커녕 할증을 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복지 서비스는 쇼윈도 전시품 같다. 있는 것, 없는 것 다 갖다놓고서는 구경만 시킨다. 올 7월부터 장애인연금을 준다고 하지만 못 받는 장애인이 열 중에 여덟은 넘고 액수도 10만원 조금 넘는데, 속 모르는 주위 사람들은 너희도 잘살게 됐다고 하니 환장할 일이다.

세상이 이렇다 보니 아내에게 미안할 뿐이다. 8년 전 비장애인으로서 복지관 작업치료사라는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열 살이나 많은 내가 좋다며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결심한 이유는 지금도 모르겠지만, 하여튼 고마운 사람이다.

오죽하면 동네 할머니가 함께 지나가는 우리를 보고 아내에게 “복받을 거여” 하시더니 나에게는 “복받은 거여” 하셨다. 그 할머니가 보기에는 부부인데도 복을 짓고 복을 받는 사람이 따로 있나 보다.

솔직히 아내가 없으면 나는 살기가 어렵다. 물 한잔 주는 것부터 시작해 휠체어가 고장나면 간단한 것은 직접 고친다. 아내는 진짜 손재주도 좋다.

‘남편은 집안일 하지 말라’는 여성부의 논리

이런 천사 같은(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인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아내도 짜증을 내는 일이 잦아졌다. 하기야 중증장애인 남편에다, 8살 난 딸과 6살 난 아들을 챙겨주다 보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내가 봐도 눈코 뜰 새가 없다. 특히 출근 및 등교 시간인 아침이 되면 집안은 전쟁터다. 딸아이 머리 빗기다가, 아들놈 옷 입히고, 내 휠체어를 챙겨주어야 한다. 내가 세수를 하려 해도 아내가 물을 틀어줘야 하고 볼일을 보려 해도 변기까지 내 몸을 올리는 리프트를 아내가 가동시켜야 한다. 모두들 아내만 쳐다보고 있다.

그러나 새벽 1∼2시까지 집안일로 바쁜 아내를 조금이라도 돕고 싶어 집안일에 활동보조 서비스를 이용하려 해도 할 수 없다. 보건복지부 지침은 장애인 당사자가 아닌 배우자를 위해서는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여성부에서 지원하는 가사지원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어도 남성 장애인은 불가능하다. 남편은 집안일을 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그렇다면 여성부에서 그렇게 외치는 ‘남편도 가사를 분담하자’는 것과는 얼마나 상충되는 논리인가. 하는 일들이 다 이 따위다.

나도 비록 장애인이지만 보통의 남편이 되고 싶고 보통의 아빠가 되고 싶다. 요즘 부쩍 커가는 아이들은 아빠가 장애인이 아니었으면, 자기들과 놀아주고 함께 여행을 하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푸념을 한다. 이 어린 것들에게도 무력한 아빠로만 보이는 것 같아 씁쓸하고 안타까울 뿐이다. 엄마가 이 아이들을 전적으로 보듬어야 한다.

장애인 아빠에게 도움을 주는 제도는 우리 사회에 하나도 없다. 아빠는 가정교육에서 필요 없는 존재라도 된다는 말인가. 도대체 그렇게 복지를 외치는 이 나라에서는 장애인 가정을 위해 무엇을 해주는지 물어보고 싶다. 가정을 이루어 직업을 가지고 열심히 살려고 하는데 하나도 도움을 주지 않는다.

장애인 아빠에게 도움 주는 제도 전무한 현실

아내에게 미안해 한마디 했다. “다시 태어나도 당신과 결혼할 거야.”

그런데 돌아오는 말이 나를 놀라게 한다. “다시 태어나면 결혼 안 할 거야.”

이 무슨 울화통이 터지는 소리인가. 그러나 잘 생각하면 울화를 치밀게 한 것은 아내가 아니라 이 나라의 멍청한 나리님들이다. 이 사람들 때문에 장애인은 개고생이다. 아니 장애인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개고생이다.

윤두선 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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