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킴 클리스터스] 돈·명예보다 사랑에 승리하고파

등록 2007-07-20 00:00 수정 2020-05-03 04:25

▣ 브뤼셀=도종윤 전문위원 ludovic@hanmail.net

얼마 전 끝난 윔블던대회에서 보이지 않은 세계적인 여성 선수가 한 사람 있다. 바로 킴 클리스터스. 그는 이미 지난 5월 초 은퇴를 선언하며 홀연히 테니스계를 떠났다. 그런데 최근 벨기에의 한 일간지에 클리스터스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그의 아버지이자 벨기에 국가대표 축구선수였던 레이 클리스터스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딸이 “내년이면 엄마가 된다”고 밝혔다는 게다.

[%%IMAGE4%%]

클리스터스는 쥐스틴 에넹과 함께 벨기에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였다. 에넹이 벨기에 왈룬 지역을 대표한다면 클리스터스는 플라망 지역을 대표하는 선수였다. 에넹이 백핸드로 발리를 하거나 상대편 코트 대각선의 구석구석을 찌르는 기교 테니스를 즐긴다면, 클리스터스는 윌리엄스 자매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포핸드 스트로크가 강점이었다.

클리스터스가 처음 테니스계에 이름을 알린 것은 1999년 윔블던대회 때다. 당시 그는 세계랭킹 10위였던 아만다 코에차(남아공)를 3라운드에서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클리스터스는 20살이 되던 2003년 한 해에만 9개의 단식 타이틀과 7개의 복식 타이틀을 따내고 세계랭킹 1위에 오르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같은 해 가을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테니스 선수 레이튼 휴잇과 염문을 뿌리며 연애전선에서도 ‘승리’를 거두는 듯했다.

하지만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이듬해에 있었던 인디언 웰스 마스터스 대회에서 손목 부상을 당하며 수술대에 올라야 했고, 이후 1년 동안 거의 모든 대회에 참가할 수 없었다. 약혼을 발표했던 휴잇과도 결별을 선언했다. 절치부심. 2005년에 클리스터스는 두 번째 전성기를 맞았다. 부상으로 대회에 출전하지 못하면서 세계랭킹은 곤두박질쳤지만, 그해 US 오픈 결승에서 마리 피에르스를 꺾고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을 한 것이다.

클리스터스는 지난 10년간 이미 150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벨기에 출신으론 처음으로 세계랭킹 1위에 올랐고, 최단기간(10개월)에 랭킹이 가장 많이 오른(134위에서 1위) 선수로 테니스 역사에 남게 됐다. 그럼에도 이제 막 24살이 된 클리스터스는 돈·명예보다 자신의 삶과 사랑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지난해 10월 새 연인과의 약혼 사실을 발표하면서 팬들에게 “연인과 좀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다”고 말해 은퇴를 예감케 했다. 클리스터스는 7월14일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출신 농구 선수인 브라이언 린치와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