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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타이어 노동자 의문의 죽음

등록 2007-11-16 00:00 수정 2020-05-03 04:25

1년 반 사이 15명 사망… 독성 물질 지침 없이 작업, 작업장 통제로 스트레스 커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2001년 이후 사망자 총 22명, 2006년 5월 이후 1년6개월 동안 죽은 사람만 무려 15명. 어느 공장 노동자들이 작업 도중 혹은 집에서 출근 준비를 하던 중에 갑자기 쓰러져 죽어나가고 있다. 심근경색·심장질환·뇌출혈 등 돌연사가 대부분이고, 한 사람은 뇌출혈로 입원해 있다. 짧은 기간에 심장질환 등으로 15명이나 사망한, 미스터리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곳은 한국타이어 대전공장과 금산공장이다. 심근경색·기계압사·심장질환·자살·사고사·폐암·급성뇌출혈 등 사망 원인은 다양하다. 그러나 주목할 대목은 15명 중 절반이 심근경색 등 뇌심혈관 질환으로 사망했다는 점이다. 사망에 이르게 된 정확한 요인은 아직 의혹에 싸여 있다.

유가족대책위원회 구성하고서야 알려져

2001년 이후 숨진 22명 가운데 산업재해 인정을 받은 사람은 2003년 5월 급성골수성 백혈병로 숨진 유아무개(근속 20년)씨와 올해 4월 심근경색으로 숨진 박아무개(근속 12년)씨 등 2명뿐이다. 석연찮은 사망 원인과 관련해 유가족들은 유독성이 강한 물질을 취급하는 타이어 공장의 작업환경을 지목하면서 정확한 사인 규명과 산업재해 인정을 요구하고 있다. 뇌심혈관계 관련 사망자가 많다는 건 곧 ‘유기용제 중독’에 의한 죽음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도대체 왜 한 사업장에서 1년 반 사이에 노동자 15명이 의문의 죽음을 당한 것일까? 이상한 건 지난 8월 유족들이 유가족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사인 규명을 요구하기 전까지는 공장 안팎에서 이것이 이슈화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2001년 이후 동료 노동자들이 잇따라 죽고, 2006년 이후 사망자가 급증했음에도 사태의 심각성이 드러나지 않은 채 한 명씩 한 명씩 계속 죽어나간 것이다. 현장노동자 송의용(근속 13년)씨는 “회사와 한통속인 (어용)노동조합도 침묵을 지켰고, 간혹 입으로 입으로 전해지면서 사망 사실이 조금씩 알려졌을 뿐”이라며 “회사 쪽의 통제와 감시가 심해 소문이 퍼지지 않고, 알음알음으로만 동료들의 죽음이 알려졌다”고 말했다. 여태껏 수많은 노동자들이 죽어나갔으나 공장 안에 ‘근조’ 현수막 한 장 붙은 적이 없었다.

노동자들과 유가족들은 한국타이어 작업현장에서 사용되는 화학물질 ‘솔벤트’가 심장질환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벤젠이 함유된) 솔벤트는 타이어 접착에 필요한 유기용제(세척제)인데, 쉽게 증발해 호흡기를 통해 흡수되며 뇌와 신경에 해를 끼치는 유해물질로 알려져 있다. 물론 15명의 사망과 솔벤트와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아직 확인된 바 없다.

그러나 여러 현장 노동자들은 오랫동안 두통과 어지러움을 호소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송씨는 “얼굴과 옷에 솔벤트가 튀어 따끔거리면 그저 손으로 닦아내고 말았다. 솔벤트가 인체에 유해한 물질인지 아닌지도 잘 몰랐다”며 “그저 소주를 마신 듯 어질하고, 30∼40분 바깥에 나갔다 들어오면 금방 회복되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솔벤트의 유해성에 대해 별다른 안전교육을 받지도 않았고, 유해 여부를 전혀 몰랐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계속 사용해왔다는 것이다.

송씨는 “회사 쪽이 2∼3년 전에야 작업현장에 솔벤트의 위험성 표지를 부착했는데, 그것도 잘 안 보이는 보관창고 등에만 표시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대전공장 노동자들은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솔벤트를 그저 ‘한솔’(한국타이어에서 쓰는 솔벤트라는 뜻)이라고 불러왔다고 한다. 솔벤트 또는 벤젠이라는 말은 최근에야 듣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타이어 박병관 홍보팀장은 “솔벤트 제품은 외부에서 사들여와 사용하는데 이미 6∼7년 전에 인체에 무해한 신제품(벤젠이 들어 있지 않은 제품)이 개발돼 이것으로 교체한 바 있다”며 “‘한솔’이 솔벤트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말하는 건 악의적인 주장일 뿐”이라고 말했다. 회사 쪽은 또 “2006년 이후 갑자기 사망자가 급증한 이유가 뭔지 우리도 궁금하고, 우연의 일치치고는 황당하다”고 말했다.

