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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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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노무현의 시대정신’ 심포지엄…
공화주의적 가치, 탈근대 정치, 미시 민주주의 등 전인미답의 길을 유산으로 남겨
등록 2009-07-14 17:23 수정 2020-05-03 04:25

조계사는 2000년대의 명동성당이다. 그 처마 밑에서 쫓기는 자는 숨을 고르고, 사색하는 자는 말을 나눈다. 금지당한 것을 잠시나마 행한다. 1980년대 명동성당의 풍경이 이제 조계사로 옮겨왔다. 지난 7월7일, 지식인들이 조계사의 처마를 빌렸다. ‘노무현의 시대정신과 그 과제’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한겨레신문사·경향신문사가 공동 후원하고, 광장·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생활정치연구소·세교연구소·좋은정책포럼·진보와개혁을위한의제27·코리아연구원·한국미래발전연구원 등이 공동 주최했다.

지난 7월7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노무현의 시대정신과 그 과제’를 주제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경호 기자

지난 7월7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노무현의 시대정신과 그 과제’를 주제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경호 기자

진보·개혁 진영을 대표할 만한 20여 명의 지식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추모 정국’ 이후 사실상 처음으로, 그리고 공개적으로 노무현 정부의 성과와 한계에 대한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노무현 이후’를 궁리하는 자리였다.

민중 역량에 바탕했지만 엘리트와의 타협에 주력

예컨대 노무현식 공화주의에 주목한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의 발표는 ‘초기 노무현’과 ‘후기 노무현’의 간극을 설명하는 참신한 잣대다. 공화주의는 소수에 의한 ‘자의적 지배’를 배척하는 태도다. 권력기관의 상호 견제와 균형을 통해 이를 구현하는 게 핵심이다. 안 교수가 보기에 노 전 대통령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공화주의적 가치를 초보적 형태로나마 구현하려” 했다. 검찰·국정원·감사원 등을 통한 권위주의적 통제를 스스로 포기했다. 의회·정당·언론·시장 등에 대해서는 ‘설득의 패러다임’을 적용했다.

그런데 공화주의에도 두 종류가 있다. 엘리트 사이의 이성적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는 태도가 있고, 시민들에 의한 엘리트 견제를 강조하는 태도가 있다. 앞의 것을 안 교수는 ‘매디슨적 공화주의’로 불렀다. 매디슨은 미국 건국 주역 가운데 하나다. 미국의 정치체제는 민중의 직접 참여보다는 정치 엘리트 사이의 조정과 견제를 중시한다. 뒤의 것은 ‘마키아벨리적 공화주의’로 부를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통치 기술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곧잘 오해되지만, 실은 민중의 역량에 주목한 선구적 정치학자였다. 마키아벨리의 이상은 고대 로마 공화정에 있었는데, 로마의 공화정은 민중이 직접 뽑은 집정관에 의해 귀족정치를 견제하는 제도였다.

안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이 “선거에서는 마키아벨리적 공화주의에 기댔고, 국정운영에서는 매디슨적 공화주의에 집착했다”고 본다. 한나라당을 향해 대연정이나 개헌을 제안한 것은 “메디슨적 정치 구현”에 매달린 결과다. 이런 태도는 결과적으로 핵심 지지 기반을 침식했다. 특권층을 비판하는 대중의 지지를 얻고서도, 오히려 지배 엘리트와 타협하는 데 많은 정력을 기울였다는 진단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 빌 클린턴 정부는 비교 대상이다. 우파의 공격에 시달리긴 마찬가지였지만, 클린턴 정부는 노무현 정부보다 선전했다. “매디슨의 요소와 마키아벨리의 요소를 적절히 결합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표적 이익집단인 담배회사를 집중 공격한 것은 하나의 사례다. 특권층을 대변하는 미국 주류 언론은 이를 맹공했지만, 클린턴은 아랑곳 않고 담배회사의 부도덕한 상업주의를 비난했다. 이는 미국 대중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었다.

정치 의제보다 민생 의제에 집중했더라면

특히 클린턴은 점진주의적인 민생 의제를 택해 대중의 신뢰를 얻었다. 이 대목 역시 노무현 정부가 서툴렀던 점이라고 안 교수는 분석했다. 집권 초기, 4대 입법 등 거대한 정치 의제보다는 사소하지만 작은 곳에서 성과를 얻으면서 민심을 확인해나가는 민생 의제를 추진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절묘한 배합’이 필요하다. 마키아벨리적 공화주의로 특권층을 견제하면서도 매디슨적 공화주의로 지배 엘리트를 적절히 설득하는 전략이 그 요체다.

