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인사가 또 말썽이다. 이번엔 국가인권위원장에 지명된 현병철씨다. 그는 7월16일 와의 인터뷰에서 “학자로서 인권을 알지만 (인권의) 현장에 대해선 잘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인권위 쪽은 우리 학문하는 사람들에게는 많이 안 알려져 있는 듯하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법학자가 추구하는 최선의 가치가 인권이다”라고 덧붙였다.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다. 그가 학문으로 주로 연구해온 것은 부당이득과 불법원인급여 등 민법 분야다. 물론 민법도 인권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인권에 대해 민법학자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깊이 있고 치열한 연구와 고민을 해온 법학자들이 우리나라엔 많다. 주로 헌법이나 형법을 연구하는 이들이다. 무엇보다 ‘인권 지향적인’ 연구와 사회활동을 해온 이들 말이다. 인권활동가 출신이 아닌 법학자나 법률가 중에서 굳이 인권위원장을 임명하겠다면, 그런 이들 가운데 적임자를 찾으면 된다.
우리나라의 국가인권위원회에 해당하는 기구를 이끌고 있는 외국의 인사들은 어떤 경력을 가졌는지 살펴보자. 오스트레일리아의 캐서린 브랜슨은 판사 출신인데, 연방법원 재직 때 차별금지법에 근거한 소송을 맡은 경험이 풍부하다. 연방법원의 ‘평등과 법 위원회’와 ‘뉴사우스웨일스 인권 재판부’를 이끌었다. 뉴질랜드의 로슬린 누난은 유엔 인권위원회와 국제노동기구를 비롯한 국제기구에서 4년간 일한 경험이 있다. 덴마크의 요나스 크리스토페르센은 국내 및 국제 인권을 전공한 교수 출신으로, 1996년부터 국제법, 유럽법, 인권법 등을 가르쳤다. 독일의 하이너 빌레펠트는 1983년부터 튀빙겐·만하임·토론토·브레멘·빌레펠트대학 등에서 인권 분야 연구를 수행했고 문화 간 상호 이해에 초점을 맞춘 인권의 철학적 기초에 관한 다수의 논문과 책을 냈다. 북아일랜드의 모니카 맥윌리엄스는 여성학 교수 출신으로, 가정폭력과 정치적 충돌이 여성의 삶에 미치는 역할에 관한 다양한 저작을 출간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조디 콜라펜은 공익법 활동을 하며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로 박해받는 이들을 변호했던 인물이다. 그의 관심사는 법 집행 과정의 인권 보호, 평등, 사회·경제적 권리의 증진 등이다. 세계 120여 나라의 국가인권기구를 대표하는 기구인 ‘세계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 의장을 맡고 있는 캐나다의 제니퍼 린치는 변호사로서 노동문제를 많이 다룬 이해 조정 분야의 전문가다.
우리나라가 차기 ICC 의장국이 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번 인권위원장은 더욱더 국제사회의 주목과 검증을 받게 된다.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 낙마의 애달픈 사연이야 우리끼리 쪽팔리면 그만이지만, 격에 맞지 않는 인권위원장을 국제사회에 내던진 뒤 겪게 될 수모는 자못 국제적일 것이다. 현병철씨의 일천한 인권 관련 경력, 논문 표절 시비, 국내 인권단체들의 반발 등이 알려졌을 때, 양팔을 벌리고 두 어깨를 들어올리며 입을 삐죽일 저들의 모습을 그려보자. 그냥, 와츠 더 프라블럼, 하고 ‘아륀지’ 발음으로 눙치면 될까?
박용현 편집장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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