사망자의 평균 근속연수 13.9년

이번 사태와 관련해 권호안 노동부 산업보건환경팀장은 “회사 쪽은 유해성을 책임지고 알려줘야 하고 작업자들은 보호구를 써야 하는데, 불편해 안 쓰고 일하기도 한 것으로 안다”며 “역학조사를 통해 유해물질 측면과 노동강도 측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사망 원인을 밝혀낼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회사 쪽에서 유해성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들었다면 아무리 불편해도 보호구를 사용하지 않고 작업할 노동자가 있을까? 한국타이어 공장 노동자들의 사망사건을 추적해온 민주노동당 민병기 정책국장(대전시당)은 “노동자들이 유해물질인지 모른 채 옷에 묻으면 잘 지워지므로 기름때 묻은 것처럼 그냥 손으로 닦아내고, 솔벤트 용기 뚜껑을 열어놓은 채 마시면서 작업하기도 했다”며 “아침 조회 시간에 작업반장들이 ‘조심하라’고 한마디 던지는 정도였을 뿐이고, 현장 노동자들도 냄새가 좀 나쁜 물질이라는 정도로만 생각해왔다”고 말했다.

회사 쪽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솔벤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해명하고 있다. 박병관 팀장은 “사망자 대부분이 솔벤트와 거의 관련없는 일을 하던 사람들이다. 평소에 심장이 안 좋은 사람도 있었다”며 “솔벤트가 직접적인 사망 원인라면 30년 넘은 근속자도 많고, 전체 공장 노동자가 5천 명이 넘는데 다른 노동자들은 왜 별 이상이 없는가?”라고 반문했다. 박 팀장은 또 “요즘 한국인 사망 원인 중 심혈관계 질환이 많고, 근무환경보다는 유전적 요인이나 개인의 술·담배 등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잇따른 죽음이 사회적 이슈가 되자 회사 쪽이 최근 들어 갑자기 솔벤트라는 명칭을 써가면서 유해성을 언급하고, 유기용제를 적게 쓰는 작업장에서는 유기용제 사용을 아예 중단할 것을 지시했다”며 “기존의 유기용제 제품을 폐기하도록 지시한 공문도 내려왔다”고 주장한다.

사실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에서는 2003년 특수건강진단 때 이미 5명이 ‘벤젠 취급주의 요관찰자’로 판정받은 바 있다. 이 중 4명은 평균 근속연수가 17.8년이었다. 당시 단병호 의원(민주노동당)이 한국타이어에 대한 특별 근로감독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요주의 관찰자 5명이 누구인지, 어떤 조처가 취해졌는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올 9월에도 대전지방노동청은 애초 대전공장에 대한 특별 점검에 들어갈 방침이었으나 회사 쪽의 요청을 받아들여 노사의 자율 진단에 맡기고 말았다.

그런데 2001년부터 한 해 한두 명씩 사망자가 발생하다가 왜 2006년 이후 갑자기 사망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일까? 과연 2006년 들어 작업장에, 회사 쪽과 노동자들도 잘 모르는,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모종의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직업병 전문가들은 작업현장에 인체에 유해한 복잡한 요인들이 오랫동안 작용하다가 2006년 이후 어떤 ‘임계치’에 도달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2006년 이후 사망자 15명의 평균 근속연수는 13.9년이고, 대전공장의 10년 이상 장기 근속자는 약 65%에 이른다.

화장실 출입, 휴식 등 체크

유가족과 노동자들은 유기용제 외에 과도한 업무량에 의한 스트레스도 사망 원인의 하나로 꼽고 있다. 대전공장은 외환위기 직후 종전 3반3교대 근무 형태를 4반3교대로 바꿨다. 4반3교대제는 4개 조가 5일간 근무하는 형태로, 이에 따라 토요일·일요일·공휴일 개념이 사라졌다. 대전공장은 또 타이어 성형의 경우 작업 인원을 2명에서 1명으로 바꾸기도 했다. 송의용씨는 “목표 달성을 위해 잔업과 공출(휴무일 출근)이 지속적으로 이뤄졌고, 근무가 끝난 뒤에도 설비청소·도색·수리작업 등을 사실상 강요받았다”고 말했다. 공장에 TPM(전사적 생산보전)이란 제도가 도입돼 초과근무 수당 없이 설비청소를 떠맡아야 했고, 퇴근 뒤에도 각종 개선·제안 포스터, 표어 제작 등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에는 데이터 수집·분석 시스템(DAS)이 설치돼 있는데, 각 작업조의 생산량이 실시간 체크되는 시스템이다. 작업자는 일을 시작할 때, 공정 진행 때, 화장실에 갈 때, 휴식 시간을 가질 때, 식사하러 갈 때마다 기계 앞에 부착된 이 터치 패널에 자신의 움직임을 입력해야 한다. 회사 쪽은 ‘생산관리’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노동자들은 작업장 통제 시스템이라고 주장한다. 송씨는 “작업장의 높은 긴장도가 유해물질과 상호작용을 일으켜 노동자들이 사망에 이른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지난 10월에야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에 대한 특별 역학조사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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