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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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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춘] 페달을 밟는데 아픕니다, 아파요

등록 2008-06-13 00:00 수정 2020-05-03 04:25

▣ 이태희 기자hermes@hani.co.kr

“자동차로 다닐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우리 산야가 다가오더군요. 땅과 시냇물과 푸근하게 대화하는 느낌이 듭니다. 우리 땅에 대한 애정을 다시 한 번 느껴봅니다.”
6월6일 현충일, 김영춘 전 의원은 제주시를 출발해 서귀포시를 향하고 있었다. 자전거 국토순례 11일째. 17대 국회 임기 만료 직전인 5월26일 시작된 여정은 한 달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간 경기도와 충청, 호남의 땅끝을 넘어 제주도에 도착했다고 한다.

“이번 여행은 국회의원 8년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생활을 준비하면서 마음과 몸을 가다듬는 자기 정련의 과정이라고 봅니다.”

국토 순례 첫날부터 시련은 컸다. 갑작스럽게 도로에 뛰어든 사람을 피하느라 넘어지면서 한바탕 굴렀다. 하루 60~70km를 주파한다. 그 덕분에 “안 아픈 곳이 없고, 아픈 곳이 매일 바뀐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그를 더 아프게 하는 것은 근육의 고통이 아니라 마음의 고통이다. 이번 순례 도중 전북 부안군 읍내를 지나다 처음 촛불과 마주쳤다. 그는 “10여 명이 조용히 촛불을 들고 모이는 현장에서 30분 정도 지켜보다 다시 길을 재촉했다”며 “지금 농촌과 어촌은 그야말로 폭풍 전야”라고 말했다.

“지금 농촌은 모내기로 한창 바쁜데, 모내기만 끝나면 다들 서울로 올라가 시위하겠답니다. 도저히 못살겠다는 거예요. 이모작으로 보리농사 짓던 분들은 ‘올해 농사로 보리농사는 끝’이라고 하더군요. 각종 기계 임대료 등을 주고 나면 품삯도 안 빠진다면서요.”

어촌은 더 심하다고 한다.

“어지간한 규모 이상의 배를 가진 선주 아니고서는 모두 배를 놀려요. 면세유라고 세금 없이 공급되는 기름이 있는데, 그 값이 두 배로 올랐다고 하더군요. 이젠 조금 지나면 서민들은 생선 구경도 못하게 생겼어요.”

김 전 의원은 “지금 우리나라는 총체적인 발전 비전 부재의 블랙홀에 빠진 상황”이라며 “상위 10%를 제외한 중간과 하위 90%의 삶은 갈수록 불만과 불안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다”고 했다. 지난 8년간 국회의원을 해왔던 그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했다.

“지금의 민심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섬기는 자로서의 복무 자세를 밑바닥부터 다시 생각하라는 것이더군요. 미국산 쇠고기 문제도 지금 방식으로는 절대 안 됩니다. 협상 파기 선언 후 재협상에 들어가지 않으면, 미국과의 신뢰가 아니라 대통령과 국민 간의 신뢰에 근본적인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통화를 마친 그는 서귀포까지 1시간 정도 더 남았다며 힘찬 페달질을 다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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