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벌금 폭탄 안고 새해맞은 활동가들

등록 2007-12-28 00:00 수정 2020-05-03 04:25

활동가마다 몇백만원씩 벌금 받은 시민사회단체들, 힘겹게 법정싸움하며 모금활동 벌여

▣ 글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큰 상처 입어 더욱 하얀 살로 갓 피어나는 내일을 위해.”

서울 중구 동국대 학생식당에 민중가요 가 울려퍼진다. 12월20일 사회진보연대의 2007년 송년회. 이날 모임과 관련해 홈페이지 안내에는 ‘평택 투쟁과 이랜드·뉴코아 투쟁 벌금 모금에 동참해달라’고 쓰여 있었다. 모금이래봤자 ‘동지’들끼리 돕는 수준이다. 2006년부터 2007년까지 사회진보연대 활동가 6명에게 내려진 벌금은 1천여만원. ‘이랜드 투쟁’과 관련한 벌금까지 쏟아지기 시작하면 액수가 얼마나 커질지 알 수 없다.

액수 깎으려 진술할 땐 굴욕감 느껴

이날 피아노 반주를 한 활동가 이소형(30)씨는 2006년부터 두 가지 벌금에 쫓기고 있다. 그해 3월 평택에서 농수로를 파괴하는 포클레인 앞을 막아섰다고 내려진 것이 100만원, 몇 달 뒤 평택 미군기지 확장반대 평화대행진 도중 광화문 누각에서 현수막을 내렸다고 300만원이다. 특수공무집행 방해, 폭력, 공동주거 침입 등 죄명도 다양하다. ‘100만원짜리’는 정식 재판을 청구했으나 아직 소식이 없고 ‘300만원짜리’는 1심 결과 200만원으로 줄여져 다시 항소를 해둔 상태다. 그는 “상근비 25만원에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생활하는 활동가에게 벌금으로 위협하는 것은 형을 사는 것보다 가혹한 탄압이자 모욕”이라고 말했다.

벌금으로 모욕을 당하고 나면 법정에서의 굴욕이 기다린다. 벌금을 깎아야 하는 활동가들은 진술 과정에서 갈등한다. 이씨 역시 “무죄 주장이 아니라 ‘현존하는 법을 어긴 것은 인정한다. 앞으로는 법의 테두리에서 하겠다’ 식으로 반성하듯이 말할 때마다 스스로 용납이 안 된다”고 말했다. 2심 때는 “왜 여기서는 주한미군 문제 얘길 안 하냐”는 판사의 비아냥도 들었다. 손이 떨렸지만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섰다. 재판에 드는 시간과 비용도 활동가에겐 부담이다. 이씨는 ‘평택서울대책회의’에서 변호사 선임에 도움을 줬지만 1년 넘게 법정에 불려다니는 일은 혼자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다.

12월18일 충정로의 한 밥집에서는 인권운동사랑방의 송년회가 열렸다. 인권운동사랑방은 15년 역사의 대표적 인권단체다. 활동가 미류(30)씨가 손님맞이 노래를 불렀다. 오랜만에 활동가 12명이 한자리에 모이자 각자 활동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느라 시끌벅적했다. 어떤 활동을 했든 공통점은 ‘벌금’이었다. 이들 모두 2006~2007년 사이에 100만원 이상의 벌금이 쓰여 있는 ‘약식명령’ 고지를 받았다. 검찰이 구형한 벌금 합계액은 1970만원. 미류씨도 50만원, 200만원 두 개의 벌금형을 받았다. 평택 대추리의 대추분교가 무너진 다음날인 2006년 5월5일, 평택에 들렀다가 귀가하던 중에 잡혀가 ‘50만원짜리’를 맞았다. 단순히 둘러보고 가는 중이었다고 경찰에 설명했지만 공무집행 방해로 재판까지 갔다. 1년반이 지난 2007년 11월에야 무죄 판결이 났다. 하지만 검찰의 항소로 2008년에도 싸움은 계속된다. ‘200만원짜리’는 그보다 전인 2006년 4월 대추리에서 농수로를 막던 레미콘에 맞서다 받았다. 특수공무집행 방해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이었다. 진작에 정식 재판을 청구했지만 감감무소식이다.

