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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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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관행과 싸워온 10년

인권연대, 여성장교 부당한 전역·사학의 종교 탄압 등 고발로 승소 이끌어내
등록 2009-07-03 04:24 수정 2020-05-02 19:25

2005년 12월 어느 날 서울 동소문동에 있는 인권실천시민연대(이하 인권연대) 사무실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건 이는 중령 계급의 현역 군인, 그것도 여성이었다. 억울함을 호소했다. 3년 전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는 이유로 국방부가 뒤늦게 헬리콥터 조종사인 자신에게 더는 조종간을 잡을 수 없게 한 데 이어 아예 군복을 벗을 것을 명령했다는 것이다. 그의 이름은 피우진.

인권연대 10주년 행사에 참석해줄 것을 요청하는 우편물 봉지를 접던 활동가들이 잠시 사진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오창익 사무국장, 이운희·최철규·이성일 간사.

인권연대 10주년 행사에 참석해줄 것을 요청하는 우편물 봉지를 접던 활동가들이 잠시 사진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오창익 사무국장, 이운희·최철규·이성일 간사.

오창익 국장 “아픈 환자 맞는 병원처럼”

이 단체의 오창익 사무국장은 피 중령을 만난 뒤 단체 운영위원인 장경욱 변호사를 통해 법률적으로 그를 구제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한편, 언론을 통해 이 문제를 여론화했다. 국방부 앞에서 이어진 항의 시위에도 군의 태도는 완강했다. 뒤따른 강제 전역과 이에 맞선 행정소송, 피 중령의 승소와 이어진 국방부의 항소, 그리고 지난해 6월 마침내 승리가 확정됐다.

당사자에게는 한없이 불안하고 고통스러웠을 이 드라마의 전개 과정은 장애와 여성이라는 두 가지 핵심 인권 문제를 우리 사회가 다시 한번 고민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그사이 국방부는 군인사법 시행규칙을 개정했다. 질병이나 사고로 심신장애 1∼7급을 받으면 무조건 전역해야 했던 규정을, 별도의 전역심사위가 근무 가능 여부와 군에서의 활용성 등을 종합 판단하도록 바꾼 것이다. 작지 않은 성과였다. 2년6개월에 걸친 투쟁의 중심에는 인권연대가 서 있었다.

2006년 초 종교다원주의를 설파하고 불상에 절을 했다는 이유로 재임용에서 탈락한 이찬수 강남대 교수 사건도 마찬가지다. 인권연대는 각종 캠페인 등을 벌이며 이 문제를 이슈화했다. 특정 종교 교단이 운영하는 사학에서의 종교 자유가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이 교수는 지난해 10월 재임용 탈락이 부당하다는 확정판결을 대법원에서 받아냈다.

이처럼 인권연대에는 인권을 침해당한 이들의 노크가 끊이지 않는다. 올해 초 민주노총 간부의 조합원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을 때 피해자를 사건 초기부터 대변하고 방어한 곳도 인권연대였다. 얼마 전엔 툭하면 수사기관에서 근거도 없이 ‘마약쟁이’로 의심받는 가수 구준엽씨가 인권연대를 찾았다. 다른 인권단체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오 국장은 “아픈 환자들이 병원을 찾아다니는 것처럼 자신의 인권침해 문제와 관련해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 관련 오해받기도

한국 인권운동의 역사 곳곳에 인권연대는 작지 않은 발자국을 남겼다. 처음 문을 열 때의 미약함을 생각하면 기대 밖 성과다. 1999년 변변한 사무실도 없이 인권운동가 서준식씨가 구해준 컴퓨터 한 대를 놓고 첫걸음을 뗐다. 애초 검찰, 경찰, 국정원 등을 감시하면서 이들 기관에서 피해를 당한 이들을 돕고 인권교육을 제대로 해보자는 게 목표였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오창익 사무국장은 “지난 10년 동안 그런대로 처음 생각했던, 그리고 우리가 자임했던 역할에 충실할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인권연대는 처음 목표대로 인권 피해자 구제뿐만 아니라, 교육을 통해 분야별로 인권 의식을 높이려 애썼다. 학교 현장의 교사와 대학생 등을 상대로 한 인권교육을 쉼없이 열고 있다. 오 국장은 대학에 인권 강의를 나가는 한편, 강의 요청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간다. 지난해까지 경찰청 인권보호위원회 위원을 지내면서 경찰서와 교도소 등을 찾아 국가권력이 직접 시민과 만나는 접점에서 어떻게 인권친화적인 행정을 펴야 하는지에 대한 ‘의식화 교육’을 하기도 했다. 철창 안에서 피폐한 삶을 이어가기 쉬운 재소자들을 상대로 한 ‘평화인문학’ 강의도 3년째 열고 있다. 물론, 인권을 법치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삼고 있는 이명박 정권 들어서는 정부와 연관된 공조직에서 강의할 일이 갈수록 줄고 있어 아쉬울 따름이다.

