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 정치인에 이어 콘텐츠의 ‘가치 평가’ 풍토 만들겠다는 포스닥 신철호 대표</font>
▣ 글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 사진 이종찬 기자rhee@hani.co.kr
“그 돈을 모두 (유치)받았으면 사치에 빠지고, 다 써버렸겠죠.”
사이버 정치증권 시장인 ‘포스닥’이 세상에 알려지자 네티즌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투자 제의가 곳곳에서 밀려들었다. 한꺼번에 25억원을 출자하겠다는 회사가 있었고, 한 벤처캐피털 업체는 17억원을 투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2억원을 투자하게 해달라고 전화로 졸라댄 개인도 있었다. 인터넷 거품기인 1999년의 일이었다. 신철호(35) 대표는 “당시 투자 제의를 다 합치면 150억원 정도 됐다”며 웃었다.
신 대표는 “실제로 투자받은 돈은 3억2700만원이었다”고 했다. 대부분의 투자 제의를 물리친 것은 ‘절제’ 때문이 아니라 사실은 ‘오만’에서 비롯된 것이었단다. “인터넷 거품으로 사람들이 착각에 빠진 ‘혼돈의 시간’이었습니다. ‘사이트에 가입한 회원 수=돈’이라는 등식을 당연하게 여기던 시절이었죠. 제 자신도 무지했고…. 시간이 지나면 더 높은 값에 투자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일부러 투자를 조금만 받았던 겁니다.”(웃음)
신 대표가 개설한 포스닥은 정치인들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를 계량화하는 공간이었다. 일반인이 웹 사이트에 접속해 회원 등록을 한 뒤 가상 공간에서 제공하는 사이버 머니로 정치인을 주식처럼 사고 파는 식으로 운영됐다. 정치증권 시장은 수익을 거둘 수 있는 통로는 아니었지만, 신 대표가 훗날 전자정부 사업에 뛰어들어 기업가 반열에 오르게 한 실마리였다.
“정치인도 주식처럼 매일 평가 받는다면…”
신 대표가 포스닥을 구상한 것은 군 복무 중이던 1997년, 어머니의 주식 투자에서 비롯된 일이었다고 한다. “정규 교육이라고는 초등학교밖에 다니지 않았던 분이 200만원을 갖고 주식 투자를 하더니, 경제 전문가처럼 되는 겁니다. 미국 ‘연준’(연방준비제도이사회)이 금리를 인하하면 국내 주식시장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줄줄 꿸 정도였죠. 자기 이익과 결부되는 주식시장을 통해 ‘경제적 재사회화’가 되는구나 싶었습니다.”
주식을 통해 ‘경제’에 눈을 뜬 어머니를 본 신 대표는 주식을 매개로 ‘정치’를 조금이나마 바꿀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에 재학 중이던 정치학도로서 한국 정치에 대해 나름의 고민을 하고 있던 때였다. “유권자들은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선거철만 지나면 잊혀지고, 그러다 보니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비판은 비난에 가까워지지 않습니까. 정치인도 주식처럼 매일매일 평가를 받게 하면, 정치 풍토가 바뀌는 데 기여할 것으로 생각했죠.”
상장된 정치인이나 행정 관료가 정치·행정을 잘하면 주가가 오르지만 잘못하면 액면가를 밑돌고 관리 종목으로 전락하는 식으로 운영된 포스닥은 국내외에 파장을 일으켰다. 일상적인 의정·국정 감시 활동을 수행하는 ‘전자 민주주의 효시’로 평가됐던 것이다. 포스닥 정치증권 시장은 지면에 처음 소개된 뒤 세계적인 이목을 끌며 의 1면을 장식했고, 〈NHK〉 〈BBC〉 〈USA투데이〉 등 20여 개국의 언론에 집중적으로 보도됐다. 2002년 대통령 선거를 1년 앞둔 시점에 노무현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예측한 곳도 포스닥이었다. 일반 여론조사에선 노 후보가 눈에 띄지도 않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신 대표의 포스닥(www.posdaq.co.kr)에서 정치증권 시장 관리 업무는 떨어져나갔다. 포스닥 정치증권 시장은 지난해 문을 닫았고, 운영 프로그램은 일본의 시민단체인 ‘일신숙’(一新孰·www.isshinjuku.com)에 무상으로 넘겨졌다. 국내에선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는 신 대표의 판단에 따른 결정이었다. 신 대표는 “일신숙에 프로그램 소스 코드를 무상 기증할 때 사적 용도로 사용하거나 웹 서비스 장사를 하면 안 된다는 ‘공익성 조건’을 달았다”고 말했다.
