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불능 낙인 찍힌 회사를 눈부시게 일으킨 서두칠 사장의 기적, 혹은 경영혁신

“서두칠 사장을 따라 배웁시다.”
한국의 실리콘밸리를 꿈꾸는 대전 벤처기업들의 요람인 대덕밸리의 벤처기업가들이 최근 들어 가장 많이 입에 올리는 구호다. 실제로 대덕밸리 벤처기업들의 중심 네트워크 구실을 하고 있는 ‘대덕넷’(www.hellodd.com)의 자유게시판 등에는 서두칠 사장을 따라 배우려는 벤처기업가들의 얘기들이 곳곳에서 들린다.
“남 잘 때 일하고 남 쉴 때 공부했다.”
뉴스란에는 직원 11명에 1억여원의 부채를 떠안고 있어 어려운 사정을 겪고 있는 ㅋ정보통신 최아무개 사장이 “정말 목숨걸고 해보겠습니다. 서두칠 사장님보다 더 잘하는 CEO(최고경영자)가 될 수 있도록…”이라는 다짐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또 최근 서두칠 사장이 그의 경영과정을 담아놓은 (김영사 펴냄)라는 제목의 단행본을 공동구매하는 데 100여명이 넘는 이들이 신청했다는 사실도 확인된다.
도대체 서두칠이란 이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기에 박사학위를 가진 연구원 출신이, 대전의 벤처기업가들이 앞다퉈 따라 배우고 싶다는 얘기를 스스럼없이 하는 것일까. 서씨는 경북 구미공단에 위치한 ‘한국전기초자’(www.heg.co.kr)라는 기업의 대표이사다. 한국전기초자는 텔레비전 브라운관 유리와 컴퓨터 모니터용 유리를 생산하는 제조업체다. 그는 1997년 ‘회생불능’이라고 낙인찍힌 이 기업을 3년 만에 완벽한 경영혁신을 통해 살려낸 주인공이다.
구체적인 수치를 들여다보면 그의 행보가 왜 ‘한국식 경영혁명’ 또는 ‘기적’이라는 다소 과장된 듯한 표현으로 불리는지를 알 수 있다. 대우전자가 1997년 이 기업을 인수하면서 대우그룹으로부터 “사실상 사형선고를 받은 이 회사를 살려내라”는 임무를 받았을 때 서씨가 확인한 경영지수들은 암담했다. 매출액 2377억원, 자본잠식 상태에 부채비율은 1114%, 차입금이 3480억원이었으며 그해 한해 600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부실기업 중에 부실기업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77일 동안의 장기파업으로 노사관계 역시 완전히 붕괴됐다. 외국의 기업진단회사는 “생산기술과 종업원 자질, 관리능력이 부족하고 사업확장이 무리했다”면서 회생불능 판정을 내린 상태였다.
그러나 쓰러져가던 그 기업이 지난해 달성한 경영실적은 그야말로 눈부시다. 매출액은 3배 정도 신장된 7100억원에 무차입 경영을 실현했으며, 1600억여원의 순이익을 냈다. 특히 영업이익률이 35.3%에 이르러 국내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이 기업은 올해 차세대 제품이자 고부가가치 제품인 초박막액정유리(TFT-LCD) 사업을 위해 1800억원의 내부 투자자금을 마련해놓은 상태다. 올해 이 업체 전 직원들은 1200%의 보너스를 받는다. 특히 놀라운 것은, 이같은 혁신을 겪는 과정에서 인위적인 인력감축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4월3일 서울 하이얏트호텔 그랜드볼룸에서는 서씨의 경영혁신 과정을 수록한 의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서씨는 취재진을 만난 자리에서 “경영이란 목숨을 바쳐서 하는 것이란 신념을 갖고 전 임직원이 남 잘 때 일하고, 남 쉴 때 공부했다”며 “노사가 협력하고 함께하면 어떤 일도 할 수 있다는 실례를 보여준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소감을 밝혔다.
혁신의 핵심은 열린 경영

지용희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디지털 경제의 재산은 기계·부동산 등 물적 재산, 기술·경영의 지적 재산, 좋은 노사와 고객이라는 관계 재산으로 이뤄진다”며 “이 가운데 관계 재산이 가장 중요한데 한국전기초자는 노사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경쟁력을 갖춘 한국형 경영의 새로운 모델”이라고 평가했다. 대덕넷의 대표 이석봉씨도 “지금까지 노동의 탄력성이 보장된 가운데 합리성 위주의 서구식 경영과 연공서열식의 일본식 경영이 뒤섞여 있는 것이 한국적 경영의 현주소였다”며 “이 책의 가장 큰 의미는 살아 있는 한국적 경영의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이라고 분석했다.
