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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 A초등학교가 어딥니까?”


787호 까다로워진 무상 급식 비판 보도에 ‘해당 학교’ 실명만 확인하려는 경기도청과 복지부
등록 2009-12-17 17:15 수정 2020-05-03 04:25
경기 고양시의 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점심시간에 급식을 받고 있다. 지난 12월1일 경기도의회는 경기도교육청이 상정한 무상 급식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한겨레 이종찬

경기 고양시의 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점심시간에 급식을 받고 있다. 지난 12월1일 경기도의회는 경기도교육청이 상정한 무상 급식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한겨레 이종찬

“안양 A초등학교가 어딥니까?”

787호 특집 ‘친서민의 겨울, 더 추워지는 아이들’ 보도가 나간 뒤 이틀 연속으로 같은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 당시 기사는 여름방학에 43명이던 무상 급식 신청자 수가 겨울방학을 앞두고 12명으로 줄어든 경기 안양 A초등학교 사례를 제시했다. 줄어든 31명 중에는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어머니는 가출한 김아무개(13)양도 포함돼 있었다. 전화를 걸어온 곳은 경기도청과 보건복지가족부(이하 복지부)였다.

급식 신청 더 줄어들 것이라 예상했다니

첫 번째 전화는 지난 11월30일 경기도청 아동청소년과 결식아동 급식지원 담당자한테서 걸려왔다. 그는 “기사를 보고 복지부에서 어떻게 된 일인지 확인하라는 전화가 왔다”며 “현재 각급 학교의 무상 급식 신청 접수가 끝나고 실사를 하는 단계니, 안양 A초등학교가 어디인지 알려주면 사연이 소개된 학생들을 구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상 급식 지원이 줄어든 것은 비단 안양 A초등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름방학을 앞둔 지난 5월과 달리 11월의 ‘급식 지원 아동 조사서 양식’이 복잡해졌다. 가난을 증명해야 하는 항목들이 늘어난 것이다. 신청 과정이 복잡해지니 무상 급식 신청자 수가 줄어들게 된 것은 어느 학교나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같은 안양시 소재 학교라면 A초등학교와 상황이 비슷할 수밖에 없다. 이는 경기도청 담당자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는 “경기도 내 학교들의 신청 자료를 취합한 결과 지난 5월에 비해 1만 명 정도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덧붙이는 설명이 놀랍다. “무상 급식 조사 지침을 강화해서 여름방학에 10만 명이던 지원자 수가 겨울방학에 절반 정도로 줄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1만 명 정도만 줄었다. 이는 예상만큼 많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란 분석이다.

1만 명은 어떤 아이들일까? 그 아이들은 기사에 소개된 안양 A초등학교의 김아무개양과 사정이 다를까? 김양만 찾아내 돕는 것은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멀다. 복지부의 채근에 안양 A초등학교의 이름만 파악하려는 경기도청 직원에게 “무상 급식이 필요한 아이가 탈락한 경우는 없는지, 경기도 전체는 아니더라도 안양의 초등학교들이라도 한 번 더 살펴보라”고 부탁한 뒤 전화를 끊었다.

경기도청에 학교 이름을 알려주지 않자 다음날인 12월1일 복지부가 나섰다. 복지부 아동청소년복지과 직원 정아무개는 “경기도청에서 안양 A초등학교의 이름을 문의했는데 알려주지 않았다고 들었다”며 “김양과 같은 사례를 구제하기 위해 학교 이름을 알려달라”고 요구했다. 학교 이름을 알려주지 않자 그는 “해당 학교에 해코지를 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왜 학교 이름을 알려주지 않느냐”며 “이렇게 해서 김양이 무상 급식을 먹을 수 있다면 좋은 것 아니냐”고 따져물었다.

하지만 되물어보자. 김양만 구제하면 문제가 해결되는가. 무상 급식 지원 대상자가 줄어드는 문제의 근본 원인은 예산 부족에 있다. 정부는 2010년 예산안에서 결식아동 지원금을 전액 삭감했다. 2009년에는 추경예산까지 합쳐 ‘결식아동 급식 한시적 지원 예산’으로 총 541억원이 투입됐다. 이 지원금은 지난 여름방학을 지나면서 이미 소진된 상태다. 올 겨울방학 무상 급식 신청자를 줄이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교육과학기술부는 내년에 각 지방교육청으로 내려가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까지 8248억원 삭감할 예정이다.

경기도의회 무상 급식 예산 650억 또 삭감

경기도청에서 기자에게 전화를 해 ‘안양 A초등학교가 어딘가’를 물은 다음날, 경기도의회는 경기도교육청이 상정한 무상 급식 예산 650억 4천만원을 전액 삭감했다. 이 돈은 내년에 경기도교육청이 경기 지역 초등학교 5~6학년에게 점심을 무상으로 제공하려던 예산이다. 경기도의회가 초등학생 무상 급식비를 삭감한 것은 지난 2학기에 이어 두 번째다.

경기도청도 복지부도 지금 ‘안양 A초등학교가 어딘지’를 묻고 다닐 때가 아니다. 기사를 보고 누군가 “김양을 구하라”고 지시했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보는 격이 아닌가.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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