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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 레슬링 사랑도 사업도 금메달

등록 2008-08-29 00:00 수정 2020-05-03 04:25

▣ 알마티(카자흐스탄)=글·사진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올림픽이 끝나더라도 비인기 종목에 계속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이자 카자흐스탄에서 건설회사를 세워 100억원대의 재산을 일궈낸 김영남(48)씨. 그가 금메달을 딴 지 벌써 20년이 흘렀다. 하지만 그는 요즘에도 올림픽 경기를 볼 때마다 긴장한다.

김씨는 88년 서울올림픽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74kg급에서 금메달을 땄다. 0-1로 패색이 짙던 후반전에 목감아돌리기로 2-1로 역전하는 명승부를 연출해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경기가 끝난 뒤 패자의 손을 번쩍 들어주며 스포츠 정신을 유감없이 보였다.

그런 그가 97년 레슬링 지도자 생활을 접고 맨손으로 훌쩍 카자흐스탄으로 갔다. 그는 “야구나 축구처럼 프로가 있는 종목은 프로 선수로서 꿈을 펼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선수들은 코치와 감독 이외에 갈 곳이 없다”며 “올림픽 금메달을 딴 뒤 목표를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카자흐스탄으로 가게 된 것은 올림픽에서 맺은 인연 때문이었다. 서울올림픽에서 그에게 역전패해 은메달에 그친 다울렛 툴루카노프(47)와의 끈끈한 우정이 끈이 됐다. 다울렛은 승리에만 도취하지 않고 자신의 손을 들어준 김씨의 따뜻한 마음씨에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카자흐스탄 체육부 장관이 되는 등 체육계의 거물로 성장한 다울렛은 틈만 나면 김씨를 자신의 조국으로 불러들이려 애썼다.

결국 김씨는 카자흐스탄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마지막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 전남 함평에 계신 부모님은 땅을 치며 “왜 잘난 우리 아들이 그렇게 멀리 떨어진 못사는 나라까지 가서 고생해야 하느냐”고 말렸지만 그의 발걸음을 돌리지는 못했다.

김씨는 정착 초기 한국에서 자동차를 들여와 팔기도 했고 시장에서 주방용품을 팔기도 했다. 그 뒤 볼링장을 하다 우연히 건물을 샀는데, 건물값이 올랐다. 그는 이를 기회로 ‘천산개발’이라는 회사를 세워 본격적으로 부동산 사업에 뛰어들었고 대성공을 일궈냈다.

김씨는 “이곳에 온 것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며 “앞으로 어려운 선수들을 위해 한국에 레슬링 훈련소를 세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는 “운동하는 사람이나 사업가는 목표를 세워두고 끊임없는 열정으로 미치도록 노력하는 것이 공통점”이라며 “사업에서도 금메달을 따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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