국내 이슈를 벗어나, 군사독재와 탄압에 신음하는 제3세계 민중의 목소리에도 나름대로 귀를 기울였다.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기원하고 버마의 민주화를 촉구하는 캠페인 활동을 각각 100주에 걸쳐 한 번도 빠짐없이 해낸 것은 인권연대 회원들에게 자랑스런 기억으로 각인됐다.

인권연대는 다른 인권·노동 운동 단체와 다소 구별되는 독특한 지점을 형성하고 있다. 인권운동사랑방이나 다산인권센터 등 다른 인권운동 단체들이 결합해 활동하는 인권단체연석회의를 비롯해 진보연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등 상시적 연대체에 별도로 가입하지 않는다. 인권연대는 그 이유로 ‘다른 운동단체들과 잘 어울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운동사회에 들어와 있지 않은 일반 시민들과 만나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때론 근거 없는 오해에 시달리기도 한다. 대표적인 게 민주노총 간부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민주노총 안팎에서 일었던 ‘반민주 정권과 맞붙은 큰 틀의 싸움에서 운동권 내부의 문제를 필요 이상 과다하게 사회문제화해 내부 동력을 소진한다’는 식의 비판이다. 인권연대 혼자 너무 ‘튀려’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오창익 국장의 생각은 이렇다.

“나는 피해자의 대리인 구실을 하고 있는데, 대리인은 피해자가 해달라는 이야기를 전할 뿐이다. 그 사건과 관련한 발언 가운데 나만의 판단은 하나도 없다. 이번 사건을 통해 큰 운동조직들이 성찰도 하고, 또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그런데 사건 당사자들은 아직까지도 스스로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것 같다. 아쉽고 답답할 뿐이다.”

칭찬과 오해 속에 10돌을 맞은 인권연대가 7월1일 생일잔치를 한다. 저녁 7시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 있는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이 무대다. 리영희 선생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와 격려사를 할 계획이다. 가수 정태춘씨와 이지상씨 등도 무대에 올라 노래를 읊는다. 일제고사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해직된 설은주·정상용 교사와 만나 따뜻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마련됐다.

정부 지원 받지 않고 회비만으로 살림

오 국장과 함께 인권연대를 이끄는 활동가들에게 달콤한 당근과 부드러운 채찍을 선물할 수도 있다. 간사 가운데 최고참인 6년차 이운희 간사는 “지난 6년은 사람들과 함께 더 좋은 세상을 향해 뛴 달리기였던 것 같다”고 소회를 밝힌다. 이 간사는 “그만두고 싶은 때도 많았지만, 우리를 찾아와 힘든 상황을 털어놓고 함께 극복한 인권 피해자들과 인권 강의를 하러 오는 분 등 좋은 이들을 만나게 돼 버틸 수 있었다”며 “이들이 모두 내게는 선생님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9월12일 공연관람 동호회에서 만난 멋쟁이 짝과 결혼식을 올린다. 4년차인 최철규 간사는 뛰어난 기획력을 바탕으로 인권연대의 교육사업을 이끌고 있는데, 상당한 미남이다. 들어온 지 석 달 된 ‘젊은 피’ 이성일 간사는 ‘인권연대의 박지성’이 되기 위해 열심히 일을 배우는 중이다.

지난 10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정부에서 재정적 도움을 받지 않고 1천여 회원의 회비만으로 살림을 꾸려나가는 인권연대가 더 많은 일을 하도록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아 참, 단체 이름은 10주년을 맞아 ‘인권실천시민연대’에서 ‘인권연대’로 아예 바뀐다. 문의 02-3672-9443.

글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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