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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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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검사스러운 당신, 그래도 걱정스러운 당신

김준규 검찰총장 후보자 두고 ‘합리적이고 리버럴하다’ 평가 속
가벼운 처신과 통제하기 쉬운 관료 스타일에 우려도
등록 2009-08-03 14:26 수정 2020-05-02 04:25

‘천성관 카드’로 쓴맛을 본 청와대가 지난 7월28일 새로운 검찰총장 후보자로 김준규(54·사법연수원 11기) 전 대전고검장을 지명했다. 김 후보자는 천성관 전 후보자의 사법연수원 한 기수 선배로, 천 전 후보자 지명 직후 사의를 표명하고 지난 7월3일 퇴임했던 인물이다. 결과적으로 예상치 못했던 후배의 낙마로 퇴임 25일 만에 조직의 수장으로 금의환향하게 된 셈이다.

김준규 검찰총장 후보자가 7월30일 오전 서울고검 소회의실에서 출입기자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경호기자

김준규 검찰총장 후보자가 7월30일 오전 서울고검 소회의실에서 출입기자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경호기자

주로 법무부에서 근무… 검사들 “잘 몰라”

그런데 김 후보자가 지명된 직후 검사들 사이에서는 “도대체 어떤 분이냐?”는 말들이 돌았다. 법조 담당 기자들 사이에서도 “도대체 어떤 사람이냐” “잘 모르겠다”는 대화가 오갔다. 검사 경력 15년이 넘은 고참 부장검사들조차 태반이 “직접 겪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는 분”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실제 김 후보자가 걸어온 길을 보면 이같은 반응들이 이해된다. 1984년 서울지검 남부지청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한 그는, 일반적으로 ‘법조’라고 했을 때 떠올리는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과 거리가 먼 생활을 해왔다. 서울중앙지검 근무는 2000년 형사부장 때가 가장 최근이었고, 대검 근무도 1993년 검찰연구관이 유일했다. 김 후보자 스스로 7월29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검 청사를 찾은 뒤 기자들에게 “감회가 새롭다. 형사부장 떠나고 이 건물에 못 와봤다. 여기서 차장도 못해보고 고검장도 못해보고…. 이 건물과 인연이 없었는데…”라고 말했을 정도다.

다른 검사들이 대검이나 일선 검찰청에서 일할 때 김 후보자는 주로 법무부에서 경력을 쌓았다. 1989년 국제법무심의관실에서 근무하기 시작한 뒤 국제법무과장(1998년)과 법무심의관(1999년)을 거쳤다. 1994년에는 주미 대사관 법무협력관을 지내기도 했다. 검사장으로 승진한 뒤에도 법무실장을 연임(2005~2006년)했다. 법무부 가운데서도 검찰에 대한 인사·예산·운용을 통제하는 검찰국이 아니라 각종 법무 행정을 총괄하는 법무실에서 근무해온 점도 눈에 띈다.

그런데 법무부는 검사의 본령인 수사나 수사 지휘가 아니라 행정·기획을 하는 정부부처다. 따라서 김 후보자는 검사보다는 행정가의 길을 많이 걸어왔다고 할 수 있다. 예전 검찰 수뇌부들을 떠올리면 ‘특수통’ ‘공안통’ 같은 분류와 함께 그가 처리한 주요 사건들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지만, 김 후보자를 어떤 ‘사건 수사’로 기억하는 검사는 거의 없었다. 대신 행정가(관료)로서는 비교적 좋은 평을 받았다. 참여정부 시절 법무실장으로 재직하면서 ‘서민을 위한 법제’ 주무를 맡아 이자제한법 부활 등을 이끌어낸 것이 대표적이다.

걸어온 보직뿐만 아니라 생활 스타일도 검사보다는 행정가에 가깝다는 것이 주변의 대체적인 평가다. 김 후보자는 자신의 취미로 조소와 풍수지리를 꼽는다. 여기에 음대 교수 출신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색소폰 등 악기도 다뤘다고 한다. 인라인스케이트와 자전거에도 취미가 있다.

그와 함께 호흡을 맞춘 경력이 있는 한 검사장급 간부는 “(김 후보자는) 검사라고 하면 일반인들이 떠올리는, 목에 힘주고 있는 그런 스타일과 거리가 멀다”라며 “예능인 비슷한 마인드가 있어서 관심사나 사고의 폭이 넓고 다양하다. 전반적인 취향도 서구적이어서 합리적인 리버럴에 가깝다”고 말했다. 심지어 술도 폭탄주보다는 와인(을 홀짝이며 대화를 나누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한다.