김형기 경북대 교수는 그 배합의 현기증을 경제 분야에서 찾았다. 김 교수는 중도 노선을 대표하는 경제학자다. 그런 그가 보기에도 “노무현 정부는 애초 중도 진보의 길을 지향했다가 점차 중도 보수의 길로 나아갔다”. 이 지점에서 ‘초기 노무현’을 지지했던 이들이 ‘후기 노무현’에게 등을 돌렸다. 동반성장·균형발전·사회투자라는 3대 진보전략 자체는 적절했지만, “경제주권 침해와 금융위기를 초래할” 완전한 자유무역주의 및 금융 자유화 추진은 양극화 문제를 더 심화시켰다. 양극화의 피해는 온전히 서민의 몫이 됐다. 서민은 노무현 정부의 정책이 “자신들의 실생활을 향상시킨다는 것을 체험하지 못하게 됐다”.

그래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이 남기고 간 민주주의 유산 덕분이다. 온전히 닦아놓진 못했지만 기어이 개척하려 했던 전인미답의 길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거리와 광장과 온라인에 은거하는 시민들의 유전자에 각인됐다. 조대엽 고려대 교수는 노무현 정부를 “현대 한국 정치에서 가장 뚜렷하게 ‘탈근대 정치’를 시도한 정부”라고 평가했다. 그의 정치 기획이 한국의 시민 모두를 저변에서부터 흔들어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근대성의 정치’에서는 중앙집중적 권력 구조가 가장 중요하다. 집중해야 하므로 누군가 시민을 대의해야 한다. 대의민주주의 또는 의회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최선으로 간주된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의 민주주의 성과는 이런 근대성의 정치 기획에 집중됐다. 주로 절차적 민주주의, 거시 민주주의 과제에만 매달렸다.

그러나 ‘87년 체제’는 그 자체로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었다. 20세기 후반, 세계 각국에서는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성찰하는 ‘탈근대 민주주의 기획’이 일어났다. 성·생태·평화·평등 등 가치·차이·정체성의 새로운 정치가 등장했다. 탈근대 정치는 시민사회 영역에서 주로 진행됐고, 민주주의 국가들은 이를 포용하는 시도를 거듭했다. 그것이 현대 민주주의의 요체다.

그런 점에서 “대의민주주의를 더 성숙시켜야 한다는 (한국 우파의) 논리는 세계화의 현실에서 허구가 된 지 오래”이며 “참여민주주의·심의민주주의·주창민주주의 등 새로운 사회변동과 시민적 욕구를 반영하는 새로운 민주주의의 제안을 수용하는 것이 한국의 과제”가 됐다.

기존 정당 동원 방식을 벗어났던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은 시민사회로부터 시작된 새로운 정치 네트워크였다. 설득을 통한 협치의 정치는 참여·심의 민주주의를 도입하려는 시도였다.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위한 다양한 장치의 구축은 대의제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이었다. 조 교수가 보기에 “노무현 ‘정권’은 끝났으나, 노무현 ‘시대’는 종료되지 않았다”. 탈근대 기획, 미시 민주주의의 확산은 여전히 진행 중인 사회변동이라는 것이다.

이런 정치 기획을 제도에 안착시키는 책임은 정당에 있다.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정치 연합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는 데서 희망을 찾는다. 다만 정치 연합이 그렇지 않아도 약체인 진보 정당의 위상을 더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없지 않다.

이 교수는 이와 관련해 “지금까지 치러진 선거 결과를 보면, 자유주의적 개혁 세력이 확장될 때, 진보적 정치 세력이 활동할 수 있는 정치 공간도 확대됐다”는 점에 주목한다. 비례대표제 확대 등 선거제도 개혁을 매개 삼은 정치 연합을 도모한다면, 민주당이 정치 연합의 과실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진보 정당과의 공동 발전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많은 사람들에게 집단적 죄책감 주고 떠나”

이날 조계사 처마 밑에서는 이성의 언어 말고 감성의 언어도 많이 나왔다. “그는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집단적인 죄책감을 주고 갔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언급한 ‘죄책감’은 ‘사명감’으로 바꿔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의 서거를 통해 단수가 아닌 복수로 존재하는 노무현을 많은 국민이 재발견하게 됐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가 말하는 ‘복수의 노무현’이란 오늘을 사는 시민들의 자화상일 것이다. 언어의 힘이 진실과 진정에서 비롯한다면, ‘노무현 이후’를 고민하는 지식인들의 언어는 이날 조계사 처마 아래에서 가공할 힘을 얻기 시작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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