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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욱·조백기] 미국소 들이듯 지문 넘길텐가

등록 2008-08-21 00:00 수정 2020-05-03 04:25

▣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여권’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이들이 있다. 야당 정치인들이 아니다. 인권단체연석회의 생체여권 대응팀에서 활동하는 진보넷 김승욱 활동가와 천주교인권위원회 조백기(사진) 활동가. 이들이 고민하는 여권은 여권(與圈)이 아니라 여권(旅卷), 즉 외국 여행 때 필요한 ‘패스포트’다.

문제의 출발은 정부가 지난해 전자여권 도입 방침을 본격화하면서부터다. 정부는 국민 편익과 미국과의 비자면제 프로그램 체결 등을 명분으로 내걸었다. 이에 따라 지난 2월 전자여권제 도입 등을 담은 여권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4월 미국을 방문해 조지 부시 대통령과 한·미 양국 비자면제 프로그램 체결에 합의했다.

비자가 면제되면 미국 가는 일이 편해지는 것 아닌가? 김씨와 조씨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김씨는 “어차피 미국은 우리나라 국민 개개인을 두고 입국심사를 하게 된다. 그 과정을 간소화한다는 게 우리 국민의 편리를 위한 것인지, 자기들 시스템을 편리하게 운용하겠다는 것인지 생각해보라”고 말했다. 비자를 면제받는 대신 ‘전자여행허가제’ ‘여행자정보 공유협정’에 따라 여권에 담긴 정보를 입국 심사 전 미리 미국 정부에 전달하는 것은 더욱 큰 문제다.

‘안전성’ 우려도 있다. 조씨는 “현재 칩이 보안이 뛰어나다 해도 미래에 언제 어떻게 정보 대량유출 사고가 일어날지 모른다”며 “특히나 미국 정부도 필수사항으로 요구하지 않는 지문 정보까지 여권에 담겠다는 것은 심각한 인권침해”라고 말했다. 인권단체에선 전자여권에 생체 정보가 수록되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 ‘생체여권’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그럼에도 법은 개정됐고, 전자여권은 현실이 됐다. 8월25일부터는 전자여권제가 전면 시행된다. 김씨와 조씨 등은 이에 맞서 전자칩이 내장되지 않은 ‘구식여권’ 재발급 받기 운동을 생체여권 대응팀 홈페이지(biopass.jinbo.net)를 통해 펼치고 있다.

“재발급 운동이 근본적 대책은 아니다. 사실 관심은 덜하지만 생체여권 문제도 쇠고기 협상 못지않게 문제가 많다. 앞으로는 법개정 운동과 함께 개인정보보호법 제정 등 정보인권이라는 더 큰 틀에서 이 문제에 접근해볼 계획이다.”

법학박사 학위를 가진 인권운동가로도 유명한 조씨의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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