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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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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운동의 부활

민간단체 공익활동 지원사업으로 선정… 비리 재발 우려에 정치적 이용 경계 목소리도
등록 2009-05-12 11:18 수정 2020-05-03 04:25

원조 논란은 장충동 족발집, 신당동 떡볶이집에만 있는 게 아니다. 새벽종만 울리면 일어나 살기 좋은 내 마을을 가꿨던 새마을운동도 원조 논란 끝에 법정으로 갔다. 5월25일 첫 심리가 열린다. 경북 청도군이 새마을운동의 발상지라는 경상북도의 연구용역 결과물에 대한 사용금지 가처분 신청이 대구지방법원에 접수된 데 따른 것이다. 엿새간 삭발·단식투쟁도 벌였던 경북 포항시 이상범 시의원은 “포항시 기계면 문성리가 새마을운동 발상지인데, 경상북도가 일방적으로 용역을 줘 청도군 신도리가 발상지라고 왜곡하고 포항 시민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말했다.

새마을운동 발상지 기념관 준공식 장면. 지난 4월14일 오후 경북 청도군 청도읍 신도1리에서 열린 새마을 운동 발상지 기념관 준공식에서 참석 인사들이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 국민 세금 140억원이 들어가는 거대 사업의 시작이다. 사진 연합

새마을운동 발상지 기념관 준공식 장면. 지난 4월14일 오후 경북 청도군 청도읍 신도1리에서 열린 새마을 운동 발상지 기념관 준공식에서 참석 인사들이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 국민 세금 140억원이 들어가는 거대 사업의 시작이다. 사진 연합

발상지 청도로 지정하자 포항서 발끈

때는 1971년 9월17~18일.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전국 시장·군수 비교행정회의를 경북도청에서 열고, 현지 시찰도 함께 한다. 대통령은 헬기 4대를 동원해 경북 영일군 산골마을 문성동에 닿는다. 1개 면이 36개 부락으로 설켜 있던 때, 비가 와야만 농사가 가능했던 문성동은 36개 부락 가운데서도 가장 낙후된 곳이었다. 비서실에선 닷새 뒤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시달한다.

(9월17일 영일군 문성동에서)

1. 지붕 개량에 있어 ‘슬레이트 기와’는 양산시에 값을 싸게 할 수 있을 것이니 싼값으로 공급해주도록 할 것.

2. 문성동에 전화 사업을 즉시 해줄 것.

3. 전국 시장·군수는 현지에 돌아가서 문성동 부락과 같이 지도하고 실천하여 ‘새마을정신’, 즉 자조·자립·협동하는 정신 주입에 점화 역할을 할 것.

이 1쪽 기안용지에 ‘새마을정신’이란 용어가 처음 등장한다. 1970년 4월 지방장관회의에서 “새마을 가꾸기 운동이라 해도 좋고 알뜰한 마을 만들기라고 해도 좋으니 중앙에서처럼 도지사들도 한번 연구해보라”는 박 대통령의 지시가 있은 지 1년 만이다.

온갖 사료를 직접 발굴했다는 이상범 시의원은 말했다. “그때 현지 시찰에 청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시장·군수들에게 가장 잘된 곳을 가게 될 거라며 데리고 간 데가 바로 문성리예요. 새마을정신이 그렇게 시작된 겁니다.” 영일군은 지금의 포항시가 됐다.

원조 논란으로 새마을운동이 새삼 눈길을 끌고 있다. 적어도 새마을운동중앙회는 전면 부활할 조짐이다. 밑동에는 ‘국민의 세금’이 깊게 관여돼 있다. 행정안전부(행안부)는 정부 보조금이 지원되는 ‘비영리 민간단체 공익활동 지원 사업’을 지난 5월7일 발표했다. 최고 수혜자는 단연 새마을운동중앙회와 한국자유총연맹이다. 유일하게 사업 2개씩이 선정되면서 각각 8천만원과 1억900만원의 보조금을 받을 참이다. 새마을운동중앙회의 결혼여성이민자 멘토링 사업(4천만원)과 소외노인 서비스(4천만원), 한국자유총연맹의 법질서 수호 운동(4800만원)과 삶의 질 향상 운동(6100만원)이 그것이다.

“관변·보수단체 집중 지원 의도”

162개 선정 사업의 평균 지원액은 3천만원에 불과하다. 행안부는 “지난해에는 선정되지 않았으나 올해 새로 뽑힌 단체가 120개(74.8%)로 새 유형의 독창적 사업이 많이 선정됐다”며 “최근 3년 내 불법 폭력 집회 및 시위에 참여한 단체의 사업은 선정에서 제외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부분 사업의 주체는, 현 정권의 국정 과제에 복무할 수 있는 단체의 성격이 짙다. 김유정 민주당 의원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 참가한 6개 단체는 지원대상에서 제외시키고, 현 정부의 정책방향에 동조하는 관변단체들과 보수단체들만 집중 지원하겠다는 의도가 드러났다”며 “이해할 수 없고 공정성에 문제가 많다”고 말한다.