전자정부 사이트만 100개 넘게 구축해
포스닥 개설로 하루아침에 ‘인터넷 스타’로 떠올랐던 신 대표는 초기부터 운영비 마련이라는 만만치 않은 숙제를 안게 된다. 포스닥은 일정한 공익성을 띤 사이버 정치 공간이어서 돈을 벌 수단이 아니었던 반면, 비용은 수월찮게 들었다. 한때 55만 명에 이른 거대한 회원들과 웹 사이트를 관리할 인력·자금이 필요했던 것이다. 포스닥 정치증권 시장을 관리하는 인력이 많을 때는 15명에 이르러 일반 관리비만 한 달에 2천만~3천만원을 집어넣어야 했다.
신 대표는 인터넷 붐에 힘입어 끌어모았던 출자금을 야금야금 갉아먹으며 포스닥 운영비를 충당하다 한계를 느껴 본격적인 사업에 뛰어들었다. 전자정부 시스템을 개발하는 일이었다. 참여정부 초기 청와대 홈페이지의 ‘국민참여 마당’, 산업자원부 포털, 서울시 포털, 서울 종로구청 포털 시스템을 개발한 게 바로 신 대표의 포스닥이었다. 포스닥이 구축한 서울시 웹 사이트는 2003년 유엔이 평가한 ‘도시전자정부’ 1위에 선정되는 성과를 거뒀다. 종로구청 포털 시스템은 2005년 행정자치부 평가에서 전국 304개 기관 중 ‘구’분야 1위로 뽑혀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포스닥이 지금까지 구축한 전자정부 사이트는 100개를 웃돈다.
전자정부는 추상적인 게 아니라 우리 생활과 직결된 것이라고 신 대표는 설명한다. “관공서를 방문하지 않고도 각종 정부 민원을 인터넷에서 1회 등록만으로 해결한다든지, 국가 재난·재해 때 수초 안에 통보를 받고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모두 전자정부입니다.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투표를 하기 위해 투표장에 직접 가지 않고, 집에서 또는 휴대전화로 안전하게 투표를 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고….” 전자투표 시스템은 이미 포스닥의 한 사업으로 자리매김돼 있다.
전자정부 사업을 통해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신 대표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광복절인 8월15일에 맞춰 디지털 콘텐츠를 사고파는 사이버 거래소 디콘베이(www.dconbay.com)를 개설하는 것이다. 동영상, 이미지, 영화, 음악, 논문, 전자책(eBook), 리포트, 소설, 시, 작곡물, 작사물 등 모든 종류의 디지털 콘텐츠를 거래하는 인터넷 회사다. 예컨대 누군가 길을 가던 중 찍은 예쁜 호박 넝쿨 사진을 디콘베이에 올리면, 이런 유의 사진을 꼭 필요로 하는 사람이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디지털 콘텐츠를 모아 사고파는 사이버 장터는 세계적으로도 아직 유례가 없는 실험적인 영역이다. 포스닥으로선 전자정부 사업 외에 안정적인 수입처를 확보하는 일이며, 사회 전체적으로는 지적재산권이 존중되는 풍토를 만들자는 취지라고 신 대표는 설명했다. ‘콘텐츠=공짜’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는 후진적인 인터넷 환경에 도전장을 내민 셈이다.
디콘베이·코스닥·유학… 계속되는 도전
디콘베이는 디지털 콘텐츠를 단순 중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검색 서비스 기능까지 갖췄다는 특징을 띠고 있다. 신 대표는 “이용자들에 의해 검증되거나 많이 판매된 콘텐츠를 바탕으로 전문가 지식검색 서비스를 구현해 ‘누구나 찾는 검색’이 아니라 ‘원하는 답이 있는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 대표는 머지않은 장래에 회사를 코스닥에 등록시키는 것으로 주주들에 대한 의무를 다하면,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로 유학을 떠날 생각이다. 전자정부 분야의 교수가 되겠다는 포부에서다. 신 대표는 그 시기를 2009년으로 잡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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