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을 딛고 희망으로… 우토로 동포들과 인혁당 사건 유가족이 함께 연 기자회견 현장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오랫동안 절망과 고통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도 몰라주는 땅, 아무도 구해줄 수 없는 땅, 역사에 기억조차 안 될 땅, 그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얼굴에선 희망이 없어지고, 끝까지 싸우자는 이들의 외침도 허무하게 울려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픔을 보듬는 것은 언제나 또 다른 아픔이었다. 역사의 뒤안길에서 잊혀졌던 이들이 두 손을 모아 잡았다. 우토로와 ‘인혁당’ 유가족들의 만남은 그래서 ‘필연’인지도 모른다.
우토로 주민의 감사문에 눈시울 젖어
8월21일 오후 서울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조촐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연단엔 ‘소위 인혁당 사건 통일열사 유가족, 우토로 살리기 5천만원 기부금 전달식’이라고 적혀 있다. 일본 교토부 우지시 이세다초 우토로 51번지에 사는 ‘우토로 동포’들의 아픔을 ‘사법살인’의 희생자들인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 유가족들이 보듬는 자리였다. 행사 참석을 위해 이날 한국을 찾은 김교일 우토로주민회장은 나직한 목소리로 미리 준비한 ‘감사문’을 읽어내려갔다. 웃는 얼굴이 가득한 자리에선 감정의 물기가 촉촉하게 배어났다.
1975년 4월9일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나온 지 18시간 만에 일사천리로 8명이 처형됐다. 이른바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우리 사법부 역사에 길이 남을 치욕이다. 30여년 세월을 훌쩍 넘은 역사는 스스로에게 용서를 구했고, 억울하게 스러진 이들의 넋을 달래기 위한 진혼이 시작됐다. 그새 장밋빛 고운 얼굴엔 세월이 주름으로 패였고, 흑단 같던 머리엔 한 많은 서리가 내려앉았다.
죄를 벗은 것으로 족했다. 지난해 1월23일 대법원은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아낸 뒤, 유가족들은 국가가 내준 보상금을 모아 ‘4·9통일평화재단’(이사장 문정현 신부)을 꾸렸다. 인권과 평화·통일을 위해 애쓰는 이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제 패망 뒤에도 해방을 맞지 못한 땅, 60여 년 세월 외면당해 온 우토로가 그들의 눈에 밟힌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거다.
“남편이 살아 있었어도 동참했을 거다. 남편이 돌아올 수 없는 입장이어서 마음이 더 아픈데. 죽이지나 말 것을…, 죽이지나 말 것을…. 살아 있었다면 하고 싶었을 것을 한다. 외면당한 사람이었기에 외면당한 분들을 돕고 싶었다. 감사하다.”
유가족 대표로 나선 고 하재완 열사의 부인 이영교(73)씨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외로움을 아는 자만이 외로운 이들에게 손을 내밀 수 있다. 김교일 주민회장은 이렇게 감사의 말을 이어갔다. “지금 우토로에는 가슴에 희망과 꿈이 있습니다. 그리고 웃음이 있습니다. 애석하게도 먼저 우리의 곁을 떠나신 (재일동포) 1세들도 오늘의 이날을 축복해주고 있을 겁니다.”
여전히 부족한 7억여원 ‘희망모금’ 중
이날 ‘4·9통일평화재단’이 쾌척한 5천만원으로도 우토로의 ‘고민’은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 어렵사리 따낸 정부의 지원금(30억원)과 우토로 주민들의 갹출금, 나라 안팎에서 연 인원 15만명여명이 동참한 모금운동으로도 아직 갈 길이 멀다. 배덕호 우토로국제대책위(utoro.net) 사무국장은 “토지측량비와 소유권 이전에 필요한 취득세·등기세, 토지구입비 부족분 등을 합해 7억여원이 여전히 부족하다”며 “꿈쩍 않던 일본 정부도 우토로 마을정비사업을 위한 협의체를 구성했으니, 마지막 힘을 조금만 더 모아달라”고 호소했다. 국제대책위와 함께 모금 운동을 주도해온 아름다운재단(beautifulfund.org)은 ‘우토로 마을을 살리기 위한 마지막 희망모금’에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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