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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된 6·15 선물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북에서 받은 풍산개 우리와 두리, 2007년 어린이동물원 맨 구석 자리에
등록 2008-12-01 13:49 수정 2020-05-02 04:25

“우리랑 두리는 어딨는 거야?”
11월23일 일요일. 류아무개(36)씨가 8살 딸과 함께 경기 과천에 있는 서울대공원에 갔다. 간 김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선물한 북한 토종 풍산개 ‘우리’와 ‘두리’도 보기로 했다. 1948년 분단 이후 처음 성사된 남북 정상회담에서 주고받은 선물이다.

관람용 공간이라기보다 사육 공간

‘남북 화해의 상징’ 우리와 두리가 서울대공원 어린이동물원의 가장 구석진 곳에서 살고 있다. 이곳은 시멘트 바닥에 철창만 있는 곳으로관람하기가 쉽지 않다.

‘남북 화해의 상징’ 우리와 두리가 서울대공원 어린이동물원의 가장 구석진 곳에서 살고 있다. 이곳은 시멘트 바닥에 철창만 있는 곳으로관람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와 두리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어린이동물원 입구에는 풍산개, 진돗개 등 토종개를 볼 수 있다는 안내판이 있었지만, 개들이 어디에 있는지 지도는 없었다. 일단 관람로를 따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토끼, 양, 다람쥐원숭이, 일본원숭이 등 여러 동물을 한참 지나쳤는데도 우리와 두리는 나타나지 않았다. ‘관람로가 끝났다’ 싶은 지점에 도착하니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쳐다보니 소 한 마리가 서 있었다. 그 옆에 개들이 어렴풋이 보였다. “소리가 안 들렸으면 그쪽으로는 가지 않았을 거예요.” 류씨가 말했다.

관람로에서 벗어난 길 끝에 우리와 두리가 있다. 안내판도 없다. 한우, 삽살개, 진돗개 등이 우리·두리와 함께 있는 이곳은 ‘동물농장’이라고 불린다. 1년 전 이름은 ‘가축사’다. 실제로 이곳은 전시 공간이라기보다 사육 공간에 가까웠다. 시멘트 바닥에 철창이 쳐져 있을 뿐이다. 바로 옆은 다듬어지지 않은 산길이었다. 말 그대로 휑했다.

북한에서 건너온 우리와 두리는 처음부터 여기 있었을까? 우리와 두리가 이 가축사로 옮긴 것은 2007년 7월께다. 2000년 6월15일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서울에 도착했다. 같은 해 11월까지 청와대 관저에 있었다. 11월9일, “남북 정상이 주고받은 남북 화해의 상징인 만큼 좀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기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김 전 대통령의 주문에 따라 서울대공원 어린이동물원으로 옮겨졌다. 당시 생후 7개월의 ‘강아지’였던 우리와 두리는 어린이동물원의 한가운데인 ‘꼬마동물사’와 ‘동물교실’ 사이의 외부 공간에 전시됐다. 강아지들이 자라면서 아이들을 물 위험도 있어 2~3개월 뒤 ‘동물아파트’(지금의 꼬마동물사)로 옮겼다. 2000년 11월부터 2006년 가을까지 우리와 두리를 돌보던 윤태진 사육사는 “우리와 두리는 그동안 쭉 동물아파트에 있었다”며 “남북 화해의 상징인 만큼 굉장히 소중히 보살폈다”고 말했다. 현재 어린이동물원을 관리하는 김완진 사육사도 “우리와 두리 때문에 동물아파트에 세콤까지 달고 애지중지 보호했다”고 말했다.

우리와 두리가 지금 살고 있는 동물농장은 전에 살던 동물아파트에서 30여m 떨어진 곳이다. 어린이동물원 안에서도 가장 구석진 안쪽이다. 김 사육사는 “이제 다른 개들과 똑같이 ‘개’의 자리로 돌아간 것”이라고 말했다. 어린이동물원 쪽은 “당시 우리·두리가 살던 ‘꼬마동물사’에 미어캣이 들어왔는데 미어캣을 둘 자리가 없어 우리·두리를 다른 개들이 있던 곳에 옮긴 것일 뿐, 우리·두리를 홀대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개’의 자리 vs ‘개’를 넘어서는 상징

김대중 전 대통령이 6·15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북한을 방문했을 때 수행했던 최경환 비서관은 “남북 정상이 주고받은 역사적 의미가 있는 선물인데, (현재와 같이 취급하는 건) 상대 국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며 “사람들이 그 의미를 새길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배려가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우영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정상 간에 주고받은 선물은 ‘개’를 넘어서 ‘남북 화해’라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라며 “매우 부적절한 조처”라고 말했다.

글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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