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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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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매도 현재를 산다

등록 2008-06-13 00:00 수정 2020-05-03 04:25

지난해 왕 중심 사극이 각광받고 지금 조선 자객과 의적이 활개하는 건 우연이 아니라네

▣ 강명석 문화평론가

지난해 한국 사극에서 각광받은 왕은 정조였다. 그는 문화방송 에서 두뇌와 성품을 모두 가진 이상적인 군주였고, 한국방송 에서 이상을 실현하지 못한 비극의 왕이었으며, 채널CGV 에서 암살 위협에 시달리는 위태로운 정치가였다. 그러나 올해 사극은 광해군에서 시작된다. 한국방송 의 길동(강지환)은 폭정을 일삼는 광해군(조희봉) 때문에 의적이 되고, SBS (수·목 밤 9시55분)의 모든 사건은 인조반정의 반정공신 이원호(조민기)가 인조(김창완)에게 건네는 한마디로 시작한다. “광해군이 옳았습니다.” 광해군이 옳았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이 아닌 두 작품 안에서라면, 광해군은 인조보다는 낫다. 의 광해군은 폭정을 일삼는 ‘미친 왕’일 뿐이었지만, 인조는 조선을 완전한 양반의 나라로 만든다. 의 젊은 왕 인조는 양반들의 여론에 밀려 길동을 비롯한 평민들을 몰아냈고, 의 나이든 인조가 지배하는 조선에서는 평민이 글공부를 한다는 이유로 양반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한다. 그래서 광해군의, 혹은 인조의 사극은 정조의 사극과 전혀 다른 세계를 그린다.

슈퍼히어로 대 미친 왕

왕은 뛰어나다. 또한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러나 기득권은 그의 통치이념에 반기를 든다. 의 세계관은 ‘슈퍼히어로’에 가까운 능력을 가진 왕이 백성을 알아서 잘 다스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과 는 ‘미친 왕’은 백성이 엎을 수 있음을 주장한다. 물론 과 는 고전 원작을 바탕으로 했다. 그러나 두 작품이 계급의 문제에 더해 잃어버린 아버지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라고만 할 순 없다. 길동은 원작과 달리 계급의 벽에 막혀 끝내 아버지와 호부호형하지 못한다. 용이와 그의 배다른 형제 시후(박시후)는 이원호가 죽은 뒤 각각 다른 아버지 밑에서 산다. 평민 아버지를 가진 용이는 마음은 행복하나 신분상승의 기회가 막혀 있고, 관료의 아들이 된 시후는 보이지 않는 차별을 견뎌내야 한다.

진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기 위해 스스로 도둑이 되는 세상. 완성도를 따지기 이전에, 과 는 놀라울 정도로 태연히 왕의 전복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것을 위해 진짜 아버지를 갖지 못한 청춘들이 움직여야 한다고 말하는 새로운 시대극이다. 특히 보다 늦게 방영 중인 가 더 직설적인 방식으로 전복에 대해 말하는 것은 흥미롭다.

에서 인조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하다 기득권에 투항하는 비극의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의 인조는 스스로 모든 음모를 꾸며낸다. 또한 에서 양반은 아주 착한 소수의 사람들과 아주 악한 나머지로 나뉘어져 있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평민 한 명의 손목쯤은 마음대로 자를 수 있는 양반의 모습은 그들을 전복해야 할 이유를 더욱 분명히 보여준다. 이 왕과 평민이 합심해 이룬 개혁의 좌절에 대한 이야기라면, 는 개혁이 실패로 돌아간 뒤 그 개혁 세대의 아들들이 또 다른 ‘미친 왕’과 싸운다. 이는 의 완성도를 저해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선악을 분명하게 나눠놓은 대립구도는 지나칠 정도로 단순하고, 용이가 역적의 자식임을 밝히려는 남자가 10여 년 뒤 다시 우연히 용이를 만나는 식의 설정은 작위적이다. 단 한 사람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수많은 권력자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하는 한국방송 이나 왕조차도 뜻대로 정치를 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과 비교한다면, 인조가 몇 사람의 자객과 한 명의 간신만으로도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의 세계관은 지극히 단순하다.

가벼운 청춘이 칼을 들다

그러나 과 이 정치사극이라면 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슈퍼히어로물’이다. 의 단순한 전개방식은 그만큼 빠르게 계급차별에 대한 ‘분노’를 일으킨다. 등장 직후부터 맞고, 물에 빠지고, 흙바닥을 뒹구는 등 온몸을 내던지는 이준기의 연기는 시청자를 용이의 처지에 몰입하게 하는 데 효과적이고, 시청자는 이준기의 고통이 쌓일수록 그가 ‘슈퍼히어로’ 일지매로 변신해 ‘다 때려잡는’ 순간을 기다린다. ‘조선시대 슈퍼히어로물’로서 과 의 매력은 현실정치에 대한 담론과 대안을 제시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평범한 청년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그 쾌감의 원천은 대중이 슈퍼히어로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시대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과 의 등장은 드라마 외적으로 볼 때 더욱 흥미롭다. 대선 전에는 ‘좋은 지도자’에 대한 기대를 담은 정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사극들이 등장했고, 청춘들이 20년 만에 그들의 부모와 함께 거리로 나가는 지금은 왕을 향해 칼을 겨누는 의적들이 등장했다. 두 작품에서 길동과 용이는 모두 세상사에 관심 없는 가벼운 청춘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버지를 통해 자신의 계급을 자각하고, 그 순간 왕에게 맞서기 시작한다. 역대 최저의 투표율을 기록한 국회의원 선거와 거리 촛불문화제가 열린 것은 불과 한 달 간격이다. 청춘들이 자각했고, 자각한 청춘은 인조에게 칼을 겨눈 홍길동과 일지매처럼 “대통령 나와”를 외치고 있다.

물론, 모든 것은 우연일지 모른다. 과 는 오래전부터 기획된 작품이었다. 두 작품에서 그리는 광해군과 인조의 관계를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의 이야기로 치환하는 것 역시 지나친 해석일 수 있다. 그러나 은 지난 상반기 동안 한국방송 미니시리즈 중 가장 높은 평균 시청률을 기록했고, 는 손예진이 출연하는 화제작 문화방송 와 동시에 편성돼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얼마 뒤에는 조선시대의 자객 이야기를 다룬 또 하나의 조선시대 슈퍼히어로물이라 할 수 있는 한국방송 가 시작된다. 모든 것이 우연이라 할지라도, 지금 대중이 이 ‘의적’들을 선택하는 것만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지금 왕조실록에서 벗어나 조선시대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고전소설 안에서 역사적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새로운 경향의 시대극들이 나오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대중은 의적을 선택했다

현실의 청춘들이 바깥에서 직접 움직이고 있을 때, TV 안의 사극 역시 정치 담론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수는 없다. 왕은 통치자가 아닌 특정 계급의 대변자가 되고, 청춘들에게 필요한 것은 담론이 아닌 행동이다. 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영어 몰입교육과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직접적으로 비판했고, 이준기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쓴 글을 통해 집회 참여자에 대한 경찰의 강제 연행과 폭행을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드라마를 만드는 이들도, 보는 이들도 모두 같은 시대를 산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느끼는 ‘시대’를 반영하는 드라마를 원한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다만, 지금은 그것이 과거보다 훨씬 더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시대일 뿐이다. 세상에 무관심하던 청춘들이 왕과 싸우게 되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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