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세종문화회관 장애인석의 실태… 2시간30분 20통 통화 만에 예약, 아무런 설치 없는 통로가 ‘좌석’이라니</font>
▣ 김현우 인턴기자(한국외대 신문방송학4) 777hyunwoo@hanmail.net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휠체어석, 이거 뭐하러 만든 겁니까?”
차윤미(29)씨와 남자친구 정광훈(25)씨는 공연을 보기로 했다. 밖으로 나가 공연을 보는 것은 이 커플에게는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정광훈(25)씨는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은 장애인이다. 2002년 8월 사고로 5·6번 경추를 다쳤다. 그 뒤 정씨는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있다. 그래서 차씨 커플의 데이트는 집 안에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비디오를 보는 게 고작이었다.
바깥 데이트, 미션 임파서블
오랜만의 바깥 데이트, 공연장을 이리저리 검색하다가 세종문화회관이 눈에 띄었다. 세종문화회관에는 휠체어석은 물론 장애인을 돕기 위한 ‘세종 도우미’까지 마련돼 있었다. 차씨는 “솔직히 어떤 공연을 보는가보다 남자친구를 위한 휠체어석이 있느냐가 더 중요했다”고 말했다. “정말 이 정도일 줄 몰랐어요.” 공연을 보기로 결정을 한 순간 차씨는 장애인들이 놓인 현실에 ‘아프게’ 부딪혔다.
외출하기로 한 8월10일의 공연 시간은 저녁 8시였다. 차씨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상영 중이던 장애인석을 예매하기 위해 오후 내내 매달려야 했다. 세종문화회관 홈페이지에는 “장애인석은 전화나 방문 접수로만 예약이 가능하다”고 나와 있었다. 세종문화회관에 전화를 걸었다. “기획사 쪽에 문의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기획사 쪽에 전화를 걸었다. 그들은 티켓 판매를 대행하고 있는 티켓링크로 전화를 돌렸다. 티켓링크 쪽에선 “장애인석이 마감됐다”고 말했다. 인터파크에서는 “우리 쪽에 장애인석이 배정됐는지 확인이 안 된다”며 “기획사 쪽에 물어보라”고 했다. 다시 기획사 쪽으로 전화를 걸어야 했다. 기획사 쪽에서는 “티켓링크에서는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다시 티켓링크로 전화를 걸었다. 아까와 달리 “세종문화회관에서 장애인석 예매 프로그램을 막아놨다”고 했다. 그러니까 ‘예매 마감’으로 떴던 것이다. 다시 세종문화회관으로 전화를 걸었다. 세종문화회관은 “잘 모르겠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2시간30분, 총 20통화 끝에 결론은 예매 불가였다. 절망할 즈음 기획사 쪽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기획사는 사과를 하고 표를 구해줬다. 우여곡절 끝에 표를 얻었지만 원하던 날짜는 아니었다. 다음날인 8월11일 저녁 7시였다.
공연 당일 기대를 안고 도착한 공연장, 그곳에는 더 황당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안내된 휠체어석은 초라했다. 관람석의 제일 뒷자리 공간이 다였다. 문에 가까이 있어 사람들이 오가는 데 그냥 덩그라니 놓여진 꼴이었다. 휠체어석이라고 명명된 ‘통로’에서 휠체어석임을 알 수 있는 것은 나무 대가 다였다. 손을 지지할 곳도 없고 발을 편안하게 놓을 수도 없었다. 보호자석은 휠체어석 앞 줄 좌석이 주어졌다. 그리고 “마감됐다”던 장애인석에 앉아 있는 것은 정씨 혼자뿐이었다. 양옆에 아무도 없이 통로에 혼자 버려진 모양이 되었다. 이 휠체어석은 R석으로 분류되는 9만원짜리 좌석이다. 정씨는 50%의 장애인 할인을 적용받아 4만5천원에 구입했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2004년 3월에 리모델링을 했다. 이때 휠체어석이 1층에 10석, 2층에 10석이 마련되었다. 세종문화회관 관계자는 휠체어석의 배치에 대해서는 “통로 가까이에 마련한 것은 화재 등의 사고 발생 시에 장애인들이 먼저 대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현행 법으로는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시행령’에서는 휠체어석 설치 환경에 대한 정확한 규정이 없다. “연극과 영화 등의 공연장에는 전체 좌석 수의 1%까지 휠체어석을 만들어야 한다”고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지만, 설치 환경을 규정한 20조는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관람석 또는 열람석은 출입구 및 피난통로에서 접근하기 쉬운 위치에 설치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세종문화회관 휠체어석처럼 ‘적법’하지만 불편한 좌석이 생산되는 것이다. 김도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 간사는 “각 공연장에는 관련 규정으로 휠체어석을 설치하게 되어 있지만 대부분 시늉만 한다. 실질적인 편익까지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배융호 장애인편의시설시민촉진연대 사무국장은 “휠체어석은 가능한 한 무대에 가까운 쪽에 배치하며 시야가 가려지는 좌석이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동반자석까지 고려해야
