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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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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남희] 이히 리베 디히, 송남희체

등록 2007-08-17 00:00 수정 2020-05-03 04:25

▣ 베를린=김재희 서울예대 교양학부 겸임교수

독일에서 가장 훌륭한 의료 및 요양 시설을 갖춘 곳으로 유명한 산골마을 바드베를레부르크. 하지만 그곳은 귀곡산장을 찾아가는 험한 산길이라 지도로 보는 것보다 2배의 시간을 더 들여야 도착한다. 한국에서 22년을 살다 독일로 건너가 그 작은 마을에서 40년 세월을 살며 어릴 적 집안 어른들에게 배운 붓글씨며 동양화를 기초로 동서양 퓨전 작품을 해온 송남희(62)씨.

독일인을 대상으로 먹을 갈아 붓 다루는 법을 통한 명상 수업을 하다, 몇 자씩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한 인연으로, 아예 외국인을 위한 한글 서예 교본까지 출간했다. 이름하여 ‘송남희체’가 탄생했다. 이 작업을 하는 동안 다 잊어버렸던 한국말이 유창해지는 게 마냥 신기했다고. 지난가을 베를린 예술가협회의 제안을 받고 망설임 끝에 촌구석을 벗어나 올봄 베를린으로 이사했다.

‘마을의 예술가’를 떠나보낸 산골 마을 주민들은 이별을 아쉬워하며 그녀를 위한 전시회를 연다. 8월16일부터 한 달 동안 유서 깊은 고성에서 열리는 송남희 고별 전시회. 40년 세월 동안 “내가 전생에 무슨 업을 졌기에 이 산골에 갇혀 사나, 고향에도 못 가고”라고 한탄한 일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곳이었기에 남편을 일찍 여읜 외국인 과부가 남매를 키우며 넘치는 사랑을 받았으리라 여긴다. 그녀의 집을 사람들은 ‘예술가의 집’이라 부르며 대접해줬고, 실제 덴마크 공주의 옆집인지라 공주의 성에 딸린 마당을 함게 쓰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송씨의 딸은 파일럿으로 한국을 자주 오가는 남편과 마을에 남아 남매를 키운다.

제2의 고향을 뒤로한 채 이순 넘어 새로 정착한 낯선 도시 생활이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번화한 거리를 구경하는 것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베를린에서도 송남희체 교습은 계속된다. 정육각체를 응용해 한글 한 음절씩을 쓰고, 이들이 이어질 때 어떤 느낌이 들고 어떤 뜻이 담기는지, 아이들처럼 즐겁게 따라 하는 수강생들과 이어가는 송남희체가 제3의 고향이 될 베를린에서 서예의 새 장르가 될 날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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