지원사업 신청을 받기 전 사업 유형을 마련할 때부터 논란은 일었다. 행안부는 2009년 비영리민간단체 지원사업 기준에 아예 ‘법정 국민운동단체의 주요 사업(새마을운동중앙회, 바르게살기운동중앙협의회, 한국자유총연맹의 주요 사업)’을 못박았다. 새마을운동중앙회의 부활은 일찌감치 예고됐던 것이다.

새마을 원조를 도둑맞았다는 포항의 저항에 경상북도는 용역 결과를 발표하면서 “1970~71년 새마을 가꾸기 사업 당시 포항시 기계면 및 문성동 관계자들이 청도군 신도1리를 견학한 뒤 새마을사업을 확장, 추진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청도가 타당하다고 밝히고 있다. ‘자조’는 있을지언정, ‘협동’은 부재한 이 마찰에도 돈이 얽혀 있다.

당장 발상지로 결정된 청도군 신도리에는 새마을운동 발상지 가꾸기 사업으로 2016년까지 140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새마을운동 역사전시관, 영농체험학교, 숙박시설용 전통 한옥 등을 세우고, 영화·드라마 촬영 장소로 활용할 수 있는 관광명소로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중앙정부에서 61억원, 도에서 30억원, 시·군비가 33억원 투입될 예정이다.

정부는 이 사업을 위해 올해 국고보조금으로만 10억원을 지원할 수 있다고 경상북도에 통지했다. 지난해 10월이다. 포항의 본격적 항의가 시작된 시점이기도 하다. 당시 이미 청도군으로 결정된 상태였지만, 반발이 심화되자 경상북도는 지난 4월 용역 연구를 의뢰했다. 역시 답은 청도였다. 포항은 이 ‘짜맞추기’에도 분통이 터진다. 무엇보다 포항은 2006년부터 자체적으로 새마을기념관 건립 사업을 추진해왔다. 50억원가량이 소요되는 사업이 이미 75% 진척됐고, 박 전 대통령이 문성동을 방문한 9월17일에 맞춰 준공식을 가질 참이었다. 포항으로선 끔찍한 결과다. 청도군은 “우리가 유리한 조건이어서 가급적 말을 안 하는 게 좋겠다”는 태도다.

근대화 시절, 새마을운동의 공적이 없지 않다. 이 운동의 장점을 공부하려고 방한하는 ‘후진국’ 지도자들도 있다. 하지만 운동의 가시적 성과는 유신체제의 버팀목 구실을 했고, 그 성과조차도 소수 지도자에 의한 동원 체제여서 근력은 떨어졌다. 송미령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새마을운동은 중앙정부의 강력한 추진력이 바탕이 됐다. 시·도-시·군-읍·면-행정리로 이어지는 일사불란한 지방행정조직을 장악하고 있는 내무부에 의해 사업이 추진됐다는 점에서 그렇다”며 “1980년대 구심점이 무너지자 흐지부지됐다”고 평가한 바 있다.

하지만 새마을운동이 시민의 외면을 받았던 이유로는, 부패 관변단체로의 전락이 더 크다. 실제 크고 작은 부정부패에 연루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씨의 횡령 사건은 상징적이다. 전씨는 새마을운동중앙본부 회장으로 재임하며 73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1988년 구속됐다. 지난 4월에는 충남 천안 시민단체들이 “새마을운동 천안시지회가 지난해 김장대금을 부풀리고 임대료 등과 관련해 공금을 유용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전·현직 임원 4명을 국민권익보호위에 고발했다.

친박 쪽 “정치적 목적 오해 풀어야”

지난 3월19일 새마을운동중앙회와 한국자유총연맹은 행안부와 ‘국민 통합과 경제 살리기를 위한 국민운동 실천 협약’을 맺었다. 행안부는 “민관 협력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적극 지원·협조한다”고 명토 박고 있다. 같은 날 두 단체의 수장들이 이재창 전 의원(새마을운동중앙회 회장), 박창달 전 의원(한국자유총연맹 총재)으로 바뀐 직후다. 우연치곤 노골적이다. 모두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을 적극 도왔던, 친이계의 핵심 인사들이기 때문이다. 시선이 고울 리 없다. 현 정권의 차기 집권까지 돕는 외곽 친위부대가 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그게 맞다면 국가보조금은 총알이 되는 셈이다. 친박 계열은 눈뜬 채 아버지의 유산을 빼앗긴 걸까. 친박연대 전지명 대변인은 “왜 지원 규모가 커지는지, 조직과 활동을 확대시키겠다는 건지, 명확하고 투명하게 드러나야만 정치적 목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오해를 풀 수 있다”고 말한다.

소수 지도자에 의한 동원 체제가 소수 지도자의 부패로 연결될 때도, 새마을운동의 깃발은 푸르렀다. 200만 회원은 그 책임을 말없이 나누고, 굴욕을 버텨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가장 닮았다는 이명박 정부에서 새마을운동은 다시 부활해 이제 막 새 시험대에 오른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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