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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피우진은 막았으니 다행이오

등록 2007-04-06 00:00 수정 2020-05-03 04:24

유방 절제수술 후 강제 전역된 피우진 전 중령, 군인사법 개정 소식에 웃다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나는 해당 안 된다고 하더라도, 나 같은 사람이 다시 안 나오게 돼서 다행이에요. 1차 목표는 달성했네요.”

피우진(51) 전 중령은 소탈하게 웃었다. 그가 벌였던 싸움의 1차전이 끝났다. 피우진 개인은 졌지만,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국방부는 3월27일 군인사법 시행규칙을 개정한다고 밝혔다. ‘구닥다리’라고 비난받았던 시행규칙은 합리적인 내용으로 바뀌었다. 현직 직업군인이 질병이나 사고로 심신장애 1~7급을 받으면 무조건 전역해야 하는 게 현재 규정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당사자가 계속 근무를 원할 경우, 전역심사위원회가 근무 가능 여부, 군에서의 활용성과 필요성을 종합 판단해 허가할 수 있도록 했다.

잠재적 피해자 대표해 시작한 재판

처음 피 전 중령의 사연이 알려진 건 2006년 1월24일 를 통해서였다. 피 전 중령은 2002년 유방암에 걸려 유방 절제수술을 받았다. 평소 가슴이 거추장스러웠던 그는 두 가슴을 모두 절제했고, 불편 없이 하늘을 날았다. 하지만 군은 4년이 지난 2006년, 양쪽 가슴 절제는 심신장애 2급이라는 이유로 그에게 전역 통고를 내렸다. 근무에 아무 지장이 없던 피 전 중령은 억울했다.

보도가 나간 뒤, 국방부는 “군인사법 시행규칙을 개정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피 전 중령도 ‘6달 전역 보류 처분’을 받았다. 그렇게 피 전 중령의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여론의 화살이 뜸해지자 국방부는 군인사법 시행규칙 개정 작업에 미적대기 시작했다. 부서 간의 이견이 나오고 추진력은 실종됐다. 결국 피 전 중령의 전역 유예 기간 6달은 지나갔고, 9월19일 그의 전역 처분이 확정됐다. (10월31일치 632호)은 국방부에 ‘배신’당한 피 전 중령의 사연을 전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끄떡하지 않았고, 피 전 중령이 마지막 희망을 걸었던 인사소청심사조차 그를 배신했다. 그는 결국 11월30일 ‘강제 전역’됐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 싸움”이라며 지난 1월23일 국방부 장관을 피고로 ‘퇴역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때늦은 군인사법 시행규칙 개정 소식을 피 전 중령은 뉴스를 보고 알았다고 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자기 몸이 아픈 것도 가슴 아픈데, 일하고 싶은데 나가라고 하니 얼마나 아프겠어요? 지금이라도 혜택을 받는 사람이 생긴 거니까 다행이죠.”

사실 피 전 중령의 나이는 51살이다. 정년인 53살까지 2년도 채 안 남았다. 대법원까지 가면 재판은 1~2년이 걸릴 수도 있다. 소송이 과연 실익이 있냐고 물어봤다. 피 전 중령은 “국방부가 시간을 끌면,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랬다. 그는 그 사실을 알고도 국방부 장관을 상대로 한 싸움에 뛰어든 것이다. 그는 미래의 잠재적 피해자들을 대표해 재판을 시작했다.

여러 곳의 강연 부탁 이어져

전체 직업군인 가운데 매년 330여 명이 심신장애로 전역되고 있다. 이 가운데 50~60명은 피 전 중령과 같은 암환자다. 4월께 입법 예고되는 개정 군인사법 시행규칙으로, 앞으로 ‘제2의 피우진’은 없어질 것 같다.

피 전 중령은 “여러 곳에서 강연을 부탁하는 통에 바쁘게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강연에서 자신의 군생활을 토대로 여군에 대한 사회의 왜곡된 시선을 바로잡고 있다고 말했다. “철옹성 같던 국방부가 열렸잖아요. 좀더 기대해봐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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