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의 후계구도는 당연히 그룹 지배구조 변화와 연결된다. 특히 사실상의 지주회사인 삼성에버랜드가 그 중심에 있다. 절반은 삼성생명 주식, 절반은 삼성그룹이 보유한 부동산으로 이뤄졌다고 평가받는 삼성에버랜드는 삼성그룹 순환출자 구조에서 핵심적인 기업이다. 이부진 신라호텔 전무의 에버랜드 진출이 후계구도에 끼칠 파장에 관심이 모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전 회장이 지난해 4월22일 서울 태평로 삼성 본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룹 회장직 사퇴 등의 내용이 담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진수 기자
앞으로 나타날 삼성의 ‘경영권 승계’ 또는 ‘재산 분할’이 어떤 양상을 보일지 아직은 속단하기 어렵다. 다만 삼성그룹의 역사를 돌아보면 몇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이병철 전 회장이 별세한 1987년을 전후해 삼성그룹은 한솔, CJ, 신세계 등 ‘위성 재벌’을 독립시킨다. 삼성가 가족들이 모인 이른바 ‘미국 로스앤젤레스 가족회의’를 거쳐 ‘친족분리’에 나선 것이다. 삼성그룹 핵심 관계자는 “이병철 전 회장은 재산을 분할할 때 딸들에게도 큰 신경을 썼다”며 “현재 기업 규모가 상대적으로 적어 보이는 한솔이나 신세계의 경우도 전주제지와 신세계백화점만 넘겨준 것이 아니라, 전주제지와 백화점이 가지고 있던 엄청난 규모의 땅을 함께 넘겨준 것이었다”고 말했다. 형제자매 간에 재산상의 불균형이 나타나지 않도록 신경써서 넘겼다는 설명인 셈이다.
그동안 삼성그룹은 이재용 전무 중심의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신라호텔과 삼성석유화학은 이부진 전무에게, 또 제일모직과 제일기획은 이서현 제일모직 상무에게 떼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장녀인 이부진 전무는 2007년 말 삼성석유화학의 지분 33.18%를 사들여 최대 주주가 됐다. 차녀인 이서현 상무는 디자이너로서의 자기 정체성이 강한 인물이어서 제일모직에 대한 애정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승계구도는 이미 확립된 것일까? 경제개혁연대의 김상조 소장은 “에버랜드가 일단 이재용 전무의 몫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이부진 전무가 에버랜드 급식사업을 맡기 위해 신라호텔 핵심 직원들을 에버랜드로 데려간 현 상황에서 달리 생각해볼 요소가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에버랜드에서 일부 사업부를 담당하는 방식은 어차피 오래 끌고가기 힘든 구도이기 때문에, 앞으로 에버랜드 사업부를 일부 분할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이부진 전무는 에버랜드의 급식사업에만 관심이 있는 것일까? 김 소장은 “선대 회장의 계열 분리 과정에서 CJ가 제일제당 중심으로 분리됐는데, 외식산업에서는 ‘사고’가 터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늘 조마조마한 상황이라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급식산업 자체의 영역은 앞으로도 커지겠지만, 이부진 전무가 단순히 외식산업을 주력 영역으로 삼는 것은 굉장히 리스크가 큰 결정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삼성그룹의 한 핵심 관계자는 “이부진 전무가 급식사업을 넘어 식음료(FC·Food Culture)사업부의 또 다른 축인 리조트 사업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만일 이부진 전무가 리조트를 비롯한 부동산 관련 사업을 갖고 계열 분리를 하겠다고 욕심을 내는 상황을 가정해보면 사태는 훨씬 복잡해진다. 오빠는 생명 주식만 갖고 여동생은 부동산을 갖는 구도는 이재용 전무의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그림일 터다.
삼성은 한국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재벌 가운데 하나다. 1938년 3월 고 이병철 회장이 삼성상회를 세우고, 3년여 뒤인 1941년 6월 ‘주식회사’란 이름을 붙여 현대화된 경영체계를 갖추게 된 게 그룹의 출발점이다. 이후 소비재 수입, 금융업, 비료, 제지, 보험업, 전자산업, 석유화학, 조선, 반도체 등의 사업 영역에서 전방위로 덩치를 키워왔다. 삼성은 2008년 4월 기준으로 자산총액 144조원, 매출액 160조원에 이른 공룡 재벌이 됐다.
흥미로운 대목은 삼성의 과거 가족 분할이 범삼성가의 영향력을 무한 확장하는 방향으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송원근 진주산업대 교수(산업경제학)는 “과거 CJ는 식품, 신세계는 백화점이란 식으로 독립 전문그룹화를 지향하면서 나갔는데, 나중에는 자꾸 문어발 확장이랄까 비관련 부분으로 진출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1987년 이후 삼성에서 독립한 ‘위성 재벌’들은 계열사를 꾸준히 확장했다. CJ, 신세계, 한솔, 새한, 중앙일보, 보광그룹 등을 아우른 범삼성그룹은 2005년을 기준으로 자산규모에서 5대 재벌 총자산의 55.9%를 차지하고 있다. 매출액, 자본금, 단기순이익 같은 지표를 보더라도 모두 50%에 육박할 정도다. 삼성그룹의 2005년 현재 주식 시가총액은 94조원으로 우리나라 4대 그룹 중 현대·LG·SK그룹의 시가총액을 모두 합한 88조원보다 많았다. 범삼성그룹들을 합치면 그 규모는 무려 108조원에 이르렀다. 재벌 공화국의 본질은 ‘삼성 공화국’임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범삼성가의 친족 분리
가족 분할 이외에도 삼성그룹 지배구조와 관련한 중요한 몇 가지 변수가 남아 있다. 정부·여당은 삼성이 원하는 지배구조를 만들어주기 위한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을 4월 국회에서 준비하고 있다. 공성진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은 보험·증권을 자회사로 둔 비은행 금융지주회사에 대해 비금융 자(손자)회사를 허용하는 게 핵심이다. 이렇게 되면 삼성생명이 삼성전자의 지분 7.26%를 가진 현 순환출자 구조를 바꾸지 않고, 삼성에버랜드가 삼성생명을 자회사로 둔 채 그룹의 지주회사로 전환할 수 있는 길이 트이는 것이다.
여기까진 일견 이재용 전무에게 우호적인 환경이다. 실제 삼성특검 이후 이건희 회장에서 이재용 전무에게로 경영권 이양이 착착 진행될 것이라는 게 그동안 삼성 안팎의 시각이었다. 일단 이 회장이 물러나는 모양새를 갖추고, 이 전무 역시 삼성전자 최고 고객 경영자(CCO) 자리를 내놓고 해외 사업장 투어에 나선 이후 1년 만에 ‘컴백’ 수순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전무의 갑작스런 이혼이 경영권 승계 작업에 예기치 않은 변수로 등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부진 전무의 활발한 움직임까지 더해지고 있다. 아직은 누구도 쉽게 새로운 삼성의 지배구조를 예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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