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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땡땡(…) 선생님과 어린이 작가들

등록 2007-12-21 00:00 수정 2020-05-03 04:25

1년간 쓴 글 모아 자기 이름으로 책 내는 원명초교 6학년3반 아이들

▣ 글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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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동 원명초등학교 6학년3반 담임인 윤태호(46) 교사가 올 초 첫 수업 시간에 생활한복을 입고 등장했을 때 아이들의 생각은 “우와, 신기하다” “촌스럽다” “우리 먹을거리 살리기 운동하시는 분인가봐” “억압적일지 몰라” 등 제각각이었다. ‘신기한 선생님’은 첫날부터 ‘엉뚱한 숙제’를 냈다. 글을 쓰라는 것이었다. 어떤 주제건 마음대로 고르라고도 했다.

아이들이 제일 먼저 쓴 것은 시였다. 교과서에 나온 한 주제에 대해 저마다 의견을 시로 써본 것이다. 윤 교사는 아이들이 쓴 시를 읽고 각자 고쳐야 할 부분을 꼽아줬다. 그런 다음 학급 홈페이지에 올리라고 했다. 그 뒤로 ‘언로’가 트였다. 점점 많은 글이 올랐다. 댓글이 달리고 쪽지가 오갔다. 많은 사람 앞에 자기 글이 공개되는 것은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되는,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아이들이 ‘글을 쓰기’ 시작하자, 윤 교사는 원고지 100매의 소설을 쓰면 여름방학 때는 제주도에, 겨울방학 때는 스키캠프에 데려가주겠다고 했다. ‘선생님의 특별한 약속’은 하나 더 있었다. 글을 열심히 쓰면 연말에 책을 출판해주겠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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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책 , 교열·편집·그림도 소화

“우리 선생님은 여자애들만 좋아해요. 우리 몰래 비밀요원을 심었어요. 선생님이 제 말은 씹어요….” 12월12일 교실을 찾아가자 아이들이 다짜고짜 선생님 ‘흉’을 봤다. 왁자지껄하게 쏟아진 말들 중에는 “선생님 바람둥이(!)예요”도 있었다. 37명이 한꺼번에 떠드니, 귀가 멍멍했다. 공개적인 ‘성토’는 ‘사랑’의 다른 표현인 듯했다. 웃고만 서 있던 윤 교사가 한마디 덧붙였다. “(내 흉을 보더라도) 손들고 얘기해라.”

책을 내주겠다는 약속은 실현됐다. 지난 11월 첫 책이 나왔다. 테이프를 끊은 친구는 1년간 쓴 글을 제일 먼저 정리해 낸 김호중이다. 정식 출간이다. ‘글을 사랑하는 아이들 6학년3반의 이야기1’이라는 부제가 붙은 (솔과학 펴냄)은 전국 서점에 깔렸다. 표지 날개에는 지은이 사진도 박혔고 “지은이 김호중은 현재 서울 원명초등학교 6학년3반에 재학 중입니다”라는 소개말도 적혀 있다. 교열·교정, 제목 뽑기도 호중이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직접 했다. 표지 그림은 같은 반 친구 김하나은이 그렸다. 앞으로 10권의 책이 더 나올 예정이다. 두 번째 책의 지은이는 드라마 폐인이라 ‘김개토’로 불리는 김도영이다.

지난 1년간 글을 쓰면서 어떤 게 제일 좋았을까? 필명이 ‘거북맨’인 서민재가 손을 번쩍 들었다. “옛날에 쓴 글을 보면 웃음이 터져나와요. 어색하고 짧고 그래요. 그래서 처음에는 글을 안 냈어요. 지금도 완벽하진 않지만, 안 창피해요.” “전에는 대회에 나가서 상을 타야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썼어요. 하지만 지금은 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써요.”(유주연) “전에는 도덕적으로 썼어요. 교과서에 나오는 얘기 같은 거를 주로 썼어요. 하지만 지금은 한마디로 막 써요.”(반휘은) “시간이 없어서 긴 글은 잘 못 썼는데, 이제는 긴 글이 좋아요.”(김원희) “남에게 보여주는 글이 아니라 혼자 만족하는 게 더 재미있어요.”(강지원) 서민재와 장난치던 박준희가 소리쳤다. “호중이 글 보고 자극이 많이 됐어요. 그런데 호중이가 2학기 때는 SF 소설을 쓰면서 ‘타락’했어요.” 서민재가 끼어들었다. “근데요, 김호중이 박○○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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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면 마법 양탄자 탄 기분”

호중이는 자신의 책 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내가 글 쓰는 데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면, 방 안에만 들어앉아서 눈앞에 보이는 것 이외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답답한 아이가 되었을 것이다. …알라딘이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하늘을 날며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느꼈을 시원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은 철학과 신화 얘기로 시작한다. 이어 역사, 사회 문제, 기행문, 패러디, 시와 소설, 영문 수필까지 장르를 넘나든다. 제주도 여행기의 한 대목은 폭우가 쏟아졌다가 맑게 개기를 반복하는 ‘변덕스런’ 날씨를 이렇게 적고 있다. “정말 제주도 날씨는 어른과 같았다. 어른들은 막 야단친 다음, 아이가 뭔가를 잘하면 언제 야단쳤는지 갑자기 칭찬하고, 지나친 말들만 한다.” 노숙자가 돈을 안 준 여성을 지하철 선로로 밀친 사건을 뉴스에서 보고 쓴 글 ‘노숙자 사건’은 홈페이지에 올리자마자 아이들의 의견이 폭발적으로 쏟아졌다. 호중이는 “노숙자는 사회에 대한 불만과 증오, 원한을 여자에게 표현한 것”이라며 ‘질서 안에 사는 여자와 질서 밖에 내몰린 노숙자 가운데 누가 진정한 피해자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 주제를 놓고 아이들은 멀티미디어실에서 두 시간 넘도록 토론수업도 했다.

