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 연세대-와세다대 강원도 양구군 공동농활… 남북분단·한-일 관계·농촌생활 느끼며 생각하며</font>
▣ 양구=글·사진 서재철 녹색연합 녹색사회국장
유난히 긴 장마가 이어지는 여름. 동부 산악 비무장지대 아래 한 마을에서 뜻깊은 농촌봉사활동이 있었다. 8월4일부터 열흘 동안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일대에서 한국의 연세대, 일본의 와세다대 학생들이 공동으로 농촌활동을 벌인 것이다.
1963년의 대인지뢰, 1998년의 대인지뢰
특히 농활의 대상지가 양구 해안면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민통선에 포함된 마을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해안면은 ‘민간인통제선 북방지역’으로 분단의 상처와 아픔이 가장 짙게 깔린 상징적인 곳이다. 이곳에서는 농지 개간과 농업활동 과정에서 많은 대인지뢰 사고가 터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 한-일 공동 농촌봉사활동 현장을 해안면으로 잡은 이유도 “대인지뢰 피해자 마을에서 아픔과 고통을 느끼고 인식하자”는 것이었다.
이번 농활의 기본 일정은 여느 농활과 비슷하다. 아침 5시30분에 일어나 7시까지 아침 식사를 끝낸다. 그때부터 오후 6시까지는 농민들의 일손을 돕기 위해 논밭에 투입된다. 무밭·고추밭·청경채밭 등에서 잡초를 뽑고 비료와 농약을 뿌린다. 토마토밭에서는 열매를 수확하고, 취나물밭에서는 잡풀을 뽑았다. 두 나라 학생들 모두 도시에서 나고 자랐거나, 시골 출신이라도 농사일을 직접 해보지는 않았기 때문에 크고 작은 실수가 끊이지 않았다. 와세다대 학생들과 같이 온 아리에 유유리(도쿄외대 한국어과2)는 “한반도 분단의 현실을 구체적인 지역의 모습 속에서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양구 해안면을 보니까 제 고향인 오키나와의 현대사가 떠올랐습니다. 몸으로 마음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됐죠.”
학생들은 마을 노인들의 고단한 인생사 앞에 말을 잇지 못했다. 마을 주민 백춘옥(66)씨가 사고를 당한 것은 9년 전이다. 1998년 8월12일 해안면 월산리 자락 밭에서 일을 마치고 개울가에서 손을 씻다가 지뢰를 밟았다. 발목이 날아갔다. 사고가 터지자 부리나케 달려온 군인들이 그가 밟은 지뢰의 이름이 ‘M14-대인지뢰’라고 알려줬다. 사고 당시 놀람과 충격은 그의 삶을 바꿔버렸다. 농사를 짓기 힘든 것은 물론 시도 때도 없이 통증이 엄습해온다. 대한민국 정부는 백씨에게 아무런 보상도 해주지 않았다.
생활의 불편함, 사흘이면 잊지요
박춘영(82)씨의 발목을 날려버린 것도 M14-대인지뢰였다. 1963년 봄이었다. 신작로 주변 밭 근처에서 고사리를 캐다가 잠깐 ‘쿵’ 하는 폭음과 함께 모든 게 끝났다. 군 당국에서는 치료는 고사하고 “조용히 입 다물라”는 언질만 주었다. 박씨는 “그런 시절이었다”고 말했다. 박씨를 분노하게 하는 것은 시간이 지나 세상이 좋아졌는데도 수십 년 동안 이어진 그의 피해를 외면하는 국가권력이다. 그는 “너무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세월이었다”며 울었다. 학생들은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라”는 조재국 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 집행위원장(연세대 교수)의 말에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일이 끝난 뒤 이어진 주제 토론은 밤 12시를 넘기기 일쑤였다. 80년대 한국 대학사회에 번졌던 ‘민중 속으로 들어가는 농촌활동’ 이상으로 벅찬 열의였다. 토론의 주제는 간단치 않은 내용들이었다. 8·15에 대한 인식, 북한과의 관계, 동북아 평화와 주변 국가의 역할 등 두 나라 사이의 미묘한 현실에 대해 말문을 열어갔다. 유하나(연세대 교육학과 2)씨는 “처음에는 서먹서먹함으로 표현되는 무언가가 있었다. 과거의 아픈 역사가 남겨준 흔적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같이 생활하면서 마음을 열다 보니 함께 나누고 꾸려야 할 것에 대한 공감을 얻게 됐죠.”
농활에 참가한 사람은 한-일 두 나라 학생 각각 20명, 거기에 인솔자까지 합쳐 40명이 넘은 대부대였다. 그런데 숙박 장소였던 해안면 오유리 마을회관은 모두를 수용하기에 비좁은 공간이었다. 1층에는 여학생들이, 2층에는 남학생들이 묵었다. 변기가 딸린 작은 샤워실 앞에 긴 줄이 아침, 저녁으로 이어졌다. 농사일 돕기에 나서는 낮 시간을 빼고는 아침과 저녁 식사를 모두 직접 만들어 먹었다. 장마로 습기가 찬 눅눅한 공간에서 담요 한 장으로 살을 맞대다 보면, 싫든 좋든 서로의 구체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밖에 없다. 일본 화장실의 넉넉함과 청결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그런 문화에서 자라온 젊은이들에게 20명이 하나의 변기에서 복닥거리는 현실은 당혹스러움 그 자체였을 것이다.
일본 학생들을 인솔해온 시네쓰구 고미네 와세다대 자원봉사센터 겸임강사는 “생활의 몇 가지 불편함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흘이면 익숙해진다”고 말했다.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활동을 할 때는 물이 부족했거든요. 약간의 불편함을 넘어 학생들끼리의 벽을 허물고 서로 다가선 것이 큰 수확이죠.” 그렇지만 날씨가 좋지 않아 좀더 치열하게 농민들과 대인지뢰 피해자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일본 학생들은 한국에 올 때 세 가지 과제를 선정했다. 첫째 대인지뢰 문제와 피해자들의 고통을 인식하고, 둘째 남북 분단의 현실을 느끼며, 셋째 농촌의 현실을 깨닫고 이해하는 것이었다. “첫해라서 부족함은 많았지만, 그 과제들에 어느 정도 접근했다고 생각합니다. 한-일 간에 여전히 풀기 어려운 숙제가 많지만, 이렇게 서로 이해를 키워나가야죠.” 시네쓰구 겸임강사가 말했다.
대인지뢰 문제는 한국 학생들에게도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다. 이번 농활에서 한국 쪽 학생팀장을 맡은 이세연(연세대 기계공학과 4)씨는 “대인지뢰 피해자에 대한 구체적 인식은 물론 일본 학생들과 땀 흘리며 어울린 것은 서로를 이해하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평화와 공존의 꿈
한국과 일본은 가까운 나라지만 서로의 실체를 파고들면 의외로 이해와 인식의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두 나라의 관계가 과거에 견줘 가깝고 교류도 많아졌지만, 서로의 이해에는 여전히 공백이 있다. 한-일 젊은 세대가 만나는 것은 양국 관계에서 소중한 자산이자 미래 그 자체다. 지금의 동북아는 큰 모습에서 어지럽다. 일본은 평화헌법에 대한 논란 속에 새로운 군사대국을 꿈꾸고 있고 중국과 한국도 군비경쟁 대열에 나섰다. 그래서 아주 구체적으로 평화와 공존을 꿈꾸는 한국과 일본의 청년들이 흘린 땀방울은 소중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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