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은 삶이다. 살기 위해서, 살리기 위해서, 오른다. 오른다고 그 위에 무엇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아니,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오르는 이들의 목표가 된다. 행여나 밑에 있는 이들을 향해 던지는 목소리가 널리 퍼져 잘 들릴까 싶어 오른다. 서울 용산에서는 철거민과 그 연대 세력이 망루에 올랐다. 그리고 공권력이 폭력적으로 개입하다 5명이 숨졌다. 경기 평택에서는 쌍용차 노조 지도부가 70m 높이 굴뚝에 올랐다. 그리고 아래로 통하는 길을 용접했다. 공권력은 다시 이들을 과녁에 올리고 있다. 이들의 행위를 사회적으로 규정하는 개념어는 ‘생존권 투쟁’이다.
그리고 여기 한 사내가 또 올랐다. 대한민국에서 겨울이 제일 먼저 오고 봄은 가장 늦게 온다는, 높이 1708m의 설악산 대청봉을 올랐다. 이쯤 되면 우리 사회는 그에게 물어야 한다. ‘왜 당신은 또 그 높은 곳에 올랐냐’고, ‘무엇의 생존을 위해 당신은 오르느냐’고. 그래서다. 대청봉에서 생식을 씹으며 허기를 달래고 있는 박그림(61) 설악녹색연합 대표에게 물었다.
-그렇잖아도 세상이 어지러운데 그 높은 데는 왜 오르셨나요.=오색에서 대청봉까지 케이블카를 놓을 수 있도록 환경부가 자연공원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개정하려고 하고 있어요. 지금도 연간 15만 명이 대청봉에 올라와 훼손이 많이 됐는데, 케이블카가 놓이면 40만 명이 더 찾는다고 합니다. 그럼, 훼손이 이루 말할 수 없겠죠. 그걸 막으려 올라왔어요.
박 대표는 6월7일부터 자연공원법 시행령·규칙 개정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대청봉에서 벌이고 있다. 시위는 14일까지 8일 동안 펼친다. 전화 통화를 한 6월11일 그는 “대청봉에 초속 16m 가까운 거센 바람이 불어, 걸어서 25분 거리인 중청 대피소에 잠시 내려왔다”고 했다. 바람이 무서울 뿐, 한참 떨어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선 바다와 같은 전·의경 때문에 집회·시위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대청봉은 공권력의 탄압이 없어 그나마 다행인지 모른다.
평소 설악산을 ‘어머니 설악산’이라고 부르는 박 대표는 어버이날인 지난 5월8일 오체투지로 대청봉까지 오르기도 했다. “설악산 어머니가 문제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이었어요. 올라오면서 엎드려 (등산객들이 낸 설악산의) 상처에 이마를 댈 때마다 내가 더 위로를 받았습니다. 늘 베풀기만 하는 어머니에 대한 생각이 절절하게 와닿더군요.”
그가 처음 설악산을 찾은 1970년대 초만 해도 대청봉은 풀로 뒤덮여 있었다고 한다. 갈수록 등산객이 늘고, 정상을 밟는 등산화 수가 늘면서, 이제는 대청봉이 대머리가 됐다. 울타리 바깥에는 풀들이 자라지만 그 안쪽은 오로지 바위뿐이다.
오체투지로 설악산 오르며 상처 보듬어기도이런 상황에서 환경부는 지금까지 2km 이하로 제한해온 케이블카의 연장 거리를 5km 이하로 대폭 늘리고, 케이블카의 정류장 높이도 9m 이하에서 15m 이하로 높이는 등 규제를 완화하려 한다. 오색에서 대청봉까지가 4.7㎞ 거리니, 케이블카가 대청봉까지 닿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 정류장 높이가 높아지면 50인승의 대규모 케이블카 운행이 가능해진다.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자연공원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이 5월1일 입법예고됐다. 환경부는 ‘규제 완화’라는 이 정권의 시대정신을 따르려 하고, 양양군 등 지방자치단체는 관광객 유치로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려 한다. 호랑이가 멸종한 지 100여 년 되는 설악산이 그야말로 호랑이 발톱에 사로잡힐 참이다.
