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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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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만 뚫어지게 보는 사람들

등록 2007-08-03 00:00 수정 2020-05-03 04:25

공방 끝에 정부의 환경 조사기기 설치된 뒤, 헤노코 주민들 언제나처럼 카누대 ‘특별 경계 태세’

▣ 헤노코(일본 오키나와)=스나미 게스케 프리랜서 기자 yorogadi@hotmail.com

산호초가 아름다운 에메랄드그린의 바다에 강렬한 햇빛이 내리쬔다. 모래톱에 만들어진 텐트에서 헤노코 기지 반대 협의회의 아시토미 히로시 대표는 쌍안경으로 바다를 감시하면서 이야기했다. “헤노코의 새로운 기지 건설 반대 운동에 힘을 준 것은 한국, 괌, 하와이, 오스트레일리아 등 각지에서 미군기지 반대활동에 함께해온 시민들입니다.” 그는 “평택 대추리 주민들의 생활이 부숴져 정말 걱정”이라며 “어려운 상황이지만 언젠가 마을로 돌아가는 것을 믿고 포기하지 않으면 소원은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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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열도의 남단 오키나와 본도의 나고시 헤노코 마을은 일본 미군기지 반대운동의 중추다. 그들은 ‘생명의 바다를 지킨다’는 구호를 앞세워 바다를 매립해 미군들의 활주로를 만들겠다는 일본 정부의 계획에 격렬한 저지행동을 계속하고 있다. 여기서 주민들의 투쟁은 단순한 반대운동이 아닌 몸으로 뛰는 저지행동이다. 건설 예정지의 바다를 조사하려는 일본 방위성(한국의 국방부)을 가로막기 위해 바다로 카누와 보트를 저어 나간다. 서로 노려보는 바다 위의 싸움이기 때문에 일본 정부는 8년 동안 바다에 말뚝 한 개도 치지 못했다. 이 투쟁은 전세계에서 미군기지 반대운동을 하는 시민들에게 큰 영향을 줬고,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국제적인 연대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헤노코에는 매일 전국에서 지원자가 방문해 연좌 농성에 참가하고 있다. 연좌 농성은 벌써 1200일 이상 계속되는 중이다.

미군기지 건설 반대투쟁 제2라운드

헤노코 바다에서는 일본 천연기념물 ‘듀공’이 관찰된다. 이 포유류는 현재 멸종 위기에 놓인 세계 희귀종이다. 듀공이 서식하는 헤노코 바다에 기지를 만들면 오키나와의 듀공은 사라진다. 그 때문에 주민들은 듀공을 원고로 미국 연방 재판소에 기지 건설의 중지를 요구하는 독특한 소송을 내기도 했다. 소송의 정신은 한국의 지율 스님이 내기도 한 ‘도롱뇽 소송’과 같다. 동물의 살 권리를 인간이 짓밟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판결은 오는 9월에 나올 예정인데, 미국 쪽 변호사는 “ 주민 쪽이 승소할 확률이 높다”는 희망 섞인 관측을 내놓고 있다.

헤노코가 전세계 언론의 이목을 불러모은 것은 10년 전부터다. 헤노코에는 전쟁이 끝난 뒤 ‘캠프 스와브’라는 미군 해병대 기지가 만들어졌지만,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곳은 아니었다. 전후 52년이 흘렀고 미국은 오키나와현 기노완시 한가운데에 있는 해병대 비행장 후텐마 기지를 헤노코 해상에 이전하겠다는 결정을 내린다.

투쟁이 시작됐다. 바다 조사를 강행하려는 일본 방위성에 대해, 주민들은 카누나 보트를 저어 나가 방위성 작업선을 가로막았다. 그들은 바다 위에 전망대를 세우기도 했고, 연좌 농성과 같은 비폭력 반대활동도 계속했다. 할머니들도 “먹을 것이 없는 전쟁 중에도 바다가 있어 굶어죽지 않았다”며 “생명과 은혜의 바다를 부술 수 없다”며 해안의 텐트나 해상 전망대에서 연좌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나고시 주민 투표에서도 53%의 주민이 신기지 건설에 반대했다. 결국 일본 정부는 2005년 9월 기지 건설을 일단 백지로 돌렸다. 끈질긴 반대운동이 결국 승리한 것이다.

환경영향조사에 자위대 동원해

그러나 상황이 ‘해피엔드’로 마무리된 것은 아니다. 그 뒤 미·일 정부는 계획을 바꿔 캠프 스와브 연안에 V형 활주로를 건설할 계획을 발표한다. 헤노코는 다시 반대운동을 시작해야 했다.

방위성은 지난 5월18일, 기지 건설에 앞서 산호나 듀공에 미치는 환경영향을 조사하기 위해 조사기기를 해저에 설치하려고 선단을 내보냈다. 방위성의 작업선 18척, 고무보트 10여 척, 해상보안청(한국의 해양경찰청)의 순시선 7척도 출항했다. 주민들의 카누와 방위성 배들의 해상 전투가 벌어졌다. 평택에서 한국 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일본 정부도 그 작전에 해상 자위대를 동원했다. 일본 역사상 처음으로 자위대와 시민들이 직접 충돌한 대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일본군에 집단 자결을 강요받아야 했던 오키나와 사람들은 자위대와 시민들이 충돌한 사태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나카이마 현지사도 “(현민에게) 총검을 들이대고 있는 것 같다”며 분노했다. 3일 동안의 공방 끝에 결국 조사기기는 설치되고 말았지만, 주민들은 지금도 ‘특별 경계 태세’를 펴 언제라도 카누대가 출발할 수 있는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

헤노코 사람들은 매향리와 평택시 대추리·도두리를 몇 번이나 방문해, 서로의 운동방법을 배우고 정보를 교환해왔다. 헤노코와 대추리의 연대는 놀라울 정도 단단하다. 올 3월, 기지 확장을 위해 마을을 나갈 준비를 하는 대추리 주민들을 방문한 ‘오키나와 한국 연대’의 도미야마 마사히로는 평택 주민들의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헤노코 지킴이 도미야마입니다”라고 한국어로 인사하면 주민과 지킴이들이 따뜻한 박수를 보냈다.

평택을 몇 번이나 방문한 다이라 나쓰메 목사도 매일 헤노코에서 잠수복을 입는 해상기지 반대운동의 중심 멤버다. 헤노코의 기지 반대투쟁에서 주민 쪽의 최대 원칙은 ‘비폭력’이다. ‘상대쪽의 몸은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 ‘그 대신 조사 기자재에 매달려 작업을 방해한다’ ‘상대가 공격해와도 우리는 반격하지 않는다’ 등의 원칙이다. 다이라 목사는 “정말로 괴로운 투쟁이지만, 기적적으로 아직 죽은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반격하지 않는다’는 비폭력 원칙으로

오키나와에는 전체 주일 미군의 75%가 집중돼 있다. 지난 오키나와 전쟁으로 전체 섬 주민의 4분의 1이 숨진 오키나와인들은 그 사실을 참기 힘들어한다. 오키나와의 시민운동을 설명하는 두 핵심 축은 비폭력과 반기지운동이다. 지난 아픔을 간직한 그 섬에서 미군은 이라크로 군사를 보내 사람을 죽일 준비를 해나가고 있다. 오키나와는 전쟁을 계속하는 미국에 기지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전쟁에 참여하는 중이다. 다이라 목사는 “그것은 가해자 쪽에 서는 일”이라며 “정말 그러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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