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 처벌로 고통받는 예비군 훈련 거부자들에게 새로운 길이 열릴까
▣ 최정민 병역거부 연대회의 공동집행위원장
지난 12월6일 국가인권위는 양심에 따른 예비군 훈련 거부자를 반복적으로 처벌하는 현행 향토예비군설치법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위헌 여부를 따지고 있는 것과 관련해 “(향토예비군설치법은) 사회적 소수자의 인간의 존엄성과 양심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고, 특별예방 효과를 기대하기란 매우 어렵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양심의 자유와 국가 안보를 유지하기 위한 국방의 의무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대체복무 제도를 도입하여야 한다는 것을 재확인”하고, “양심적 병역거부로 인한 반복 처벌은… 국가가 반복적이고 계속적인 처벌을 통해 개인의 양심을 바꾸려는 행위로 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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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금·집유·실형의 악순환
충남에 사는 이아무개씨는 예비군 훈련 거부로 열여섯 차례 기소돼 모두 1135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1999년에 처음 예비군 훈련을 거부했을 때는 벌금 5만원의 약식명령 정도였던 것이, 이듬해인 2000년에는 벌금 30만원으로 늘었다. 2001년에는 벌금 200만원과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2002년에는 270만원으로 형벌이 늘었다. 2003년에는 역시 같은 사유로 벌금 500만원이, 2004년에는 300만원이 선고됐다. 결국 이씨는 계속되는 기소와 재판 참석 등으로 인해 여섯 차례 직장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이씨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현재 예비군 거부자는 연평균 채 20명도 되지 않지만, 이들에게 가해지는 형벌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현역 입영을 거부하고 실형을 살고 나오면 제2국민역에 편입되는 병역거부자들과 달리, 예비군 거부자들은 소집 훈련 때마다 처벌을 받게 된다. 몇 차례 벌금형이 누적되면 최초 몇십만원에서 시작된 벌금형이 몇백만원에 이르다가, 결국 상습범으로 취급돼 집행유예를 선고받는다. 집행유예 중 다시 소집 훈련을 거부하면 결국 실형을 선고받는데, 이때에는 유예된 형에 대해서까지 복역을 해야 한다.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경우에도 1년6개월의 징역을 선고받아 병역 의무가 면제되지 않는 한, 복역 뒤에도 다시 예비군 훈련에 소집된다. 이를 거부하면 또다시 처벌되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인권위는 2005년 12월 “양심적 병역거부는 양심의 자유 조항에 의해 보호돼야 할 마땅한 권리이며, 국가는 대체복무를 도입할 의무가 있다”고 권고했다. 이번 의견 표명은 그 권고의 연장선상에 있다. 예비군 거부 문제 역시 현역병 입영 거부와 같은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당연한 귀결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예비군 거부에 대한 이번 인권위의 결정이 큰 의미를 갖는 것은 지난 9월 국방부가 병역거부자에 대한 사회복무제 도입을 발표하면서 예비군 거부자들은 고려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당시 제외 이유로 이미 군복무를 한 마당에 예비군을 거부하는 것은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점을 꼽았다. 모두 합쳐 148시간에 불과한 예비군 훈련을 수십 건의 전과와 수천만원의 벌금으로 맞바꾸는 것까지 감수하겠다는 사람들의 신념에서 진정성을 찾지 못하겠다니…, 어쩌라고?
혹시, 올해가 가기 전에…
꿈이라도 잘 꾼 건지, 올해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사회복무제 도입이나 예비군 거부자들에 대한 인권위 권고 등이 속속 발표됐다. 아직까지 사회복무제가 입법화된 것도, 헌법재판소가 전향적 판결을 내린 것도 아니다. 그래도 이런 생각만으로도 뱃속 저 아래쪽에서부터 따뜻한 무언가가 쭉 올라오는 것이 느껴진다. 아직 남아 있는 올해의 끝에 또 어떤 중대 발표가 남아 있을지 기대해도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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