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의 새 총장 후보가 이르면 다음주 청와대에 제청될 예정이다. 하지만 한예종 학생들은 후보 중 한 명인 박종원 영상원장의 제청을 반대하는 연대서명에 공식적으로 착수했다. 지난 7월30일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 인사부 실무자는 7월29일 “한예종에서 추천한 두 후보 가운데 1명을 선정해 청와대에 제청하기까지 1~2주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실무자는 “이 기간 후보들에게 인사 검증 동의 등을 받아 다른 기관과 협조해 검증 절차를 밟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5월22일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이 학생비상대책위원회 발족식을 앞두고 교육의 죽음을 애도하는 퍼포먼스를 열고 있다. 문화부 감사로 촉발된 한예종 사태는 총장 후보 제청을 앞두고 다시 이념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진 <씨네21> 최성열 기자
현재 후보는 김남윤 음악원장과 박종원 영상원장이다. 지난 7월20일 학내 2차 투표에서 김 후보가 1위(59표), 박 후보가 2위(58표)를 차지해 사흘 뒤 문광부에 복수 추천됐다. 투표에는 선거권을 가진 전임 교원 이상 135명이 참석했다. 표 대결에서 보듯, 지지 교수진이 명백하게 갈린다. 세력 또한 비슷하기에 누가 총장이 되든 후유증을 건너뛰기 어렵다.
이 과정에서 ‘한예종 학생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가 정면으로 박 후보에 반기를 들었다. 문화부 감사로 촉발된 ‘한예종 사태’ 이후 주도적으로 학생들의 의견을 결집하고 이끌어온 학내 조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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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종의 한 교수는 “교수가 갈리고 학생들이 갈렸는데 이런 상처를 누가 수습할 수 있느냐부터 중요한 자격이 된다”고 말한다. 속내가 ‘이념 갈등’이라 더 그렇다.
비대위는 무엇보다 박 후보의 전력을 문제 삼고 있다. 박 후보는 2005년 뉴라이트 계열의 보수지식인 단체인 ‘싱크넷’의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2년 뒤 대선 때는 뉴라이트 지식인 100인 시국선언에 이름을 올렸다. 비대위의 반대 성명서를 보면 “(보수 문화단체인) 문화미래포럼은 한예종을 ‘온갖 특혜와 비리의 온상’이자 ‘문화계 좌파 세력의 거점’으로 지목해온 해교 세력”이라며 “뉴라이트 싱크넷이 (문화미래포럼과) 동질이형의 관계에 있다”고 주장한다. 성명은 “(반대 이유는) 해교 세력과 같은 진영에 몸담았던 인사가 학교를 대표하는 총장으로 임명되는 상황을 논리적으로나 심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라며 “이런 불신과 거부감 속에 정상적인 총장 직무 수행이 불가능할 것은 자명하다”고 말하고 있다. 진보신당이 학교 밖에서 개별·단체 서명에 동참하고 있다.
이에 박 후보는 “싱크넷은 교수들이 한 건데, 그게 해교와 무슨 상관이냐”며 “반대 주장은 사실도 아닐뿐더러 개인과 학교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후보는 “심지어 정치활동을 열심히 했다 하더라도 학교에 직접적으로 잘못한 게 없다면 문제 삼을 게 없다”고 말했다.
두 후보의 태도도 뚜렷하게 갈린다. 김남윤 후보는 선거 기간에 후보소견서를 통해 “학습권과 교권이 훼손되지 않도록 안팎을 설득하겠다”며 “일부 외부 인사들이 제기한 이념 공세로 인해 학교가 작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앞으로 이런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자신은 “좌파도 우파도 아닌 ‘학교파’이자 ‘학생파’”라고 말했다. 문화부를 위시해 한예종을 비판하는 보수 세력과의 선긋기가 뚜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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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후보 약력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반면 박 후보는 “수평적 의사소통, 원칙과 합의에 따른 의사결정, 투명한 학사 행정과 예산 운용은 당연히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지만 모든 교수님들이 공감할 수 있는 수준까지 다다르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며 “위기를 화합으로 극복하고 새 도약을 다짐하는 중요한 선거”라고 밝혔다. 황지우 전 총장 체제와의 거리두기를 전제로 향후를 모색한 것이다.
학생들의 반발과 별개로, 교수들은 ‘박종원 총장’을 전망하는 분위기가 벌써부터 강하다. 이유는 명확하다. 신재민 문화부 차관의 “유럽에서는 좌파 정부가 집권하면 총장도 좌파에서 나오고, 우파가 집권하면 우파에서 총장이 나와 정부와 협력적인 관계를 갖는다”는 말이 회수된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한예종의 한 교수는 “이미 문화부와 박 후보가 상당한 교감이 있다는 얘기가 돈다”며 “현재의 위기나 갈등을 원만히 해결하려면, 문화부를 대리하는 형태의 총장은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박 후보가 갈등을 더 키울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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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박 후보는 “(김 후보와 교감이 되었다는)정반대의 이야기도 돌고 있다”며 “제 입장에서 얘기할 게 아니고, 그저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정권이 바뀐다고 총장과 교수의 성향이 바뀌어야 하느냐, 그건 지독한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고서야 가능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누가 총장이 되든, 실제 한예종의 역대 총장 가운데 이번 임기만큼 부담이 큰 시기는 없었다. 무엇보다 차기 총장은 문화부의 감사 결과에 따른 후속 조처를 수행해야 한다. △이론 교육 확대 부적정 △협동과정(통섭교육과정) 운영 조정 △일부 교수 중징계 등이 뼈대다.
무엇보다 황지우 전 총장이 사퇴한 이후의 학내 혼돈을 수습해야 한다. 이 과정에선 정부와의 관계 정리도 필수다. 문화부는 통섭교육을 반대하며 학내 교육전략에 깊게 관여하고 있고, 외부 비판 세력은 ‘좌파의 온상’이라고 낙인을 찍고 있다.
권력 입맛대로 학교 운영될 가능성학내 구성원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문화부의 입맛대로 학교가 운영될 가능성이다. 실제 이 정권 들어 ‘조직의 효율성 비판 → 권위 말살 → 인력 축출 → 친정권 수장 배치’라는 수순으로 기관·단체에 대한 길들이기가 전형화했다. 여러 공기관은 물론 독립 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조차도 비슷한 절차를 밟았다. 특히 정부의 입장이나 정책에 반할 때는, 조직의 권위와 명예부터 팔다리 잘리듯 했다.
어떤 후보가 총장이 되든 현재의 인권위처럼 무릎이 꿇릴 수 밖에 없다는 평가가 많다. 한예종의 한 교수는 “발전기금사무국은 문화부의 지원을 받지 않는 독립법인인데, 여기 활동까지 문화부가 통제하려고 한다”며 “새 총장이 들어서고 교수들의 사회·정치 활동부터 제약을 받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은 두 후보에게 총장 후보로서의 공약을 동시에 요청했다. △감사 결과 이행 방침 △통섭교육에 대한 입장 △문화부와 학교의 바람직한 관계상 △석·박사 학위 인정을 위한 한예종 설치법에 대한 입장 등을 물었다. 박 후보는 “때가 적절치 않다”며 완곡하게 거절했고, 김 후보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박 후보와 김 후보의 통섭교육, 학내 자율화에 대한 고민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알려진다. 하지만 칼자루는 언제나 문화부가 쥐어왔다. 한예종 사태가 새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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