-그런데 왜 설악산은 케이블카를 싫어할까요.=대규모 정류장을 설치하면서 훼손되는 풍광은 말할 것도 없고, 케이블카 소음과 안전 문제 등의 이유로 인근 동식물들이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온 사람들은 모두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갈까요? 아니죠. 걸어서 내려가는 사람들이 엄청 늘 것입니다. 그럼 등산로 주변 훼손은 가속화할 수밖에 없거든요. 인위적인 방법으로 대청봉에 올라오는 사람들을 늘려선 안 되죠.
두 남매의 아버지이기도 한 그는 이 동네에선 ‘설악산 산양 아빠’로도 불린다. 설악산을 처음 접하던 무렵 어느 날 마주친 산양의 늠름함을 그는 잊을 수 없다. 서울에서 하던 자영업을 때려치우고 1992년 속초로 내려와 설악산과 산양의 보호자를 자처했다. 멸종위기종 1급이자 천연기념물 217호로서 설악산에 겨우 100여 마리가 사는 것으로 추정되는 산양은 이미 그에게 신앙이 됐다. 틈만 나면 산양을 찾아 설악산을 뒤지고, 산양 똥을 발견하면 그의 대뇌피질은 사정없이 흥분한다. 그윽한 산양 똥 냄새를 맡노라면 아드레날린이 폭발하듯 분비된다. 박 대표는 환경문제에 관한 한 호감 가는 사람을 발견하면, 바짝 마른 설악산 산양 똥 몇 알을 편지에 넣어 보낸다. 그 안에서 부서지건 말건. “산양 똥 냄새를 며칠만 못 맡아도 아쉬워요. 때로 마른 똥을 통에 넣고 흔들면서 그 소리를 들으며 잠들기도 하죠, 흐흐흐.”
지난겨울에는 설악산과 연결된 매봉산이 수렵지구로 지정돼 산양 아빠를 분노케 하기도 했다. 매봉산에서 산양의 울음소리를 듣고, 똥도 보고, 산양이 사는 굴도 확인하고 내려왔다. 사냥꾼이 총 쏘고 나서, 천연기념물을 죽였음에도 ‘멀리서 봐서 산양인지 몰랐다’고 하면 벌금 몇십만원으로 지나갈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을 지자체가 방치한다는 게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
한라산·북한산·월출산… 케이블카 대기 중무슨 이유로도 일단 국립공원 안 케이블카 건설은 막아야겠다는 게 박 대표를 포함한 불교환경연대, 녹색연합, 대한산악연맹 등 관련 단체들의 생각이다. 같은 위험에 처한 지리산에서는 김병관씨가 이미 1인 시위를 벌였다. 박 대표는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케이블카 설치의 위험에 노출된 국립공원은 지리산과 설악산에서 멈추지 않는다. 한라산과 북한산, 월출산도 지자체의 사정권에 들었다. 따라서 정부가 현재 계획을 철회할 때까지 산의 꼭대기에는 누군가 계속 오를 것이다. 산이라는 명사로 대표되는, 그 안의 식물과 동물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함이다. 도롱뇽과 맹꽁이 목숨보다 산양이 가벼이 여겨질 까닭은 어디에도 없다.
-우선 케이블카 설치 계획을 막아야 할 텐데, 그걸로 끝인가요.=지금 대청봉에는 범꼬리꽃, 병꽃, 세잎종덩굴꽃, 벌깨덩굴꽃 등 온갖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 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정상에 올라 경치만 보고 내려가버리지요. 생명들과 교감하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그냥 수단화할 뿐이죠. 양양군은 케이블카를 놔 대청봉을 돈벌이 수단으로 만들려 합니다. 초속 16m 바람에 흔들리는 꽃들을 보며 교감하지 못한다면, 그게 바로 ‘생태맹’이죠. 산양들이 모여사는 내설악 쪽은 짝짓기철인 10월과 새끼 낳는 5∼6월에는 입산을 금지하는 등 근본적으로 산을 출입하는 사람들 수를 줄이는 방법들을 연구해봐야죠.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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