김준규 검찰총장 후보자 약력/ 김준규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준비단

김준규 검찰총장 후보자 약력/ 김준규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준비단

그런 ‘검사스럽지 않은’ 풍모를 보여주는 사례는 여럿이다. 그는 지난해 3월 부산고검장에 취임하며 다음과 같은 취임사를 했다.

“저는 참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능력이나 인품으로 볼 때 고검장까지 올 사람에는 못 미친다고 생각했는데 부산고검장이 되었고, 국제검사협회(IAP) 부회장으로까지 선출돼 요즘 복이 터졌습니다. …저는 운이 좋은 사랍입니다. 제가 믿는 신앙으로 이야기하면 축복을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제가 있는 동안 우리 부산고·지검 및 관내 검찰청 모두가 아무 탈 없이 아주 잘되리라고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운 좋게도 과분한 자리를 맡게 돼 기쁘다는 솔직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게다가 이날 취임식은 다과회 형식으로 치러졌다. 격식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검찰상과는 거리가 먼 모습들이다.

그의 이런 스타일 때문에 검찰 안팎에서는 ‘무난한 카드’라는 평이 많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검찰의 무겁고 보수적인 분위기를 쇄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방의 한 부장검사도 “(김 후보자를) 직접 모시지는 않았지만, 원만한 분이라고들 한다. MB 인사 가운데 제일 낫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스타일에 따르는 문제도 있다. 지난 4월 미스코리아 대전·충남 선발대회 심사위원장을 맡은 것이 대표적이다. 차관급인 현직 고검장이 성을 상업화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사기업 주최 행사에 참석한 것도 문제지만, 평일 근무 시간에 집무실을 비운 것은 더욱 ‘부적절한 처신’으로 지적된다. 요트와 승마 등 고급스런 취미와 관련해서도 본인은 ‘호기심 때문에’ ‘허름한 시설에서 싼값에 한 것’이라는 해명을 했지만, 일반인의 눈높이에서 보면 탐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처럼 그의 처신들은 인사청문회에서 집중적인 타깃이 될 전망이다.

더욱 큰 문제는 따로 있다. 항간에서는 김 후보자를 두고 ‘실무형 총장’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는 “검사가 아니라 법무부 직원”이라는 비아냥까지 들릴 정도다. 이런 우려는 청와대에서 그냥 무난한 스타일의 인물을 총장에 앉히고 ‘실세형 장관’을 통해 검찰을 좌지우지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에 바탕한다.

실제 임채진 전 검찰총장의 경우도 비슷했다. 임 전 총장 시절 검찰은 ‘촛불’ 등 외풍을 많이 탔지만, 본인은 청와대로부터 끊임없는 견제를 당하며 힘을 펴지 못했다. 인사 때 “대검 참모진조차 장관이 다 짜줬더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실세 장관 앞에서 무력한 총장의 면모를 보였다. 이런 우려 섞인 시각에서 보자면, 김 후보자의 관료적 면모는 위에서 통제하기 좋은 스타일인 것이 사실이다.

본인 스스로도 마치 관료처럼 몸을 낮추고 있다. 그는 7월30일 기자간담회에서 장관과의 인사 협의와 관련해 “인사권자는 장관이다. (법에서는) 총장의 의견을 들어보라는 건데, 나는 의견 제시자이지 결정자는 아니다. 장관은 대선배고, 잘 하실 거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보스’ 기질의 총장 후보자였다면 나오기 어려운 발언이다.

중수부 폐지 등 검찰 개혁에 소극적

그는 이날 검찰 개혁과 관련해서도 “일하는 사람의 마음가짐과 태도가 중요하지, 중수부를 폐지한다고 선진국 검찰이 되느냐”고 말했다. 당장에 조직에 손댈 뜻은 없다는 것이다. 검찰 조직과 업무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보다는 “검찰의 수준을 높이겠다”는 추상적인 이야기만이 오갔을 뿐이다. 조용하고 무난한 스타일의 그다운 발언이다.

걱정스런 부분은 더 있다. 대검은 7월29일 검찰인사청문준비단을 발족했는데, ‘비전팀장’에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 주임검사였던 우병우 중수1과장이 임명됐다. 이 소식에 검찰 주변에서는 ‘노 전 대통령을 수사하던 방식을 검찰의 비전으로 삼겠다는 것인가 보다’라는 비아냥 섞인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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