다른 공연장들의 사정은 어떨까. 은 호암아트홀, LG아트센터 등 서울 시내 주요 공연장 8곳의 휠체어석 설치 실태를 확인해봤다. 대부분의 공연장에서 휠체어석은 관람객석 맨 뒤쪽 통로에 있었다. 코엑스 아트홀에는 아예 없었다. 충무아트홀·LG아트센터·동숭아트센터 등 7곳은 세종문화회관처럼 관람석 맨 뒷줄 통로였다. 장애인석이 왜 없느냐는 질문에 코엑스 아트홀 관계자는 “모르겠다”는 대답만 했다.
휠체어석 ‘예매 불가’ 사태에 대해 세종문화회관의 티켓매니저는 “이번 7월에 세종문화회관 티켓 대행업체가 티켓링크에서 인터파크로 바뀌면서 장애인석에 대한 티켓 예매가 누락된 것 같다”고 해명했다. 세종문화회관 쪽에서는 “휠체어석을 예매했더라도 자리를 옮겨달라고 요청하면 보호자분의 옆자리로 옮겨드린다”는 ‘친절한’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나 정씨는 “앞으로 장애인석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공연 당일까지 장애인석의 누락이 수정되지 않은 것은 납득할 수 없습니다. 장애인들에 대한 배려가 없는 거죠.”
이희정 장애인편의시설시민촉진연대 간사는 “공연장에 장애인석을 설치할 때는 휠체어석과 동반자석을 함께 설치하는 등 장애인의 처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은 각 공연장이 일반 관람석의 일부를 뜯어내고, ‘돈 안 되고 귀찮은’ 휠체어석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세종문화회관은 그럴 만한 성의가 있을까. 그때까지 얼마나 많은 정씨와 차씨가 분노해야 할까.
<table width="480" cellspacing="0" cellpadding="0" border="0"><tr><td colspan="5"></td></tr><tr><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bgcolor="F6f6f6" width="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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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을 VIP로 모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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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모든 공연장이 장애인 편의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수원에 있는 경기도 문화의전당은 2003년 대공연장 1층의 VIP석 22개를 허무는 큰 결단을 내렸다. 복도 끝에 처박힌 장애인석을 무대 앞으로 옮겨오기 위해서였다. 22개의 VIP석을 허물어 만든 장애인석은 모두 6석. 최여정 경기도 문화의전당 홍보팀 사원은 “문화의전당은 이익을 추구하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장애인들을 배려하는 공간을 만드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경기도 문화의전당의 작은 실험은 결국 장애인들의 공연·스포츠 관람 편의를 위한 ‘경기도 공공시설 내 최적의 장애인 관람석 지정 설치운영 조례안’ 제정을 이끌어냈다. 이 안에 따르면 공연장·집회장·관람장·운동시설 등 경기도에서 운영하는 각종 시설 내 장애인석은 설치 기준의 50%를 ‘최적의 관람석’(로열석)에 설치해야 하고, 장애인이 로열석에서 출입구까지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리프트 등 편의시설을 만들어야 한다.
파주시 또한 2005년에 비슷한 조례를 만들어 시행 중이다. 법정 장애인 관람석의 50% 이상을 특석을 포함한 최적의 관람석에 설치하고 옆 좌석 등 가까운 곳에 보호자석을 두기로 한 것이다. 2006년 이 조례에 따라 만들어진 시민회관 소공연장은 정중앙에 휠체어석이 마련돼 있다. 파주시는 기존 시설에서 최적 관람석에 휠체어석을 설치할 경우 공사 비용 일부를 보조해주는 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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