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에 참가한 강정마을 주민 93.8% 해군기지 유치에 반대
▣ 서귀포=김영헌 기자 cogito99@hanmail.net
40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제주도 서귀포시 대천동 강정마을. 하지만 불과 4개월 만에 강정마을 공동체가 붕괴 위기를 맞고 있다. 힘든 농사일과 거친 물질을 이웃과 함께 헤쳐가며 평화롭게 살아온 강정마을 주민들이 해군기지 유치 찬반을 놓고 서로 등을 돌린 것이다. 부모와 형제, 친척과 이웃이 내 편, 네 편으로 갈라서 눈길조차 마주치지 않는 삭막한 마을로 변해버렸다. 그러나 강정마을을 해군기지 후보지로 선정한 정부와 제주도는 주민들의 갈등에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고 있다. 국익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오로지 해군기지 건설 사업 추진에만 매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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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의 방해공작에도 실질 투표율 70%
지난 8월20일 강정마을 주민들은 해군기지 문제와 주민 갈등을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여러 차례의 진통 끝에 마을 자체적으로 해군기지 유치 찬반 주민투표를 실시했다. 앞서 6월19일 해군기지 유치 찬반 주민투표가 투표함 탈취 등 해군기지 유치 찬성 쪽 주민들의 방해로 무산된 지 2개월 만의 일이다. 그 짧은 두 달여 동안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해군기지 유치를 주도한 윤태정 강정마을 회장은 자신의 해임 문제를 ‘마을회장 해임결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등 법적 공방까지 끌고 가면서 버텼지만, 결국 8월10일 마을 임시총회에서 주민들의 압도적인 동의로 해임됐다. 이어 신임 마을회장에는 강정해군기지 유치 반대대책위의 강동균 공동위원장이 선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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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전 6시부터 강정의례회관에서 시작된 주민투표는 주민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서 진행됐다. 19살 대학생부터 80대 노인까지 투표에 나서면서 국회의원 선거를 포함해 기존의 어떤 선거보다 높은 참여율이 일찌감치 점쳐졌다. 해군 당국은 8월15일 강정마을 주민들을 상대로 무차별적으로 전화를 걸어 해군기지 유치 찬반 주민투표에 참석하지 말라는 등 조직적인 방해공작을 펼친 바 있다. 해군기지 유치 찬성 쪽 주민들로 구성된 강정해군기지 사업추진위원회가 기지 유치 동의 서명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그럼에도 주민 압도적 다수가 이날 투표에 참여한 게다. 다만 해군기지 찬성 쪽 주민들은 이날 주민투표가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투표에 불참하는 등 주민 간의 갈등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오후 8시께 시작된 개표 결과는 압도적이었다. 강정마을에 주소지를 둔 유권자 1400여 명 가운데, 대학생과 직장인 등 외지에 사는 사람을 빼고 실제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인원은 1천명 남짓이다. 이 가운데 이날 투표에 참석한 주민은 모두 725명에 이른다. 굳이 따진다면 사실상 70%가 넘는 투표율을 보인 셈인데, “이렇게 높은 주민투표 참여율은 마을이 생긴 이래 처음”이라고 주민들은 입을 모았다. 이윽고 신임 마을회장이 개표 결과를 발표했다. 기지 유치에 찬성한 36명과 무효 9명 등을 제외한 680명이 해군기지 유치에 반대표를 던졌다. 강정의례회관을 가득 메운 주민들은 환호성과 함께 ‘해군기지 결사반대’를 외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해군은 “주민 695명이 유치 동의” 주장
이날 주민투표 결과에 따라 지난 4월26일 윤태정 전 마을회장의 주도로 주민 80여 명만이 참석해 열린 마을 임시총회에서 가결된 해군기지 유치는 사실상 의미가 없어졌다. 제주도가 강정마을을 해군기지 후보지로 결정한 근거로 제시하던 “여론조사 결과 찬성률이 높다”던 주장도 설득력을 잃게 됐다. 또 “주민 동의에 따라 해군기지를 추진하고 있다”고 강조해온 해군 쪽에서도 기지 건설사업 추진을 강행하기 어렵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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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해군 당국은 투표 다음날부터 “주민투표 결과는 하나의 주민 의견일 뿐”이라며, 일방적인 해군기지 건설사업을 지속할 뜻을 분명히 했다. 강정해군기지 사업추진위도 “해군기지 유치 동의서에 주민 695명의 서명을 받았다”고 적극 홍보하고 나섰다. 갈등은 여전히 사그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해군기지 결사반대.’ 강정마을 집집마다 내걸린 붉은색과 노란색 깃발은 언제쯤 내려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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