서씨의 성공 사례는 ‘경영혁신’과 ‘구조조정’이라는 화두에 휩싸여 있는 한국 경제계에 하나의 본보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벌써부터 서두칠식 경영방식의 고갱이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특히 기업조직의 변화와 혁신과정에서 최고경영자의 결정적인 구실이 강조되는 최근 경향은 이같은 토론을 더욱 활성화할 것으로 보인다.
서씨는 이 책에서 자신과 한국전기초자의 성공은 전적으로 “혁신에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들의 혁신이 “전체가, 동시다발로, 숨가쁘게”의 방식으로 이뤄졌다고 요약했다. “진정한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혁신(革新)이라는 단어의 원래 의미를 되새겨봐야 한다. 혁신의 혁자는 가죽이다. 가죽을 벗겨내는 고통이 없이는 진정한 의미의 혁신은 이뤄지지 않는다.” 서씨가 혁신이 성공하기 위한 전제조건을 이렇게 설명했다.
가죽 얘기까지 나온 이유는 그가 임직원에게 요구한 혁신의 수준이 가혹했기 때문이다. 그는 새벽 6시에 나와 저녁 늦게 퇴근하며 공휴일과 명절은 물론 휴가조차 없이 365일 모두를 회사에서 지냈다. 그는 간부급 직원들에게도 공휴일과 명절을 반납할 것을 요구했고 이는 그대로 시행됐다. 근무시간은 1시간 근무 뒤 30분 휴식에서 2시간 근무 뒤 10분 휴식으로 바뀌었다.
서씨의 혁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항상 혁신의 맨앞자리에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최근 데이비드 내들러는 이라는 책을 통해 혁신과 관련한 최고경영자의 임무가 “변화를 주도하는 것이지 단순히 변화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즉, 자신이 깊이 관여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면서 대규모 변화를 성공적으로 이끈 최고경영자는 단 한명도 없다는 것이다.
서씨의 경영기법을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열린 경영’이다. 그는 부임 직후 직원들에게 고용보장을 약속하는 대신 더 많은 노동시간을 따냈다. 첫달 동안 17번의 직원대상 경영설명회를 열어 재고의 불량수준과 경쟁사 동향 등을 공개했다. 경영이 안정화 국면으로 접어든 현재도 일주일에 한번 과장급 이상 임직원 100여명이 참가하는 경영회의를 연다. 이 자리에서 회사가 돌아가는 얘기를 다 한다. 가족들이 참여하는 경영설명회 역시 이 회사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이다. 서씨 회사는 지난해 12월30일 기본급 5% 인상을 포함한 2001년 단체협약안을 타결함으로써 4년 연속 단 1회의 노사교섭으로 임단협을 마무리지은 특이한 기록도 세웠다.
인간중심의 경영철학
취재진이 지난 3월말 구미 현지의 공장을 취재할 당시 서씨는 이같은 자신의 경영철학의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기업이란 결국 사람이다. 기업의 문제는 사람의 문제다. 우리 한국사람들은 마음만 안정되면 신바람이 나는 민족이다. 열린 경영이란 단순한 경영정보의 공개가 아니라 노사 또는 경영책임자와 사원들 사이에 터놓고 주고받는 정분(情分)의 교류이다.”
그가 경영에 관한 강의를 할 때마다 경영의 원칙으로 요구하는 “정을 줘라, 벽을 없애라, 기를 불어넣어라, 솔선수범하라” 등의 말들은 결국 이같은 인간 중심의 경영철학과 맞닿아 있다.
그가 제시하는 두 번째 중요한 경영기법은 비전을 제시하라는 것이다. 그는 사장 부임 직후 3년 동안의 목표를 간략한 단어로 축약했다. 즉 혁신(1998)-도약(1999)-성공(2000)이라는 단계적 목표를 제시했고, 또다시 재도약(2001)-변혁(2002)-성취(2003)라는 2차 계획을 내세웠다. 구조조정기에 필요한 리더십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비전의 제시이며, 이때는 비전 자체가 기업의 운명을 결정하는 요소라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일본에서는 교세라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의 경영방식은 젊은 기업인들에게 하나의 표준이 된다. ‘이나모리숙’(塾)이란 것이 있어 그를 초빙해 그의 경영방식을 배우는 모임이 일본 전국에 걸쳐 있다.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사장도 이나모리숙의 일원이었다. 우리는 그동안 사표가 될 만한 경영인이 없었다. ‘실적’을 낸 서 사장은 자격이 있다. 그러나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맡겨진 일이다. 모델을 한국 기업발전의 전형으로 만들지, 불임의 일회성 사례로 만들지는 한국 기업인과 기업 풍토에 맡겨진 숙제다.” 대덕넷 대표 이석봉씨의 말이다.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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