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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차별 걷을 인권위 축소 말라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만 해놓고 현장에서 일할 인권위 인력 대폭 축소가 웬말인가
등록 2009-03-05 17:20 수정 2020-05-03 04:25

장애가 있다는 사실 하나가 한 사람을 거부하는 유일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장애인 차별은 강물처럼 흐르고 있다. 개인의 일상에서 시작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정책 결정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만연하다 못해 야만적인 게 현실이다. 이 사회는 장애인을 ‘병신’으로 낙인찍고 부끄러운 존재로 여기면서, 한편으로는 시혜와 동정으로 대상화한다. 철저히 이중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 셈이다. 그 결과 장애인들은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인 이동할 권리와 교육받을 권리조차 누리지 못하고 시설과 방구석에 처박혀 폐기물처럼 방치된 채 살아왔다. 차별의 역사를 온몸으로 겪고 있는 것이다.

인권단체연석회의 회원들이 2월24일 청와대 옆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국가인권위원회 조직 축소 방침 철회를 촉구했다. 사진/ 연합 한상균

인권단체연석회의 회원들이 2월24일 청와대 옆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국가인권위원회 조직 축소 방침 철회를 촉구했다. 사진/ 연합 한상균

1년 전엔 ‘인력 증원’ 필요하다더니

장애인들은 야만적이고 부끄러운 현실을 바꾸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다. 그 중심에 ‘장애인차별금지법’(이하 장차법) 제정 운동이 있었다. 지난해 시행된 이 법은 장애인들이 2002년부터 거리에서 치열하게 싸워 만들어낸 법률이다. 그 이전까지 장애인 인권은 비장애인들의 허망한 이야기쇼로만 존재했다. 입으로만 추상적으로 떠들었을 뿐 장애인이 직접 부대끼는 현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장차법은 장애인 차별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차별을 시정할 국가기구와 구제수단을 밝힌 법률이다. 이루지 못할 꿈처럼 보였던 법률은 혹독한 시련을 겪으며 탄생했다. 장애인들은 이제 조금이나마 차별 문제가 풀리겠구나 하는 기대도 가졌다. 그런데 정부가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인원을 대폭 축소하겠다고 한다.

장차법을 만들면서 막판까지 고심했던 쟁점 가운데 하나가 장애인 차별을 해결할 기구에 대한 문제였다. 장애인들은 그 중차대한 임무를 인권위에 맡겼다. 오랜 세월 억눌린 가슴을 열고 찾아갈 곳이 바로 인권위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는 장차법의 문구들이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이로써 인권위는 기존에 수행해온 장애인 차별사건 조사에 더해 장차법을 실현할 역사적 책무를 새롭게 넘겨받았다. 장애인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장차법이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인권위 인력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지난해 행정안전부 역시 장애인계와의 논의 과정에서 인권위 인력의 증원 필요성을 변함없이 인정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정부가 효율성을 내세워 인권위 인원을 30% 축소하고 지역사무소도 폐쇄하겠다고 한다. 1년 전에 했던 말을 180도 뒤집은 것이다. 말로는 장애인을 위한다며 수많은 공약을 쏟아낸 정부가 장애인 인권을 보장하는 데 절실한 기구를 축소하려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차별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 장차법이 제정됐고, 인권위는 이제 그 차별의 장막을 하나씩 걷어내는 일을 추진해야 한다. 장차법 시행 뒤 지난 1년간 인권위가 해온 노력은 인권위를 통한 차별 시정이 불가능한 일이 아님을 짐작게 한다. 인권위가 조사에 착수하기만 해도 차별 관행이 사라지는 사례도 여럿 발생했고,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전체에 장애인 인권에 대한 인식이 급속히 파고들고 있다.

지역사무소 없애는 건 폐업하란 말

그러나 정부는 역주행을 꾀한다. 역경을 딛고 제자리를 잡아가는 인권위에 회복이 불가능한 수준의 구멍을 내려 하고 있다. 조직과 인원을 대폭 축소하고 지역사무소를 없애겠다는 방침은 인권위 문을 닫으라는 폐업 통보나 다름없다. 이런 상황에서 겨우 걸음마 단계를 지난 장차법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까. 구멍 난 바가지로 무엇을 건져낼 수 있을까. 장차법이 시행되면 지긋지긋한 차별의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던 수많은 장애인들에게 인권위 조직 축소는 허망함과 분노로 다가올 뿐이다.

인권위를 깨진 바가지로 만들려는 이들은 누구인가. 장애인,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 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는 결코 아니다. 인권이 골치 아픈 이들 그리고 인권을 말하는 사람들이 눈엣가시처럼 못마땅하게 느껴지는 이들일 테다. 과연 이들은 인권의 역사가 피와 눈물을 먹고 흘러왔다는 사실을 알기나 할까. 정부가 더 이상 힘없는 이들의 눈에 피눈물을 고이게 만들지 않기를 간곡히 호소한다. 장애인들에게 인권위 축소 방침은 피눈물 이상의 고통임이 분명하다.

박경석 노들장애인야학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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