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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욱] 현대차 주총과 소년은 여전했네

등록 2008-03-28 00:00 수정 2020-05-03 04:25

▣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정몽구 회장의 거액 비자금도 적법하게 이뤄진 것인가요?”

지난 3월14일 서울 양재동 본사에서 열린 현대차 정기 주주총회장. 김광년 감사위원이 “적법하게 처리됐습니다”라고 말하며 감사보고를 마칠 때쯤, 한 소년이 “질의 있습니다”라고 외쳤다. 소년은 “정몽구 회장이 거액 비자금을 조성했는데, 그에 대한 문제는 어떻게 된 것입니까? 그것도 다 적법하게 이뤄진 것인가요? 다 적법하다고 하는 것입니까”라고 다그쳐 물었다.

일순 조용해졌다.

소년이 침묵을 깼다. 그는 이날 주총 의장인 김동진 현대차 부회장에게 “부회장님, 지난해 저와 하셨던 약속 지키셨나요?”라고 다시 질문을 던졌다. 소년은 지난해 현대차 주총에서 “직원들을 동원한 짜고 치는 고스톱식 주총을 하지 말아 달라”고 요구해 화제를 모은 이현욱(18)군이었다.

김 부회장이 “직원을 동원하지 않았다. 그런 일 없다”고 하자, 이군은 “시간 내서 온 주주가 왜 졸고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곳저곳에서 “회의를 빨리 진행하라”고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군은 “이게 한국 자본주의의 한계인가 보다”라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이군은 현대차 주식 1주를 갖고 있는 소액주주다. 얼마 전까지 현대차 주식 75주를 갖고 있다 현대미포조선 등으로 갈아탔다. 이군은 “주총은 주주가 경영진에게 질문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의 장인데, 그러지 못한 주총 문화가 못내 아쉬웠다”며 지난해 주총 당시를 떠올렸다. 이군은 “만약 내가 현대의 최고경영자라면 개성이나 신의주에 공장을 짓겠어요. 북한을 도울 수 있고 무엇보다 저비용을 들여 숙련된 노동 인력을 확보할 수 있는데다 관세 없이 자유롭게 거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라고 말했다.

이군은 지난해 서울 양정고를 중퇴하고 검정고시와 수능을 준비하고 있다. 서울대 경영학과가 목표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등을 보며 시야를 넓혀가고 있다고 한다.

그의 희망은 최고경영자(CEO)다. 그것도 ‘책임지는’ 오너 CEO가 되고 싶다고 했다. 퇴임할 때는 스웨덴의 존경받는 발렌베리 가문처럼 회사 지분을 모두 공익재단에 넘기고 마이크로크레디트(저소득층 대상 소액신용대출) 사업도 하고 싶다고 했다. 주식에 투자해 번 돈으로 35일 동안 인도와 네팔, 카타르를 혼자 여행하기도 했다. 그는 리더스 휴먼 앤 월드(LHW) 투자회사를 만들어 사업구상도 짜고 있다.

이군은 내년부터 주총장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상법에 나와 있는 형식적인 주총이 아니라, 주주가 실질적인 주인이 되는 주총으로 개선될 때까지 주총장에는 나가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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