인권운동사랑방은 기본적으로 활동가에게 내려진 벌금과 재판 과정에 드는 비용을 단체 차원에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허리가 꺾일 지경이다. 12명 중 2명만 간신히 변호사를 선임했다.” 미류씨의 말이다. 그는 “인권은 법률보다 상위 개념이니 불복종 운동도 감수하다 보면 처벌을 받을 순 있지만 100명이 하는 집회에서 50명에게 벌금을 물리는 상황은 참을 수 없다”고 했다.

변호사도 없이 1년간 공판만 여섯 번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양기환 사무처장은 2007년을 “답답했던 한 해”로 정리한다. 그는 2006년 6월27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2차 공청회에 토론자로 초청되어 참석했다. 그는 휴식 시간에 “정부가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는 말을 했고 한 기자가 잘 안 들리니 단상에 올라 마이크에 대고 말해달라고 해 그렇게 했다. 그 행동이 증거사진으로 제출됐고 검찰은 그를 2007년 5월이 되서야 300만원의 벌금형으로 공소장을 접수했다. 마치 토론 중에 마이크를 뺏어 말한 것처럼 공소장에 나왔고 그의 죄는 ‘특수공무집행 방해’가 됐다.

그는 6개월이 넘도록 이 재판에 매달렸다. 한창 반FTA 운동과 스크린쿼터 사수 운동을 하던 시기에도 법원과 현장 양쪽을 다 쫓아다녀야 했다. 돈이 없어 변호사를 구하기 어려워 증인 신청이나 자료 준비도 홀로 했다. 공판만 6번을 했다. 재판 때문에 행사나 모임의 날짜 잡기에도 신경을 써야 하니 “열받고 짜증나는” 일이란다. 그러나 그는 대법원까지 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공청회에서 점거도 폭력 행사도 아닌 토론자로서의 문제제기에 벌금을 물리는 선례를 남겨선 안 된다”며 “자본주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들에게 돈 내라고 하는 꼴”이라 말했다.

그에겐 아직 한 건이 더 남아 있다. 2006년 7월1일 영화배우 안성기씨와 함께 집시법 위반혐의로 경찰의 출두 요구를 받았던 사건이다. 하지만 이 일은 그 뒤로 연락이 없다. “기소유예인지 뭔지 모른 채 기다려야 하는데 이러다 검찰이 필요한 시점에 소환할 것 같아 스트레스가 심하다.” 이런 상태에서 스크린쿼터 사수조차 실패한 상황이니 앞으로의 활동 전망을 세우기가 어렵다. 그는 “영화계의 특성상 사람이나 돈이 조직돼 있지 않아 안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은데 외부에서까지 이런 벌금과 법정 싸움이 압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중언론 ‘참세상(newscham.net)’은 지난 12월18일 후원회원과 독자들에게 메일을 보내 ‘십시일반’을 부탁했다. 그들에겐 최소 1천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예정이다. 대선 때 진보네트워크의 토론 사이트와 연결해 의견을 올리고 볼 수 있게 하면서 실명확인 조치를 거부한 결과다.

“2007년 들어 벌금통한 탄압 심해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박주민 변호사는 “2007년 들어 시민단체에 벌금을 주는 식의 탄압이 유독 심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2007년 한 해 동안 시민단체 벌금 관련해서만 5개 사건의 변론을 맡았다. 모두 교통비 등 기본적인 실비만 받았다. “벌금이 시민단체를 잡는 데 유용한 방식이라고 공권력이 판단한 것 같은데 이에 사법부도 고루하고 보수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활동가의 벌금에 대해 어떤 방식의 지원도 체계적이진 않다. 일부에서 개별 시민사회단체가 움직일 게 아니라 함께 이 문제를 논의해보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을 뿐이다. 벌금 모금을 보는 시각도 천차만별이다. 벌금 자체에 저항해야지 모금으로 연명할 순 없다는 이들도 있다. 벌금 합계액이 2억원을 넘었던 장애인이동권연대가 ‘차라리 한꺼번에 노역장에 들어가자’는 기획까지 했다는 이야기 앞에 ‘희망’은 너무도 먼 얘기다. 실정법의 경계에 서서 싸워야 하는 시민단체들에 쏟아지는 ‘벌금 폭탄’. 새해 벽두, 사회의 소외되고 어두운 곳을 밝혀온 시민·인권 운동은 지난해의 짐을 고스란히 진 채 끙끙 앓고 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