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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상 보며 되새기라, 그들이 왜 숨졌나

등록 2008-09-05 00:00 수정 2020-05-03 04:25

침몰한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귀국선 우키시마마루호, 위령상 건립 30주년에 만난 요헤 가쓰히코 회장

▣ 오사카(일본)=황자혜 전문위원 jahyeh@hanmail.net

보수적인 일본 사회에서 ‘가해의 역사’를 기록하는 일은 쉽지 않을 터다. 되레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 미군에 의한 원폭과 무차별 공습 등 ‘피해의 역사’를 강조하는 이들이 많은 게 현실이다. 그래서다. ‘우키시마마루호 희생자를 추도하는 모임’의 요헤 가쓰히코(67) 회장의 활동에 새삼 눈길을 주게 된다.

일본이 패전을 선언한 지 꼭 아흐레째 되던 1945년 8월24일 오후 5시20분께 교토 마이즈루시 사하가 앞바다에서 폭발·침몰한 해군 특설운송함이 바로 우키시마마루호다. 일본 정부는 당시 사건으로 모두 549명이 숨졌다고 발표했지만, 당시 배에 타고 있던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와 그 가족은 3735명에 이른다. 징용으로 아오모리현에 끌려와 온갖 고초를 겪다 ‘해방’된 조국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탑승자 명부를 봐도 창씨개명 탓에 얼마나 많이 조선인이 목숨을 잃었는지 알 수 없다.

사건이 벌어진 지 33년 만인 1978년 8월24일 사하가 앞바다에 ‘우키시마마루호 희생자 위령상’이 세워졌다. 이후 무참히 숨져간 조선인 노동자와 그 가족을 위한 추모식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30년째 이어지고 있다. 특히 올 8월24일엔 위령상 건립 30주년을 기념해 마에즈루 시민회관에서 7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행사가 치러졌다. ‘피해의 역사’뿐 아니라 ‘가해의 역사’도 함께 알리는 데 주력해온 요헤 회장을 만났다.

우키시마마루호는 애초 부산을 향하다 갑자기 항로를 바꿨다던데.

=1945년 8월22일 아오모리현 오미나토항을 출발한 우키시마마루호에 탑승한 일본인 승무원이 25명이다. 이들은 패전 뒤 어수선한 상황에서 부산으로 갔다가 포로가 되는 건 아닌가 불안해했다. 당시 물 보급을 위해 항로를 바꿨다고 설명했지만, 승무원들 중에는 가족들에게 “마이즈루까지만 간다”고 말한 이들도 있었다. 배가 폭발·침몰한 것도 해안에 투하된 기뢰 탓인지, 의도적으로 폭침시킨 것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계기는?

=그해 9월16일 마이즈루에서 788명의 조선인이 ‘운젠마루호’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이 가운데 우키시마마루호 사건의 생존자가 있어 사건이 조선에 알려졌고, 운젠마루호는 부산에서 다시 일본의 육군 2천 명을 태우고 10월7일 귀국한 ‘제1호 귀국선’이 됐다. 이들이 다시 조선에서 들은 얘기를 일본에 퍼뜨렸다. 일본 정부의 공식 발표는 사건 발생 46일 만인 10월8일에야 나왔다. 아직도 조선인 희생자들의 유골이 바닷속에 묻혀 있다.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위령상을 세운 배경은?

=사건을 영원히 기억하자는 뜻에서 1976년 사타니 아키라 당시 마이즈루 시장을 대표로 한 위원회가 꾸려졌고, 2년여 만에 위령상을 제막했다. 재일조선인 사업가들이 기부를 제안해오기도 했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일본인들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일본인으로선 기억하기 싫은 ‘가해의 역사’일 텐데.

=희생자들은 관광을 왔다가 변을 당한 게 아니다. 귀국선이 침몰되면서 끝내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들이 무엇 때문에 일본에 왔는가. 일본이 일으킨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또 본토 방위작전을 위해 강제로 끌려온 분들이다. 이런 역사를 풍화시켜선 안 된다. 모든 일본인들에게 전해야 할 책임감을 느낀다.

한국 시민사회와 교류에도 남다른 관심을 가진 걸로 안다.

=요즘에야 퇴직금까지 바닥나서 좀처럼 못 가지만(웃음), 예전엔 많게는 한 달에 두 번씩 한국에 가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람과 문화를 배웠다. 탈춤이나 탈 만들기에 푹 빠져 있노라면, 사람들이 물었다. 당신 대체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아시아인’이라고 대답했다. 앞으로도 한국과 일본의 시민사회가 서로를 알아나가는 데 ‘고리’ 역할을 하고 싶다. 추모행사를 하는 것은 가신 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역사의 잘못을 두 번 다시 저지르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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