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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둥지] 황혼의 손길로 다큐를 빚다

등록 2008-03-07 00:00 수정 2020-05-03 04:25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잊혀진 안산의 독립운동가 염석주를 찾아서’. 60∼70대 할머니들이 잊혀진 독립운동가 염석주의 삶을 추적해 50분짜리 역사 다큐멘터리로 제작했다. 경기도 안산시 본오동 은빛둥지(노인전문 정보화교육기관) 프로덕션 ‘황혼의 손길’의 멤버인 강희정(78)·조경숙(79)·윤아병(70)·박춘지(67)씨. 그리고 고문과 촬영감독으로 각각 참여한 은빛둥지 라영수(69) 원장과 박상묵(61) 총무.

할머니들은 2006년 은빛둥지 동영상 제작반을 갓 졸업한 ‘신출내기 영상쟁이’들로, 1년여 동안 찍은 이 다큐멘터리는 3월 말 안산 예술의전당에서 정식 상영될 예정이다. 염석주(1895∼1944)는 안산 출신으로, 심훈의 소설 의 여주인공 최용신(소설 인물 채영신)의 농촌계몽운동을 뒤에서 후원했던 재력가다. 다큐멘터리의 기획부터 시나리오 작성, 제작까지 모두 할머니들이 직접 수행했다. “염석주씨는 ‘신간회’ 활동을 하며 독립운동을 했던 애국지사예요. 소설 속 인물로만 여겨지는 게 아쉬워 역사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어요.” 할머니들은 그동안 염석주의 행적을 찾아 전국을 헤매며 증언을 수집했고 중앙도서관·국회도서관·국가기록보관소 등을 찾아 자료를 모았다. 국내외에 흩어져 살고 있는 직계 가족을 찾아내 증언을 채취했고, 그의 활동을 다룬 일제시대 신문기사, 염 선생을 ‘고등계 요시찰인(要視察人)’으로 기록한 일본 경찰의 내부 문서 등도 확보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염 선생이 상하이 임시정부 등에 군량미를 지원했던 만주를 찾아 1400km를 달리며 직접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다. 무거운 영상장비를 들고 멀리 촬영을 갔다 오면 며칠간 몸살을 앓기도 했다. 촬영 비용은 그때그때 1만∼2만원씩 쌈짓돈을 모아 충당했다.

지금은 막바지 편집 작업에 한창이다. 수집된 자료를 토대로 염 선생을 독립 유공자로 등재하는 작업도 추진하고 있다. 강희정 할머니는 흥분을 감추지 않으며 말했다. “염 선생이 광복 1년을 앞두고 배신한 동료의 밀고로 옥에서 수감 중 돌아가셨거든. 그런데 그 배신자는 국가보훈처에 독립유공자로 등재돼 있더라고. 이럴 수가 있나?” 다음 작품에서는 독립유공자 중 친일 행위를 한 인물을 찾아내 역사적으로 왜곡된 사실을 파헤쳐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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