윤태호 교사는 올해 이 학교에 부임해 6학년3반 담임을 맡고 보니, 아이들이 발표력이 왕성하고 유독 독서량이 많아 글쓰기를 독려하기가 어렵지 않았다고 했다. 출판사를 ‘섭외’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뜻 맞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출판 비용 200만원은 학부모가 부담하되, 5천 권 이상 팔리면 인세를 받는 조건이었다. 대신 비매품으로 찍거나 많이 사서 뿌리지 않도록 했다. 아이들에게도 용돈을 모아 꼭 돈 주고 사보라고 권유했다. 값진 글이라는 생각에서다.

윤 교사의 글쓰기 지도 원칙은 ‘…’이다. 학기 초에만 훈련 차원에서 첨삭을 하고 방향을 잡아줬을 뿐 그 뒤로는 특별한 코멘트를 하지 않는다. ‘…’라는 댓글을 달아 읽었다는 흔적만 남긴다. 아이들이 “우리 선생님은 땡땡땡이에요, 쩜쩜쩜이에요”라고 한 말이 이해가 됐다. 지난 1년간 홈페이지에는 2400여 편의 글이 올랐고, 윤 교사는 빠짐없이 읽고 ‘…’을 달았다. 그는 “어른들의 기준으로 글쓰기를 지도하면 아이들은 금방 싫증을 느끼고 지속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쓰는 아이가 재미있게만 느끼면 되는 것이다. 잘 썼다 못 썼다 어른들의 시각이 가미되면 글이 막힐 때 오히려 당황하고 이어 글쓰기가 싫어질 수 있다.”

‘표현’ 원하는 아이 도울 땐 ‘살짝’

교직생활 21년째인 그의 경험에 따르면, 아이들은 몸으로든 음악으로든 그림으로든 글로든 자기를 표현하길 원하고 자기에게 맞는 방법이라면 계속하려고 한다. 글은 어찌 보면 제일 간단하면서도 많은 생각을 담을 수 있는 표현 수단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글을 쓰기 위해 머리를 ‘굴리다’ 보면 귀찮아질 수도 있다. 그 시기를 잘 버티면 다음부터는 ‘무한정’ 쓸 수 있다. 어른들이 할 일이란, 아이들이 글을 쓰다가 막힐 때 살짝 물꼬를 터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살짝’이 그리 간단치는 않다. 아이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거기에 맞는 적절한 조언을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윤 교사는 “1년을 매일 몸을 부대끼고 같이 있는데 파악이 안 될 리 없다”고 말했다. 윤 교사와 아이들에게 글쓰기는 ‘일상’으로 보였다.



“말 안 하던 아이와도 쪽지로 친구 됐죠”

책은 못 냈어도 글쓰기로 반 친구들과 친해져 좋다는 이은지 학생

저는 전교생이 참여하는 문집을 만들 때나 과제를 받았을 때만 글을 쓰는 편이었어요. 물론 선생님께서는 글쓰기를 강요하지는 않으셨어요. 대신 출판 약속을 하셨죠. 그래서 저의 6학년 목표는 글을 많이 써서 저만의 책을 펴내는 것이었어요.
처음에는 어렵게 생각하고 최대한 어른스럽게 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글쓰기에 재미를 붙이면서 그런 관념에서 벗어나게 됐어요. 다른 방향으로도 생각해보고 저만의 형식으로 글을 썼어요. 그러다 보니 한층 자유롭고 자연스러워질 수 있었어요.
글을 쓰고 학급 홈페이지에 올리지 않았다면 우리 반 아이들이 이 정도로 친해질 수는 없었을 거예요. 그동안에는 학급 홈페이지에 1년에 세 번 들어갈까 말까였어요. 올해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가고 한 번도 안 들어가본 날이 없어요.*^^* 친구들의 글을 마음껏 읽고, 의견을 나누고, 학교에서는 하지 못한 말들을 하고 그랬기 때문에 지금처럼 모두 가까워질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제가 한 남자아이와 학교에서는 거의 말을 안 해요. 한다 해도 장난으로 싸울 때 정도? 그렇지만 쪽지를 통해 굉장히 친해졌어요. 때마다 서로에 대한 자기 생각을 말할 정도로 말이에요. 우리 반 익현이의 ‘자뻑왕자’ 별명도 서로의 글에 댓글을 달며 토론을 하다가 얻어진 거예요.^^
이번에 저는 책을 출판하지는 않지만, 많이 속상하지는 않아요. 초등학교의 마지막 학년을 보내며 글쓰기와 한층 가까워졌기 때문이에요.
이은지 서울 원명초등학교 6학년3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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