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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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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살+호주뼈 온라인 유통

등록 2008-06-17 00:00 수정 2020-05-03 04:25

국적 불명의 ‘본드갈비’ 거래 확인, 식탁에 오를 땐 오스트레일리아산이나 한우로 둔갑 의혹

▣ 최성진 기자csj@hani.co.kr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가라앉지 않는 가운데, 온라인에선 여전히 미국산 쇠고기가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다. 특히 일부 수입·유통업체는 미국산 살코기에 오스트레일리아산 뼈를 갖다붙인 이른바 ‘본드갈비’를 대량으로 유통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 상당수가 최종 소비 단계에서 오스트레일리아산이나 한우로 둔갑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온라인에서 컨테이너 단위 수입육 거래

4월18일 한-미 쇠고기 협상 타결 직후 정부는 대대적인 언론 홍보와 함께 농림수산식품부와 식약청, 각 지방자치단체 등으로 구성된 원산지 합동단속반을 출범시켰지만, 단속에 걸린 곳은 대중음식점이 대부분이었다. 정작 수입 쇠고기가 대량으로 유통되는 도매 단계에 대한 관리·감독은 거의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더구나 온라인 수입육 시장은 더욱 감시망을 벗어나 있다.

포털 사이트 다음과 네이버에서 활동 중인 축산 커뮤니티 가운데 5곳 정도에서 수입 쇠고기가 지속적으로 거래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가장 활발히 거래가 이뤄지는 ㅁ커뮤니티에는 하루 10~20건 정도의 수입육 판매 광고가 올라올 정도다. 미국산 목심이나 갈비살을 팔겠다는 광고도 최근까지 꾸준히 오르내리고 있다. 탄탄한 유통망을 구축하고 있는 메이저 수입업체라면 굳이 온라인 판매를 할 필요가 없겠지만, 중소 규모의 수입·유통업자들에게는 온라인이 유용한 거래 창구인 것도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 육류 수입업계 관계자는 “온라인 수입육 거래 사이트에선 적게는 수t에서 많게는 컨테이너 단위의 수입 쇠고기 거래가 이뤄진다”며 “미국산 살코기에 오스트레일리아산 뼈를 붙인 ‘본드갈비’도 흔히 거래되는 품목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컨테이너는 용량에 따라 18t짜리와 20t짜리로 나뉜다.

지난해 12월10일 온라인 수입육 거래장터에 사진과 함께 올라온 글을 보면 ‘본드갈비’ 유통 실태를 엿볼 수 있다. “수작업으로 만든 소 양념갈비를 소개합니다. 위 제품은 오스트레일리아산 뼈와 미국산 초이스급 살치살을 합쳐 만든 제품입니다. 미국산 살이라 육질도 월등하고요, 양념은 예전에 대형 갈빗집에서 먹던 소금 양념으로 했습니다. 그래서 한번 들어간 매장에서는 타 업체와 경쟁이 안 되더라고요.” 해당 업체 관계자는 과의 전화 통화에서 “먹어본 소비자들은 대부분 맛있다고 평가하는데, 지난해까지 미국산은 뼈없는 살코기만 들어왔기 때문에 (뼈를 붙인 본드갈비는)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대안이었다”면서도 “최근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인식이 워낙 나빠져 더 이상 취급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업체 관계자는 “미국산이 맛도 좋고 가격도 오스트레일리아산보다 싸기 때문에 이렇게 만들어 파는 업자들이 많다”며 “우리 물건을 받은 음식점이 원산지 표시를 정확히 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원산지 표기를 정확히 한다면 ‘미국산 살코기+오스트레일리아산 뼈’라고 해야 맞지만 식당에서 한우로 팔렸는지, 오스트레일리아산으로 팔렸는지 모른다는 이야기다. 이 관계자는 미국산 본드갈비를 정확히 얼마나 유통시켰는지에 대해서는 밝히기를 거부했다.

한우 아니라면 원산지 확인 방법 없어

문제는 이처럼 미국산 쇠고기를 오스트레일리아산으로 둔갑시켜 팔아도 이를 적발할 방법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단속 주무부처인 농림수산식품부도 이같은 사실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개발된 유전자식별법으로 한우인지 여부는 99% 이상 확인할 수 있지만, 한우가 아닌 쇠고기가 미국산인지 오스트레일리아산인지 확인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현재로서는 각 음식점의 쇠고기 거래내역서를 확인하는 등 행정적 방법으로 찾아내는 수밖에 없다. 지난 5월12일 농산물품질관리원이 전북 전주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양념갈비로 만든 뒤 호주산 등으로 허위표시해 판매한 식당 업주를 적발한 것도 육안검사와 거래내역서 등을 토대로 추궁한 결과였다. 물론 이 방법도 앞서 소개한 사례처럼 온라인에서 거래가 마무리되는 경우에는 적용하기 힘들다.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과 함께 원산지 허위표시에 대한 단속을 크게 강화하겠다고 했다. 당장 6월22일부터 개정된 원산지표시제가 시행된다. 그러면서 정부에서는 4월28일 시작된 원산지 합동단속 행사에 각 언론사 기자들을 ‘초청’했다. 원산지 허위표시 단속이야말로 전형적인 전시행정 사례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실제로 정부는 4월25일 정부 각 부처 대변인 조찬간담회에서 원산지 단속 행사를 ‘긍정적 홍보 소재’로 지목하고 총력을 기울여 홍보한다는 방침을 세웠던 것으로 드러났다.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온라인 도매 단계 둔갑 “적발 어려워”

특히 온라인 도매 단계서부터 양념을 뒤집어쓴 미국산 쇠고기가 오스트레일리아산으로 둔갑하는 것에 대해서는 적발할 방법도, 능력도 없는 것이 정부의 현실이다. 온라인 거래 현황 자체도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원산지관리과 관계자는 “미국산이나 호주산 쇠고기 일부가 전자상거래 사이트 등을 통해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전체 유통 물량 가운데 온라인에서 거래되는 양이 어느 정도 비율을 차지하는지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상철 식약청 중앙기동단속반 반장은 “아무리 단속을 강화해도 원산지 허위표시나 둔갑 판매로 부당이득을 취하는 이들이 여전히 있다”며 “음식점 뿐만 아니라 쇠고기 수입업체가 원산지를 허위로 표시하는 것을 모두 단속해서 원산지 위반을 뿌리뽑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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